진뫼마을 고향편지

"니가 사온 물파스 바릉게 참말로 시원하다"

버들개지 2004. 10. 27. 07:38
"니가 사온 물파스 바릉게 참말로 시원하다"
▲ 고향 집 뒤란에 핀 부추 꽃
ⓒ2004 김도수
고향 진뫼마을 집 뒤란 돌담 밑 한켠에는 조그마한 부추 밭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전 재를 긁어내 가끔씩 부추 밭에 뿌려줬습니다. 부추가 파릇하게 자라면 어머니는 부추를 베어 양념 고추장과 된장, 간장, 마늘을 넣고 무쳐서 반찬을 만들고 어떨 땐 돌나물과 함께 무쳐서 밥상에 올리곤 했습니다.

부추 반찬이 올라오는 날엔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비벼 드셨습니다. 그러나 줄줄이 낳은 여러 자식들이 부추 반찬을 골고루 나눠 먹을 수 있도록 비비는 밥에 부추 반찬을 많이 집어 넣지 못하고 다른 반찬을 더 넣어 비벼 드시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부추 반찬에 비벼 드시는 날이면 어린 나도 아버지처럼 부추를 넣고 밥을 비벼 먹곤 했습니다.

내 고향 진뫼마을에서는 부추를 ‘솔’이라고 부릅니다. 어머니는 비 내리는 여름날이면 아껴두었던 부추를 베어 전을 부쳐 주기도 했습니다.

부엌 뒷문을 열면 좁은 공간이 나오고 바로 앞에 돌담이 있는데 그 돌담 밑에 돌을 띄엄띄엄 둥그렇게 놓고서 작은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걸어놓고 잉걸불에 전을 부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부추 전을 무척 좋아해 전 부치는 그 자리에서 서너 장씩 드시곤 했습니다.

“아따 뜨건뜨건허니 묵을만 허다. 요롤 땐 막걸리 한 잔 있으면 딱 좋은디….”

어머니는 추석이 돌아오면 아껴두었던 부추를 베어 전을 부쳐 상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또 다슬기를 국으로 끓여먹고 난 후 돌확에 갈아 알맹이만 빼내 부추와 양념을 넣고 버물려 밥상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고향집이 팔린 뒤 남의 손에 넘어갔던 고향집은 어느 곳 하나 성한 곳 없이 모두 망가지고 제자리에서 사라져갔습니다. 뒤란 돌담 밑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조그마한 부추 밭 역시 닭장이 지어지면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집을 다시 산 나는 닭장을 뜯어내고 무너진 부추 밭에 돌로 축대를 쌓아 그 안에 흙을 집어 넣고 부추 씨를 뿌렸습니다. 부추는 무럭무럭 자라나 다시 어머니가 키우던 부추 밭 그대로 만들어졌고 지금은 주말이면 아내가 가끔씩 맛있는 부추 반찬을 밥상에 올리곤 합니다.

남원에 사는 누나도 고향 진뫼마을을 너무 좋아해 주말이면 자주 찾아옵니다.

누나는 가끔씩 밥맛이 없을 땐 “진뫼 가서 밥맛이나 돋구고 올까” 하며 왔다고 뒤란에 있는 부추와 장독대에서 자라는 돌나물을 뜯어와 무쳐서 밥상에 올리곤 합니다.

“어쩌서 남원 집에서 밥을 묵으면 밥맛이 없는디 진뫼만 오면 요로케 돌나물에 솔 하나 무쳐서 밥을 묵어도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대니 참말로 이상하단 말여. 난 요 돌나물에 솔 무쳐 묵으로 진뫼에 온다.”

누나뿐만 아니라 식사를 함께 하는 가족들 역시 부추에 돌나물 섞어 무친 반찬 하나면 그 날 밥상에 오른 다른 반찬은 필요가 없습니다.

▲ 장독대에 핀 돌나물 꽃
ⓒ2004 김도수
누나는 부추 밭이 너무 적다며 부추 밭 아래쪽에 있는 텃밭을 일궈 부추를 더 심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집에서 주말 하루를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뒤란 부추 밭은 잡초를 매주지 못해 늘 풀밭이 되어 있습니다.

주말농사는 잡초들과의 전쟁이어서 집 앞에 있는 고추밭에 풀을 매다 보면 뒤란 부추 밭은 손도 대지 못하고 돌아오곤 합니다.

어머니 생전에도 부추 밭과 호박을 키우던 뒤란 텃밭은 늘 잡초들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진뫼마을 곳곳에 널려져 있는 논밭을 경작하기엔 힘이 달려 늘 터덕거리며 농사일을 꾸려나가고 있었기에 뒤란 텃밭은 손도 대지 못하고 항상 잡초들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어쩌다 비라도 내려 논밭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잠시 비 그치는 틈을 타 부추 밭을 매주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풀 속에 숨어있던 모기들이 몰려나와 온 몸을 물어 어머니는 톡톡 붉힌 모기 자국에 침을 바르곤 했습니다.

지금 뒤란 부추 밭에 잡초 매는 것은 늘 누나의 몫입니다.

누나는 뒤란에 갔다 오기만 하면 “엊그저께 풀 매준 것 같은데 도로 수북하게 풀이 짙어부렀다” 하고 투덜댑니다.

여름이 끝나가던 주말 오후, 누나는 부추 밭인지 풀밭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우거진 뒤란 부추 밭을 매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밭을 매던 누나가 뒤란에서 후닥닥 달려와 마루에 앉더니 “도수야, 빨리 파스 좀 갖꽈라. 근지러워 나 죽겄다”며 고함을 지릅니다. 모기가 누나의 목과 팔 다리를 여러 군데 물어 득득 긁으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누나는 톡톡 붉힌 곳에 물파스를 바르더니 “아따 시원하다. 아이고메, 인자는 저녁 판에 밭 못 매것다. 어치게 모기들이 달라 들어쌌던지 혼나부렀다. 전에 아가씨 때 밭 매로 댕길 때 저녁 판 되면 어찌나 모기들이 물어댔쌌더니 밭을 제대로 못 맸는디 지금도 여전허고만. 근디 그 때는 요론 시원한 물파스 하나를 사다 놓고 바르덜 못하고 살았어 잉. 하여간 어메들 밭 매로 댕김선 모기들 땜시 엄청 고생하며 살았제.”

군대 다녀온 뒤 자취하며 학교 다닐 때 어머니께 작은 물파스를 하나 사다 드린 적이 있습니다. 주말이면 고향집에 내려와 부모님 농사일 도와주고 일요일 오후면 다시 전주로 올라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몸뻬바지 속에 든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를 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전주 올라가고 내려올 왕복 차비였습니다. 나는 그 차비에서 남은 돈을 아끼고 아껴 어머니가 모기에 물리면 한번씩 바르라고 물파스를 사다 드린 것입니다.

밭 매고 돌아오시는 어머니는 늘 어둠이 내려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그 날도 어김없이 어둑해서야 밭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온 몸에 모기가 물려 득득 긁어대며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모기에 물려 온 몸 여기저기를 득득 긁어대는 어머니께 “오메, 물파스 하나 사 왔어” 하며 물파스를 건네주자 “아따, 참말로 시원하다. 아이고, 인자 살 것 같다. 저녁 판이 됭게 어치게 모기들이 물어댔쌌더니 근지러워서 혼나부렀다. 니가 돈이 어디 있가디 파스를 다 사왔냐. 참말로 모기 물린 데는 파스가 최고다. 최고여.”

▲ 앞 집 돌담에 열린 호박
ⓒ2004 김도수
뜻밖에 아들이 사 가지고 온 물파스를 바른 어머니는 너무 시원하고 행복했던지 그 날 저녁 부엌에서 밥 짓는 내내 환한 웃음을 짓고 계셨습니다.

저녁 밥 안친 무쇠 솥에 불을 지피고 있던 내게 “용돈 한 푼 못 주고 왕복 차비만 주는디 너는 뭔 돈으로 파스를 사왔냐. 저녁 판 됭게 모기들이 온 몸을 어찌나 물어댔쌌더니 일찍 올라고 히도 일에 치여 산게 쬐께라도 더 매고 올라고 발버둥치다 보면 늘 모기에 물려서 온다. 내 살갗은 연히서 모기에 한 방만 물려도 겁나게 부서분디 니가 사온 물파스를 바릉께 참말로 시원하구나. 너한테 용돈 한번 주덜 못 허고 사는디 니가 어메 바르라고 물파스를 다 사오고….”

파스를 사온 아들이 자랑스러웠던지 어머니는 저녁 짓는 내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물파스를 아끼고 아껴 바르며 가끔씩 뒤란 부추 밭을 매며 모기에 물리면 물파스를 바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뒤란 부추 밭을 매고 마루에 앉으신 어머니는 모기에 온 몸이 물려 득득 긁고 계셨습니다.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물파스를 찾는데 “니가 사다 준 물파스 다 떨어졌다. 모기 물린 데는 물파스가 최고였는디….”

어머니는 모기에 물려 톡톡 붉힌 근지러운 곳에 침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뒤란 부추 밭을 매며 모기에 온 몸이 물린 누나에게 물파스를 건네주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왜 그 때 어머니께 물파스를 더 사다 드리지 못했는지 죄스러워 지금 먼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짓고 서 있습니다.

밭 매고 돌아온 어둑해진 저녁, 마당에 들어서서 내가 사다 준 물파스로 모기에 물린 곳을 시원하게 바르며 좋아하던 어머니. 시원한 물파스가 아니어도 내 손으로 득득 긁어 줄 어머니께서 지금 이 세상에 살아 계신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