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가을 달빛 아래 볏짚 냄새

버들개지 2004. 11. 8. 22:28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우린 마당과 골목으로 나가 놀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물 속이나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 아래에서 놀다가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못치기 팽이치기 굴렁쇠 등 여러 가지 활발한 놀이를 하며 지냈다.

 

가을이 깊어가며 벼들이 황금빛으로 누렇게 물들기 시작하면 부모님들은 벼를 베기 시작했다. 그러면 우린 추수 끝난 논으로 진출하여 놀기 시작했다. 벼를 베낸 논에 들어가 볏짚을 뚤뚤 말아 공을 차거나 아이들끼리 돈을 갹출하여 고무공을 사서 차거나 하늘 높이 화살을 쏘아대며 놀았다.

 

맑은 가을하늘에 화살을 높이 쏘아 올릴 때는 누구의 화살이 가장 높이 날아오르나 시합을 했다. 궁체(弓體)는 대나무로 만들고 화살은 대마(大麻) 껍질 벗겨진 가벼운 대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대마를 삼굿에 익혀 껍질 벗겨진 대를 진뫼마을에서는 저릅대기 라고 불렀는데 저릅대기 끝에 작은 대나무를 M 자 모양으로 뾰쪽하게 깎아 끼웠다. 무슨 놀이를 하든 놀이기구를 잘 만드는 아이들이 잘하듯 하늘 높이 화살을 쏘아 올리는 아이들의 궁체와 화살은 아주 튼실했다.

 

푸른 창공을 향해 저릅대기 화살이 높이 날아 오르면 우리들은 육안으로 누구의 화살이 가장 높이 올라갔는지 판정을 내리곤 했다. 하늘높이 날아오른 화살이 벼 수확 끝난 촉촉한 논 바닥으로 내리꽂히면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따, 니 화살 겁나게 올라가 불더니 땅속 깊이도 백히 부렀다. 지금까지는 니가 일등이다.

 

볏가리 사이에서 술래잡기.기차놀이

지금 진뫼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회관은 원래 큰집 마늘 밭이었다. 내가 어릴 땐 마늘농사를 경작했고 큰 집 큰 형님이 분가를 할 때는 집을 지어 살기도 했다. 그 뒤로 큰형님이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형님이 살던 빈방과 헛간은 큰 집 창고로 사용을 했다. 헛간에는 주로 농기구나 겨우내 소 먹이를 주는 볏짚을 쟁여 두곤 했다.

 

벼를 베고 탈곡이 끝나면 큰 집에서는 마늘 밭에 볏짚을 세워 말렸다. 이엉 엮어 초가지붕을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서였다. 볏짚 줄줄이 세워놓은 한켠에는 겨우내 소 사료용으로 쓰기 위해 볏짚을 지붕 처마 높이쯤 둥글게 쌓아 두기도 했다.

 

마늘밭에 볏짚을 말리기 시작하면 낮이고 밤이고 우리들 놀이터가 되었다. 낮에는 세워진 볏짚 다발 사이 사이를 요리조리 기어 다니며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헤집고 다녔다. 볏짚 다발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 막 벼 훑고 난 생 볏짚 다발에서 풍겨 나오는 볏짚 특유의 구수한 냄새는 우리들 마음까지 풍요롭게 해주었다.

 

달 뜨는 밤이면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다. 높이 쌓아 올려진 볏 가리를 진지(陣地)로 정하여 술래가 된 아이는 볏 가리 쪽으로 몸을 돌린 뒤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을 세며 술래가 되었다. 술래가 된 아이가 을 세는 동안 우리는 이웃에 있는 논과 밭에 쟁여진 볏짚 사이나 언덕, 돌담 뒤로 숨었다.

 

술래가 자기가 숨어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면 기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거나 그게 여유롭지 못해 발각될 것 같으면 진지(陣地)를 향해 재빨리 내달리기도 했다. 다행이 술래보다 먼저 진지 뛰어가 손을 찍으며 을 외치면 술래가 되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꾀를 내 술래가 하나 둘 셋 ··· 숫자를 세고 있으면 진지가 된 볏가리 뒤쪽에 살짝 숨어 있다가 술래가 아이들을 찾으러 나가면 곧바로 앞으로 나와 을 외치기도 했다.

 

진뫼마을에서는 술래가 숨어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재빨리 홍길동, 찐 하고 외친다. 소리는 술래에게 발각되었음을 알리는 소리로 소리와 함께 진지로 달려가 진지에 손을 찍으면 아웃이 되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술래 대상자로 선정이 되면 가위바위보를 하여 술래를 가려내게 된다. 술래에게 발견이 되더라도 술래보다 먼저 진지로 다려가 소리를 외치며 진지를 찍으면 살게 된다.

 

희끄무레한 달빛 아래 술래가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오던, 숨막히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 몸에 땀이 흐르는 듯 하다. 휘영청 떠오른 달빛아래 술래가 되어 볏 다발과 논밭 언덕을 어슬렁거리며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던, 그 황홀한 가을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찌릿찌릿하여 달 뜬 가을이 밤이면 잠 못 이룬다.

 

술래잡기가 끝나면 우린 기마전 시합을 했는데 땅바닥으로 떨어져도 몸이 다치지 않도록 볏짚을 깔았다. 기마전은 힘이 센 아이가 마부가 되어 앞에 서고 그 뒤로 두 사람이 앞 사람 좌우 어깨 한쪽씩 양손으로 감싸 손 깍지를 끼면 싸움을 잘 하는 아이들이 목말에 올라탔다. 편을 갈라 치밀하게 작전을 짜서 달밤에 고함을 질러대며 기마전 시합을 할 때는 이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우린 정말 너무나 행복한 강변마을의 아이들이었다.

 

몸이 허약했던 나는 목말에 올라 탄 적이 손꼽아 셀 정도였다. 한번은 힘센 아이와 싸움이 붙었는데 내 윗도리 옷이 다 벗겨 질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다 그만 목말에서 떨어졌다. 어깨고 목이고 허리고 온 몸이 쑤셔댔지만 입가엔 미소가 감돌며 또다시 씩씩하게 목말에 올라타고 있었다.

 

달이 두둥실 떠오른 어느 가을날, 마을 앞에 있는 정수 형님네 밭에서 기마전 시합을 즐기고 있는데 외지에서 놀러 온 어떤 어른 한 분이 나오셨다. 우리들이 기마전을 즐겁게 하고 있으니 아마 구경을 나오신 것 같았다. 그 분은 우리들이 기마전 시합을 한판 끝내자 잠깐 모이라고 해 놓고 말씀하셨다.

우리 마을도 달 뜨는 밤에 아이들이 논배미에 나와 기마전을 하며 놀던데 너희들도 이렇게 기마전을 하며 즐겁게 놀길래 구경을 좀 나왔다. 이다음에 너희들이 커서 어른이 된 뒤에 달 뜨는 가을 밤이면 기마전을 하며 즐겁게 놀았던 추억이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달 뜬 가을밤에 이렇게 기마전을 하며 노니 너희들은 참으로 행복한 아이들이다.

 

가을 밤, 둥근 달이 떠오르면 기마전 심판을 봐주며 우리들과 함께 떠들며 놀아주던 그 아저씨가 생각난다. 지금쯤 노인이 되어 있을 그 분도 나처럼 둥근 달빛이 떠오르는 가을 밤이면 창가에 기대어 기마전 하던 그 가을밤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볏 다발도 아이들도 보기 어려운 농촌

이젠 진뫼마을에 늙으신 분들만이 고향마을을 지키고 있어 소를 키우지 않는다. 그래서 겨우내 소 여물을 쑤어주던 볏짚이 필요 없다. 마을 사람들은 콤바인으로 벼를 베며 탈곡을 할 때면 볏짚을 아예 논에 뿌려 거름으로 사용을 해버려 요즘은 볏 다발을 보기도 힘들다.
지금 진뫼마을엔 벼 훑고 난 뒤 볏짚을 세워서 말리는 사람도, 볏짚 사이로 기어 다니며 볏짚 냄새를 맡으며 놀 아이들도 없다.

 

볏짚 냄새 맡아 본지 까마득해 주말에 고향에 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볏짚 세워진 논에 다가갔다. 뜬금없이 볏짚 냄새 맡으러 간다는 아빠 말에 어리둥절한 아들 녀석은 아빠는 무슨 볏짚 냄새를 맡으러 간다고 해요. 아빠 어릴 때는 놀게 없어서 볏 다발을 끌어 안고 놀았나 봐요.  한다. 덩달아 볏 다발에 코를 들이민 딸내미는 “아빠, 구수한 냄새는 무슨 구수한 냄새야? 그냥 볏짚 냄새고만”이라고 중얼거린다.

 

해지는 가을저녁이면 기러기 떼들 어디로 날아가는지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했다. 푸른 창공에 비행기 편대처럼 짝을 지어 날아가면 우리들은 몇 마리가 날아가는지 세어 보았다. 빠르게 머리 위로 날아가는 기러기 숫자를 세어보다 서로 숫자가 틀리다며 싸우기도 했던 그 가을 하늘이 참으로 그립기만 하다.

 

아파트 거실 창문 사이로 떠오른 가을 달빛이 찬란하다. 술래가 되어 마을 앞에 있는 논과 밭을 어슬렁거리며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던, 기마전을 하며 떠들고 놀던 아름답던 그 때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술래잡기와 기마전을 하며 떠들고 놀던 아이들 지금은 모두다 늙수그레한 얼굴이 되어 하나 둘씩 나타나는 흰 머리카락들을 자식들에게 뽑아달라고 하며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