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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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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 되면 주말마다 술병 들고 진뫼마을로 달려오라”고 막내아들 보고 싶은 마음을 살아생전 그리 표현하던 내 어머니.
취직이 되고 보니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안계셨다. 어머니 그 말씀 가슴에 사무쳐 첫 봉급 타던 날 통장 하나 따로 만들어 속옷값을 넣었고 그 뒤로 줄곧 이건 술이라고, 이건 겨울외투라고, 이건 용돈이라고, 차곡차곡 돈을 넣었다. 그 돈으로 부모님 땀 흘리던 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빗돌 하나를 세웠다.
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았기에 ‘사랑비’라 이름했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21년, 아버지 돌아가신 지 18년 되던, 2006년 5월8일이었다.
‘사랑비’ 세우던 그 날, 부모님께 쓴 편지를 비석 앞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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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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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첫 봉급 타서 사 드리고 싶었던 술과 옷을 2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바칩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과 하늘만 보이는 땅 진뫼. 두메산골 강변마을에서 일곱 자식 낳아 기르느라 땀과 한숨과 눈물로 살았을 두 분 덕분에 저희 일곱 자식들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고생 많으셨다고, 애달프고 고마운 마음 올리려 여기 이 비를 세웁니다.
가난한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고생만 하다 가신 분이 어찌 아버지 어머니뿐이겠습니까? 하지만 새벽녘이면 쌀 독아지 득득 긁는 소리 그칠 날 없었던 궁핍한 살림살이에도 자식들에게 지게만큼은 물려주지 않겠다며 마을에서 처음으로 큰아들에게 검정 운동화에 교복을 입혀 순창읍내로 유학을 보내기 시작해 줄줄이 자식들을 배움의 문턱에 들어서게 한 부모님의 교육열과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 저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일요일이면 집에 다녀가는 자식들 손에 쥐어줄 차비가 없어서 맨발로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며 돈 꾸러 다니던 어머니 모습,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모내기 하고 돌아와 마루에서 밤새 누에똥 가리다 밀려오는 졸음 참지 못하고 그만 뜰방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이마에 툭 튀어나온 어머니의 상처, 한시도 잊고 산 적 없습니다. 자식들 가르치려고 술 한잔 돼지고기 한근 못 사 드시고 평생 해진 옷만 입고 사신 거 저희 일곱 자식들은 잘 압니다.
자식들은 비단길 걷게 하겠노라고 힘든 가시밭길 걸어오신 부모님의 깊은 뜻,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만, 여기 살아실 제 드리지 못한 사랑, 조그마한 비에 새겨 기리려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가난했지만 일곱 자식들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2006년 5월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