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일 기자의 길에서 만난 세상> |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 2010-06-09 14:47 |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일인지라 늘 ‘좋은 여행지’를 묻는 질문과 마주칩니다. 초면의 상대방조차 ‘요즘은 어디를 가면 좋으냐’고 묻곤 합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아무리 정성껏 답해준다 해도 실제 그 답대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란 별로 없더군요.
사실 ‘어디가 좋으냐’는 질문만큼 막연한 것도 없습니다. 사실 ‘아름다워서 좋은 곳’도 있고, ‘거리가 가까워서 좋은 곳’도 있으며 ‘멀리 떨어져서 좋은 곳’도 있으니까요. 이런 질문에는 ‘좋은 대답’이 나올 리 없습니다. 대답이라는 게 고작 “글쎄요, 경상북도 쪽이 좋을 것 같은데요”라든지 “전라남도의 섬은 어떠신지요” 정도로 마무리됩니다. 심드렁한 질문에 심드렁한 답변인 것이지요.
하지만 진짜 여행을 염두에 두고 던지는 질문은 대부분 구체적입니다. 예컨대 “옛 시골의 추억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냐 ” “어딜 가면 이 계절의 충만함을 만날 수 있느냐” 이런 식이지요.
얼마 전, 한 지인이 ‘감동적인 여행지’를 물어왔습니다. “감동이라….” 좀처럼 쉽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에서 만난 비석 하나가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마을회관 앞 텃밭 곁에서 마주친 작은 비석에 새겨진 글귀 몇줄. “월곡양반·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자식 밟고 살았네.” 섬진강변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평생 농사를 지으며 일곱남매를 길러낸 부모의 생애를 기리는 비석입니다.
비석 옆면의 ‘어머니 아버지,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라는 글귀에서 일평생 노동으로 허리가 굽은 부모에 대한 비석을 세운 이의 사무친 그리움이 ‘울컥’ 하고 느껴졌습니다.
그날, 사랑비 앞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이 유독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손톱이 닳는 노동도 기꺼이 감수했던 부모님과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다시 ‘감동의 여행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되돌아가 봅니다. 답은 “아마도 고향 땅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된 가난을 천천히 되새겨 보는 일, 애잔하면서도 아릿한 유년의 추억을 되새김질 해보는 일, 잔잔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얻기로는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요. 그러고 보면 당시 ‘현재’의 시간에서 맞닥뜨렸던 가난은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이 ‘지나간 가난’인 경우라면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과거를 추억하는 데 어쩌면 ‘더없이 아름다운 장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난 시절의 가난’은 상대적인 박탈이나 나태의 결과가 아닌, 웬만해서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더 그렇습니다.
parking@munhwa.com
'진뫼마을 고향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진메는‘시인의 마을’ (0) | 2012.04.09 |
|---|---|
| 겨울, 진뫼마을 풍경 (0) | 2011.01.04 |
| 비록 '새벽살이'지만… 늘 새로운 수묵화를 그려내는구나 (0) | 2010.11.26 |
| 가난했지만… 강은 행복을 품었다 (0) | 2009.10.15 |
| 매화꽃향기 취해 굽이굽이 섬진 5백리 (0) | 2009.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