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소식

매화꽃향기 취해 굽이굽이 섬진 5백리

버들개지 2009. 4. 20. 13:17

매화꽃향기 취해 굽이굽이 섬진 5백리
[걷고 싶은 길] 임실 장산~순창 장구목 섬진강 물길 따라

기암괴석이 즐비한 장구목 밑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여행자들.

5백리 섬진강의 물길 따라 흐르는 봄빛은 찬란하다. 중부지방의 산하가 겨울의 묵은 때를 떨어내기도 전인 3월 초부터 이미 섬진강은 나른한 봄꿈에 젖어든다. 매화가 앞다퉈 꽃망울을 터뜨리고, 낭창낭창 휘어진 버드나무에는 연둣빛 신록이 가득하다. 그래서 섬진강 물길 따라가는 길은 꿈길처럼 황홀하다. 특히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마을에서 순창군 동계면 강경마을 초입까지 약 30리 길은 섬진강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서정미 넘치는 강변길로 손꼽힌다.

‘진메’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장산마을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향 마을이다. 시인은 젊은 시절에 무작정 상경해 방황했던 한 달쯤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40년 가까운 교직생활도 모교와 고향 주변의 여러 초등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평교사로 마감했다. 지난해 정년퇴임한 이후로도 시인은 어머니가 사시는 고향집의 작업실과 전주 집을 오가며 여전히 섬진강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시인의 고향에서 시인의 마음으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향인 장산마을에 있는 느티나무 쉼터.
시인을 만나지 못해도, 시인의 고향 풍경은 언제나 푸근해 보인다. 마을 앞의 강 건너에 길게 뻗은 산자락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싼 덕분이다. ‘장산’(長山·진메)이라는 지명도 거기서 비롯됐다. 장산마을에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풍경은 또 있다. 시내처럼 폭이 좁은 강에는 튼실한 징검다리가 놓여 있고, 길가의 느티나무는 휴식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편안한 쉼터와 그늘을 마련해두고 있다.

제법 따가워진 햇살 아래 장산마을을 뒤로하고 천담마을로 향했다. 장산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시멘트도로가 끝나고 잘 닦인 흙길이 뻗어 있다. 길가에는 김용택 시인의 ‘천담마을 가는 길’이라는 시와 길의 내력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산굽이를 돌아가는 강물을 따라 여러 사람들이 오래오래 걸으니, 세상으로 가는 길이 생겼더라. 그 길에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겨울 와 다시 봄이 오는 동안 해와 달이 수도 없이 지나갔으니, 길이 아름다워졌더라. 그 길에 다시 꽃과 나무를 심고 그 길을 ‘시인의 길’이라 이름 짓고 시 한 편을 여기 적어 두니, 사람들아! 이 나무와 꽃과 산과 강물과 하늘을 보며 그것들과 한 몸이 되어 이 길을 천천히 걸으라. 시인이 되어 보라!

‘시인이 되어 보라’는 권유가 아니더라도, 이 강변길의 아름다운 풍경과 고즈넉한 정취는 아무리 가슴이 메마른 사람조차도 시인으로 만든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시인의 마음처럼 느긋해진다.

숨죽여 흐르는 강물은 호수처럼 고요하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 위에서는 한 쌍의 원앙이 한가롭게 헤엄치며 봄빛을 희롱하는 모습도 보였다. 원앙은 종(種)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327호로 지정된 희귀조류여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섬진강 길을 걷는 동안에는 세 번이나 원앙 부부를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안정되고 깨끗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까지 약 3킬로미터 구간은 왕복 2차로의 아스팔트도로다. 자동차로는 한결 편안한 길이지만, 두 발로 걷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고역스럽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도 길의 중간쯤부터는 삭막한 아스팔트도로에서 벗어나 강물과 어깨를 맞댄 채 이어지는 흙길을 걸을 수 있다.

이 길에서는 봄이면 매화가 눈처럼 흩날리고, 가을엔 은빛 억새꽃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사실 맑고 푸른 섬진강 물길을 길동무 삼아 걷노라면, 매화나 억새꽃이 피지 않는 시절에도 나그네의 발걸음과 마음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임실 구담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창 화룡마을과 섬진강.

길의 끝에서 만나는 구담마을은 강가의 산중턱에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조망이 활달하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이자 몇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서 있는 구담마을 전망대에 올라서면,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물길과 물길 양쪽에 우람하게 솟은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때마침 강변의 산비탈 곳곳에 만개한 홍매화와 백매화가 선경(仙境)을 연출하고 있었다. 동행한 여행작가 문일식(39) 씨는 “무릉도원이 있었다면 바로 이런 풍경이었을 것 같네요. 감히 뭐라고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워요”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요강바위 지나면 찻길 끊겨 구미교서 여정 마무리

임실군의 마지막 마을인 구담마을과 순창군의 첫 마을인 회룡마을 사이의 섬진강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아무리 큰물이 져도 쓸려가지 않을 만큼 크고 넓은 바위들로 만들어졌다. 걸터앉아서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싶을 만큼 커다란 너럭바위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리 잡았다.

한때 통째로 도난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되돌아온 장구목의 요강바위.
내룡마을에는 강바람이 불어올 적마다 하얀 꽃비를 뿌려대는 매화밭이 있다. 그곳을 지나면 금세 장구목이다. 장구목의 강변에는 진짜 요강처럼 옴팍한 요강바위를 비롯해 천태만상의 바위들이 즐비하다. 하나같이 일부러 다듬은 것처럼 섬세하고 정교하지만, 실은 수천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강물이 쓰다듬고 어루만져서 빚어낸 작품들이다. 특히 높이 2미터, 폭 3미터에 무게가 무려 15톤에 달한다는 요강바위는 어른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깊은 웅덩이가 패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바위는 한때 수억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도난당하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노력으로 제자리에 돌아온 뒤로는 다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구목 아래에도 징검다리가 있다. 이 징검다리를 건너면 근래 개설된 강변길로 접어든다. 강변과 산비탈의 숲을 깎아 만든 탓에 자연스런 멋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가는 차도 없고,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해서 호젓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하류 쪽으로 1.5킬로미터쯤 내려가면 찻길이 뚝 끊긴다. 자동차는 여기서 되돌려야 한다. 그러나 걷는 길은 끊기지 않는다. 찻길 아래의 좁은 길을 조금 걸어가다 복분자밭을 지나면, 금세 콘크리트포장도로로 접어든다.

길은 섬진강의 물길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구미교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복분자밭에서 약 2킬로미터쯤 떨어진 구미교 앞의 강경마을 버스정류장에는 군내버스가 하루 두 번씩 정차한다. 이렇게 사람의 여정은 끝나지만, 바다로 향하는 강물의 여정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 물길을 따라 흘러온 추억도 강물의 흐름만큼이나 길고도 오랜 여운으로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어느 초여름날에 장구목에서 낚시를 즐기는 부자.

■ 여행정보

숙박
장구목의 산수풍경(063-653-8948)과 장구목가든(063-653-3917), 천담마을의 마을회관(이용 문의 박주철 노인회장·063-644-5450)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그러나 민박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해본 뒤에 찾아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장산마을 입구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인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는 숲속의 집과 산림문화휴양관 등의 숙박시설을 갖춘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063-653-4779)이 있다.

맛집
장구목에 위치한 장구목가든은 토종닭 백숙을 잘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하지만 비수기에는 영업을 하지 않을 때도 있으므로 미리 확인해봐야 한다. 장구목의 장구목토종가든(063-653-7196)에서도 매운탕, 다슬기수제비 등의 식사가 가능하지만, 영업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가는 길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전주IC(716번 지방도)→이서교차로(1번 국도)→쑥고개교차로(직진· 21번 국도)→원당교차로(27번 국도)→운암교→강진사거리(우회전)→회문삼거리(좌회전)→신촌마을 입구(좌회전)→장산마을
여객선 임실 시외버스터미널(063-642-2114)에서 강진, 덕치를 경유해 장산마을까지 들어가는 군내버스가 하루 2회(09:00, 19:00) 출발한다. 임실 읍내에서 장산마을까지는 약 40분 소요. 장산마을 초입의 신촌마을 입구를 지나는 순창행 완행버스는 대략 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신촌마을 입구에서 장산마을까지의 거리는 1.5킬로미터, 순창 시외버스터미널(063-653-2186)에서는 강경마을 버스정류장을 거쳐 구미리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 2회(10:10, 13:50) 출발. 동계터미널(063-652-4063)에서는 구미리행 버스가 하루 6회 있고, 동계에서는 전주행 직행버스가 수시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