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자근자근 이 잡아주던 아버지

버들개지 2005. 1. 19. 22:40

고향 집 안방 아랫목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잠자리였다.
무더운 여름철이나 추운 겨울철이나 사계절 내내 주무시는 잠자리라 식구들 어느 누구도 아랫목에 누워 자려고 한 적은 없었다.

 

안방은 값싼 비닐장판이 깔려 있었고 아랫목은 설날 음식을 장만하느라 하루 종일 지피는 장작불에 의해 누르스름하게 타서 약간 오그라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 추운 겨울철이면 아버지 곁에 자려고 두 살 많은 형과 나는 언제나 자리다툼을 벌였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공평하게 형과 나를 하룻밤씩 번갈아 가며 옆에 재웠다.

 

줄줄이 낳은 자식들과 한 방에 모여 자던 그 때, 형과 나는 어머니 곁에 나란히 누워 잤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 주무시지 못하고 늘 떨어져 자야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자식들은 부부간의 사랑을 알 수 없었고 컴컴한 밤이 되면 무서워 언제나 어머니 곁에 바짝 붙어서 잤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 초반까지만 해도 겨울철이면 사람 몸에 붙어사는 흡혈 기생충인 이가 많았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아버지 곁에 잠이 들다 보면 옷 속을 슬금슬금 기어 다니는 이 때문에 몸이 가려워 잠 못 드는 밤이면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나 내 몸을 득득 긁어주었다.

 

지금처럼 밝게 빛나는 전깃불이 있으면 옷을 벗겨 이를 잡아주면 되지만 어두운 호롱불 아래 이를 잡아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근지러운 부위의 옷을 이빨로 자근자근 깨물며 이를 잡아주었다.

 

"어디가 제일 근지럽냐?"
"여기 어깨 쪽이요."
"응, 알았다. 내 다 잡아주마."

 

아버지는 온 몸을 꽉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예쁜 막둥이 자식을 위해 옷을 자근자근 깨물며 이를 잡아주고 있었다.
어쩌다 '톡' 하고 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 "엄머, 또 한 마리 잡았네" 하며 신이 난 아버지는 옷을 더욱더 자근자근 깨물고 있었다.

 

옷을 깨물다 가금씩 우두둑 알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 "엄머, 써캐(이가 되기 전의 알)가 우두둑 씹히네. 요 놈들 어디서 우라들(우리 아들) 괴롭힐라고 숨었냐"며 더욱 거세게 내 옷을 자근자근 깨물어 댔다.

 

아버지는 가끔씩 잠이 쏟아지는지 "그만 잡고 자자"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 근지러워 죽겄응게 쬐께만 더 잡아줘라우" 하면 아버지는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이를 잡아 주었다.

 

몸을 긁적거리며 잠 못 드는 자식을 위해 옷을 자근자근 깨물어 주시는 아버지의 자식사랑. 자식을 키워보니 아버지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랑하는 자식이 근지럽다니 온 몸을 혀로 핥아주고도 남을 아버지 심정이었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는 서캐가 우두둑 터지고 이가 한 두 마리 잡히는 밤이면 "이젠 안 근지러울 것잉게 어서 자자"고 했다.
이를 잡고 난후 아버지 품에 안기어 잠을 자려 하면 옷에 묻어 있던 아버지 침 자국이 피부에 와 닿으며 몸이 몹시 시원했다. 피부에 와 닿는 아버지 침 자국은 어찌 그리 시원한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옷을 질근질근 깨물어 주며 이를 잡던 아버지가 '비위생적이다'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아예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안 했고 아버지 숨소리가 조용조용 들려오는 그 순간이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날씨가 몹시 춥던 어느 겨울 날, 아랫목에 아버지 주무시고 그 옆에 형과 어머니 그리고 내가 차례로 잠이 들었다. 새벽녘 눈 뜨자마자 어머니 젖 만지려고 가슴에 손을 내미는데 웬 큰 손이 덥석 잡히는 게 아닌가.

 

어머니 젖은 나와 형 둘만이 만지는 젖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 손이 와 있다니 나는 깜짝 놀라 아버지 손을 억지로 잡아당기며 빼내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 가슴에서 손을 빼내지 않으려고 힘을 주고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 젖을 만진다는 사실에 몹시 놀란 나는 아버지 손을 억지로 잡아당기며 빼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부간의 사랑도 모르고 어머니 가슴에서 손을 빼내려는 철부지 어린 자식이 아버지는 얼마나 미웠을까.

 

주말 저녁, 식구들과 함께 고향 집에서 하룻밤 자다 보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은 엄마 옆에서 꼭 붙어서 잔다.

 

"민성아, 제발 엄마 옆에서 좀 뚝 떨어져서 자거라."
"아버지도 어릴 때 밤이면 무서워서 할머니를 꼭 안고 주무셨다면서요."
"저 녀석은 시골집에 오기만 하면 나를 쏙 빼 닮아 그런지 꼭 저그 엄마 옆에서만 붙어서 잘라고 하네."
"아빠 자식이라 저도 아빠를 쏙 빼 닮아서 그래요."

 

부모님은 새벽녘 눈뜨자마자 자식들 앞날 걱정, 갈수록 힘에 부치는 농사일 걱정, 이 집 저 집 얽힌 빛들 어떻게 다 갚아나가야 할지 한숨짓다 닭들이 울고 새들이 울며 날이 밝아왔다.

 

새벽녘 아버지께서 한숨을 내쉬시며 몸 속 깊숙이 빨아들이며 내뱉던 뿌연 담배 연기에 숨이 콱 막히던 나는 방문을 잠깐씩 열며 신경질을 냈다.

 

"아버지, 제발 담배 좀 그만 피워라우. 담배 연기에 아들 질식해 죽겄고만…."
"걱정히봤자 맥없는 담배만 죽잉게 요 놈만 빨고 그만 피울란다."

 

아버지가 내 옷을 자근자근 깨물며 남긴 침 자국들이 피부에 와 닿으며 시원하게 잠들던 그 긴긴 겨울 밤이 꼭 엊그제 밤처럼 스쳐 지나간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내가 벌써 아버지가 되어 있건만 마음만은 아버지 곁에 잠이든 일곱 살 어린 자식으로 그대로 멈춰 서 있다.

 

새벽녘 담배연기 가득 차 오르던, 어머니 아버지 걱정을 하며 도란거리던 고향 집 안방에 날이 밝아온다. 눈 뜨면 언제나 마주치는 윗목 벽에 걸려진 사진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 오늘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