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저건네 밤나무 밭' 이젠 누가 벤다냐?

버들개지 2006. 1. 23. 16:56

▲ 저건네 밤나무 밭에 달린 먹감.

고향 진뫼마을 앞에 놓여져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면 바로 코앞에 앞산이 떡 버티고 있는데 우리 집은 징검다리 좌측으로 천여 평 정도 되는 ‘저건네 밤나무 밭’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밤나무뿐만 아니라 감나무도 함께 자라고 있는데 우리 집 식구들은 ‘저 앞 강을 건너면 바로 코 앞에 있는 밤나무 밭’이라 하여 ‘저건네 밤나무 밭’이라 불렀다.

 

6월이면 ‘저건네 밤나무 밭’에는 기다란 흰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강물에 어리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럼 나는 강가에 나가 밤꽃에 취해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미술 시간이면 ‘밤꽃 강’을 주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밤 꽃피는 6월, 새벽에 깨어나보면 이상야릇한 냄새가 안방까지 퍼져 들어와 숨 쉴 때마다 고역이었다. 아버지는 코로 숨을 ‘흥흥’ 몇 번 들이켜보며 “밤 꽃 냄새 찐헌것 봉게로 올해도 밤께나 열릴랑갑다. 밤이 좀 열려야 애기들 회비 댈턴디 걱정이다”며 담배를 물고 새벽일 하러 나가곤 했다.


 

'저 앞 강을 건너면 바로 코 앞에 있는 밤나무 밭'이라 하여 '저건네 밤나무 밭'이라 불렀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밤송이가 굵어지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풀을 베기 시작했다.



▲ '저 건너 밤나무 밭'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밤송이가 굵어지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풀을 베기 시작했다. 젊었을 땐 아버지가 풀 벨 돈을 대주니 놉을 얻어서 벴다. 그러나 줄줄이 낳은 자식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놈 저 놈 손 벌리기 시작하니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베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식들 객지에 나가 살게 되자 어머니는 친구들과 품앗이 하며 베거나 홀로 베며 가꾸었다.

 

무더운 여름철, 쐐기와 벌 그리고 키를 훌쩍 넘는 풀들과 싸우며 베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 가시 달린 나무들이 유독 많고 거기에 비탈진 곳에서 발을 내딛고 풀 베기란 평지보다 몇 배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밤을 수확하여 자식들 뒷바라지 하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어머니는 낫질하는 일이 즐겁기만 했을 것이다.

 

밤송이가 볼긋해지며 벌기 시작하면 아버지와 형님들은 대나무를 들고 익은 밤나무를 골라 땅에 서서 털거나 밤나무에 올라가 털기도 했다. 그러면 어린 동생들은 밤나무 가지 끝에 두 갈래로 벌어진 여린 가지를 잘라 나무집게를 만들어 삼태기에 담거나 밤나무 밭 맨 아래쪽을 향해 던지며 내려왔다. 아버지는 밤나무 밭 맨 아래쪽 중앙에 밤 구덩이를 크게 파 놓았다. 그런데 어찌나 경사가 심하던지 밤 구덩이 가까운 곳에서 밤송이를 털거나 던지면 밤송이가 밤 구덩이 속으로 떼굴떼굴 굴러 쏙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밤 구덩이에 밤송이들이 차기 시작하면 마른 풀로 덮고 그 위에 물을 적당히 뿌려 밤이 마르지 않도록 했다. 밤 송이가 모두 털리며 밤 구덩이에 모이면 흙으로 덮어 놓았다. 밤이 많이 출하되는 시기를 피해 값이 오르면 팔려고 밤 구덩이에 묻어 놓았던 것이다. 대여섯 가마니씩 밤이 수확되는 가을철이면 자식들 손에 빳빳한 돈이 쥐어지며 밀린 육성회비 독촉장 고지서가 사라지니 부모님 얼굴엔 한동안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부모님은 밤나무 밭 한 켠, 약간 평평한 곳에 조그마한 밭을 일궈 고욤나무를 재배했다. 밤나무 사이사이에 고욤나무를 심어 감나무 접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밤나무 사이에 감나무를 키워 어떡하든 한푼 이라도 더 벌어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밤송이가 볼긋해지며 벌기 시작하면 아버지와 형님들은 대나무를 들고 익은 밤나무를 골라 땅에 서서 털거나 밤나무에 올라가 털기도 했다.

아버지는 밤 나무 사이에 심어놓은 고욤나무가 팔뚝 크기만하게 자라면 봄이면 마을에서 감나무 접목을 제일 잘 붙이는 아저씨에게 부탁해 ‘먹감나무’ 접을 붙였다. 진뫼마을에서는 감 껍질이 붓으로 먹물을 살짝 칠해놓은 듯하다 하여 ‘먹감나무’라 부르는데 기후에 알맞아 나무도 잘 자라고 감도 아주 많이 열린다. 그래서 진뫼마을에는 먹감나무 외에 다른 감나무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아버지는 먹감 씨알이 마을에서 가장 굵은 나무의 새순 돋는 가지를 잘라왔다. 그러면 아저씨는 고욤나무를 베어내고 날카로운 끌을 이용해 두 쪽으로 쪼갰다. 그런 다음 새순 돋는 가지의 맨 아래쪽을 일자(一字) 모양으로 얇게 깎아서 쪼개진 틈새에 넣고 벌레가 들어가 진액을 빨아먹거나 공기가 유입되지 못하도록 비닐종이로 꽁꽁 묶어두었다. 그리고 몽근 흙으로 새순만 보이게 덮어두었다. 그렇게 고욤나무에 먹감나무가 접목되어 ‘저건네 밤나무 밭’에는 밤나무와 감나무가 서로 공존하며 자라게 되었다.

 

가을이면 밤송이 털어낸 밤나무 사이에 군데군데 서 있던 먹감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부모님은 감을 따서 팔기도 하고 곶감을 깎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저건네 밤나무 밭’은 관리할 사람이 없어 잡목들이 우거지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숲으로 변해버렸다. 가끔 고향에 가보면 감나무는 칡넝쿨 우거져 무거운 중량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칡넝쿨 사이로 빨갛게 내밀고 있는 먹감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느 해이던가. 서리 맞은 다디단 먹감 맛을 잊을 수 없어 우거진 숲을 헤치고 들어가 고개 내민 홍시 몇 개를 따려고 하는데 칡넝쿨에 칭칭 감겨 신음하고 있던 감나무를 바라보니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 식구들이 숲 속을 헤치며 감 따는 모습을 큰아버지께서 보았는지 “칠덩쿨 땜시 그 좋던 감나무들 다 죽게 생겼는디 어느 놈 하나 베는 놈 없이 감나무 밭에 들락거리는디 제발 칡넝쿨이나 걷어 불고 감을 따다 묵더니 말더니 허제 그런다냐.”

 

큰아버지는 동생부부가 애지중지 가꾼 감나무들이 잡목과 칡넝쿨에 둘러 쌓여 죽어가니 보기에 안타까워 조카들 귀에 들어가라고 쓴 소리 한 마디 던졌던 것이다.

 

어머니 돌아가시자 외지인에게 팔려버린 집을 내가 다시 구매하자 전주에 사는 큰형님도 고향 집에 발걸음이 잦아졌다. 큰형님은 숲으로 변해버린 밤나무 밭을 바라보며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힘들지만 우리들이 풀을 베며 가꾸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직장에 다니며 주말에만 찾아와 빈집과 텃밭 가꾸기에도 버거우니, 밤나무 밭은 이제 고목이 되어 밤도 많이 열리지 않으니, 또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살지 않아 놉 얻어 벨 수도 없으니 아예 포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큰형님은 “부모님 유산을 저렇게 방치하면 마을 사람들께 욕을 얻어 먹으니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풀을 베며 가꾸려 했다.

 

부모님이 물려준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다 관리할 수 있건만 밤나무 밭은 매년 풀을 베야 하므로 나는 일찍 포기했다. 그것은 벌이 최고로 무서운 나로써는 풀을 베며 가꿀 수 없으니 그냥 두는 게 좋을 듯싶어서였다. 그러나 큰형님은 자동 톱을 소유한 이웃마을 사람과 큰집 형님 그리고 마을친구에게 어렵사리 부탁을 해서 낙엽이 지고 잡목만 남은 겨울철에 밤나무 밭을 깨끗이 벴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14년 동안 방치되어 빽빽하게 자란 잡목은 조선낫으로는 도저히 벨 수 없을 정도로 굵게 자라있었다. 또 칡넝쿨에 둘러 쌓인 감나무는 고사하거나 살아있어도 여러 가지들이 죽어있었다. 가파른 야산에 거름이나 비료 한번 주지 못해 그렇잖아도 부실하게 서 있던 감나무들은 칡넝쿨들이 타고 올라가 전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덮어버려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칡넝쿨 사이로 빠끔히 잎사귀 내밀며 가을이면 빨간 감들이 매달려있던 게 신기할 정도였다.

 

대여섯 가마니씩 열리던 밤나무도 세월이 흘러 고목이 되면서 밤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밤나무 그늘에 가려 햇볕이 늘 그리웠던 감나무나 잘 살라고 감나무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밤나무들은 모두 베어냈다. 한 때 ‘저건네 밤나무 밭’에 밤꽃들이 하얗게 피어 강물에 어리면 ‘밤꽃 강’으로 화려하게 흐르던 모습은 이제 마을 앞에서 사라졌다.

 

칡넝쿨에 칭칭 감겨 있던 감나무가 오랜 억눌림에 해방되자 가을이면 먹물 칠해진 빨간 먹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시작했다. 큰형님은 처서 무렵이면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고향에 내려와 풀을 베었다. ‘어머니는 10여 일씩이나 걸려서 베었는데 나는 몇 일만에 베낼 수 있는가’ 날짜를 계산해가며 베기도 했다. 바쁜 일이 생겨 제 때 풀을 베지 못하면 부모님이 애지중지 가꾼 밤나무 밭, 이제는 절대 묵히지 말아야 한다며 늦가을에라도 꼭 벴다.

 

경찰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큰형님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풀 베기가 힘들었던지 몇 해 전부터는 제초제를 뿌리며 가꾸기 시작했다. 제초제는 경운기를 이용해 서너 시간 정도 뿌리면 되니 손으로 베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큰형님이 힘들게 풀을 제거하며 가꾼 먹감들이 서리를 맞으며 빨갛게 물러지면 6형제 모두 고향 집에 모이는 어머니 제삿날 함께 따서 나눠 먹었다.

 

홍시가 된 먹감들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오래도록 먹으면 평소 잊고 지내던 부모님 생각 잠시 떠올릴 수 있어 좋을 텐데 밤나무 밭 가꾸는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큰 걱정이다. 큰형님 건강이 안 좋아 작년에 베지 못한 풀들이 올해는 숲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작년에는 풀을 베지 않았어도 풀들이 얼마 자라지 않아 앞산에 있는 밭이나 야산 중 유일하게 사람발길 미치는 참 보기 좋은 밤나무 밭이었는데 올 여름 들어서는 잡목과 풀들이 꽉 차버려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 걱정이다.

 

건강이 몹시 안 좋던 지난해 가을, 큰형님은 형수님과 자식들 앞세우고 고향 집에 내려와 ‘저건네 밤나무 밭’에 찾아 갔다. 큰형님이 애쓰게 가꾸어온 감나무들은 다홍빛 물들인 감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며 형님을 반겼고, 식구들이 아빠 건강 때문에 웃음을 잃고 지내다 오랜만에 홍시를 따 먹으며 웃음소리 들리자 큰형님도 흐뭇하게 미소 짓고 서 있던 ‘저건네 밤나무 밭.’ 부모님 유산인 ‘저건네 밤나무 밭’은 절대 묵히지 말라던 큰형님은 안타깝게도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저녁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매년 수북이 돋아나는 저 많은 풀들, 이제 나 혼자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요즘 고향에 가기만 하면 ‘저건네 밤나무 밭’에 눈길이 머물곤 한다. 경사가 심한데다가 거름기 없는 땅이라 유실수 심기는 무리고 잡목이 우거지지 않도록 소나무나 심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소나무들이 자라면 감나무들은 다 죽게 될 것 같아 생각 끝에 불도저로 밤나무와 감나무 사이사이를 밀며 땅을 뒤집어 놓으면 풀들이 크게 자라지 못할 것 같아 그리해볼 작정이다.

 

이젠 허리 굽어 가을이면 앞 산에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들만 쳐다보며 입만 쩝쩝 다셔야 하는 고향마을 사람들. 먹감들, 가을 내내 홍조 빛 띄우며 요염하게 자랑을 하건만 찾아오는 주인들 아무도 없어 겨울 길목에서 바닥에 픽픽 맥없이 떨어져가는 모습들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고향마을이 너무 쓸쓸하기만 하다. 봄이면 아버지들 고욤나무에 접 붙이던 모습 못 본지 오래된 고향마을에 이젠 낫 대신 불도저가 풀을 베며 관리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이를 어쩔 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