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들려오는 소리라곤 나뭇가지 위에서 ‘짹짹’ 소리 지르며 떠드는 참새 떼와 마을 앞 농로용 시멘트 다리 수문 구멍에서 졸졸 흐르는 섬진강 강물소리뿐, 마을은 깊은 산중에 있는 산사의 겨울처럼 너무나 조용하기만 합니다. 마을사람들은 겨울철이 되면 농한기가 되니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아침식사가 끝나면 곧바로 마을 회관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마을사람들은 회관 방에서 점심과 저녁을 공동으로 지어먹습니다. 쌀은 돌아가면서 가지고 오고 반찬은 “누구네 집에 김치가 맛있게 익었네, 싱건지 맛이 끝내주네, 청국장이 맛있게 떴네” 소문이 나면 들고 옵니다. 또 어떤 날은 “우리 집에 아들이 왔다 갔다”며 고기와 생선을 들고 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식을 조달하며 마을 사람들은 겨우내 회관 방에 모여 점심과 저녁을 공동으로 지어 먹습니다. 연로하신 분이 댁에 있는 어머니들은 끼니때가 되면 식사를 차려드려야 하므로 먼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외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회관 방에 모여 공동으로 밥을 지어먹습니다. 어머니 홀로 사시는 분들은 집에서 혼자 밥을 해 드시려면 심란하기도 하고 밥맛도 없을 텐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밥을 해먹으니 밥맛도 좋고 식사시간도 즐겁습니다. 또 회관 방에서 여럿이 모여 놀면 적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홀로 사는 집에 하루 종일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되니 비싼 기름 값을 절약해서 좋습니다.
주말이면 고향에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사는 나도 겨울철이 되면 농한기가 되어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고향에 가지 않았는데 맛있게 익은 싱건지가 떨어져 오랜만에 찾아 갔습니다.
진뫼마을은 지금 16가구에 34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 연로하신 분이 네 분 계시고 대부분 60이 넘으신 분들입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매일 회관 방에 나와 노는 것은 아닙니다. 불규칙적으로 나오시거나 아예 나오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홀로 농사지으며 사시는 어머니 몇 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농한기 철을 맞이하여 서울 아들네 집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자식들이 “농한기 철이나 서울로 올라와 손자들 재롱도 보고 자식들 곁에서 편히 쉬다 봄 되면 다시 내려가라”고 간청하기 때문에 자식들 집으로 모두 떠난 것입니다.
“아이고메! 도수, 언제 왔능가? 참말로 오랜만이네.” “예, 조금 전에 왔습니다.” “근디 눈이 겁나게 많이 왔는디 어치게 왔데아. 눈 많이 오면 차길 미끄러웅게 요럴 때는 댕기지마. 잉” “여그만 눈이 요로케 많이 내려부렀고만이라우. 참말로 진뫼가 꼴짝은 꼴짝인가벼. 곡성쯤 올라옹게 눈이 보이기 시작허도만 여그 옹게 겁나게 와부렀네요.” “밥 안 묵었으면 돼아지 찌개에다 밥 좀 묵제 그려. 돼아지 찌개 쌈박허니 맛있어.” “아니라우, 아까 큰집서 많이 묵었고만이라우.” “근디 100원짜리 화토 치요?” “아니, 우리들이 뭔 돈이 있다고 돈내기 화토를 치겄어.” “어저께 한수양반 큰아들, 작은아들, 며느리, 딸들이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한턱 내고 갔고만. 요것 조것 몽땅 사 들고 와서 한 이틀은 묵어도 남아 불겄어. 그래서 오늘 저녁 남은 반찬에 저녁밥 짓기 화토를 치고 있어. 저녁에 밥 짓는 사람 미리 정할라고 화토를 치고 있는 것여.”
민화투를 치고 있는데 글씨를 쓰고 읽을 줄 아는 담배 집 아줌마가 화투 점수를 노트 맨 뒷면 표지에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큰 글씨로
점수를 써 내려간 담배 집 아줌마는 “300점 내기를 치는데 왜 그렇게 점수가 안 나는지 한 시간쯤은 친 것 같은디 아직도 날라먼 멀었다”며
노트 표지 앞면에 다시 화투 치는 사람들 이름을 적고 있습니다.
“술 한 잔 드실라요? 겨울철이면 얼매나 심심하세요. 마을에 남자들이 몇 분 없응게 겁나게 쓸쓸하지요? 잉.”
지금쯤 고향마을 회관 방에 불은 꺼지고 마을 앞 농로용 시멘트 다리 수문 구멍에서 졸졸 흐르는 섬진강 강물소리만이 고향마을을 밤새도록 지킬 것입니다. 불 꺼진 고향마을에 언제 다시 집집마다 불은 켜지고 노랑나비 한 쌍 훨훨 춤을 추며 마당을 빙빙 도는 그런 햇살 고운 찬연한 봄이 내 곁에 찾아오려는지 진뫼마을의 겨울은 너무나 길게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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