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도 마, 나 외가집 옴선 미아 될 뻔 했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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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살 간지럽게 불어오던 봄바람 맞으며 어머니와 누님은 ‘도롱고테’ 논에서 보리밭을 매고 있었다. 어린 조카들은 보리밭 한켠에 돗자리를 펴놓고 소꿉놀이 하면서 하루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유치원에 다니던 둘째 조카 수영이는 왼쪽 가슴에 하트 모양의 노란 ‘소화유치원’ 명찰을 달고 어머니와 누님 앞에서 재롱부리고 있었다. 양손을 허리에 대고 발끝 올렸다 내렸다 장단 맞추며 “나는 공, 나는 공, 나는 공주다”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 들려주고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와 누님은 환하게 웃으며 보리 사이에 ‘낑긴’ 풀 호미로 가볍게 찍어대며 지루했던 하루 해 뒷산으로 넘기고 있었다.
“이쁘게도 생겼제 잉! 어디서 숨었다가 이제사 요놈 새끼가 나왔능가 모르겄어.” 네 명의 어린 조카들. 어느새 성장하여 딸 셋은 결혼했다. 조카들은 어린 시절 외갓집에 대한 추억들 간간이 떠올랐던지 휴일을 이용해 남편들 앞세우고 진뫼마을에 모여들었다. “삼촌이 외갓집 다시 사 놓은 게 우리가 와 볼 수 있어 참 좋고만. 시집 가기 전엔 잘 몰랐는디 가끔씩 외할머니가 보고 싶더라고. 어릴 때 나 돌림병(전염병)이 돌아 죽을 뻔 했다는디 외할머니가 대리(다려) 준 약 묵고 살아났데아. 외할머니는 내가 잊을 수 없는 분이여.”
둘째 조카 수영이는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았던지 안방에 걸린 어머니 사진 바라보며 계속 추억담 이어가고 있다. “외할머니가 아랫집서 내게 술 찌갱이를 좀 믹있는갑써. 맛있는 음식인줄 알고 못내못내 헝게 믹있겄제. 어린 게 술기운이 팍 올라와 가꼬 혀 꼬부진 소리를 험선 비틀비틀 돌아댕긴 게 애기가 혹시 어치게 되아불껨시 애간장께나 탔데아. 술하고는 인연이 깊은지 보리 벨 때 할머니는 꼭 내게 막걸리 받아오라고 심부름 시키드라고. 하하! 그럼 나는 노란 주전자 들고 회관 구멍가계에 가서 받아 갔는디 그때마다 ‘술 맛’이 궁금해 한 모씩 마셨던 생각이 나. 막걸리 받아다 주면 할머니가 ‘우리 강아지, 심부름도 잘 헌다’ 고 머리 쓰다듬어주시면 기분 짱이었제. ” “말도 마. 동생들 많다고 외할머니 따라서 진뫼 오다가 나 순창 터미널에서 미아 될 뻔 했어.” 어머니는 누님 집에 갔다가 자식들 줄줄이 낳아 힘들게 키우는 모습 보고 첫째 조카 수경이를 데리고 진뫼마을로 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남원을 출발한 버스를 타고 순창 터미널에서 내려 임실 고향집 가는 완행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원에도 다니지 않던 어린 조카는 외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버스 기다리고 있는데 지나가는 할머니 손에 복숭아가 들려져 있자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는 “여기 잠깐만 서 있거라. 내 얼른 저기 점빵(가게)가서 봉숭아 하나 사올께”하고 가게로 갔다. 아뿔싸! 그런데 복숭아 사 들고 온 사이 외손녀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손녀가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자 당황한 어머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우리 손주(손녀) 안 보았소” 크게 소리치며 찾아보았지만 손녀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둥지둥 파출소에로 달려간 어머니. “우리 손주 인자 어치게 헌데아. 빨리 좀 찾아줏쇼!” 당황한 어머니는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저 발만 동동 굴리며 빨리 찾아 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그런지 그때는 찾아달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더란다.
“터미널 근방서 금방 잊어부렀당게. 복숭(복숭아) 사온다고 허고 점빵 좀 갔다온 새(사이)에 애기가 사라져 부렀더라고. 아이고메! 인자 내 손주 어쩐데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터미널 주위를 샅샅이 뒤지며 찾아보았으나 조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유괴를 당한 건 아닌지 순창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를 대상으로 모두 검문하도록 이웃 지서에 연락을 해두었다. 어머니는 터미널 인근 골목을 허둥지둥 뛰어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애타게 찾고 있었다. 하지만 금세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손녀가 눈 앞에 나타나지 않자 바싹바싹 목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애기가 어디로 사라져 부렀다냐 응! 참말로 귀신이 곡헐 노릇이네. 참말로 큰일 나부렀고만.” 터미널 근처 골목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멀리서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와 마주친 경찰. 그렇잖아도 쿵쿵거리는 심장 더 뛰게 하고 있었다. “할머니! 외손주를 잃어버렸으니 인자 사위 얼굴 어치게 볼라요?
어린 조카는 가게 간 할머니 모습 보이지 않자 막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타버린 것이다. 너무 어려서 글씨도 모르니, 우선 눈 앞에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버스에 할머니가 있는 줄 알고 올라타버린 것이다. 조카는 버스 안에 외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덜컹덜컹 비포장길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울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뒷좌석에서 애기가 엉엉 울길래 ‘저 애기 보호자 없소’ 소리 쳤더니 아무도 대답을 않더라고요. 그리서 ‘저 애기, 보호자 없이 차를 잘 못 탔구나’ 생각하고 순창 가는 버스 만나면 다시 태워줄라고 허고 있었지라우.” 버스 기사님은 청웅지서 앞에 정차하여 조카를 내려주고 있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다면 버스 기사님이 경찰서에 연락하면 쉽게 끝날 일을 가지고 어머니는 한바탕 큰 홍역을 치른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손녀를 보자 어머니는 와락 부둥켜 안고 “너 없어져 부렀으먼 내 남은 인생 어치게 살아갈 것이냐!” 기뻐서 얼굴 마구 비벼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쑥 뜯으러 가는 모습을 본 누님은 망태를 챙기고 있다. “우리도 쑥 좀 뜯으러 가자. ‘쑥개떡’ 해서 골고루 나누어 줄텅게 모두 가자.” 누님과 조카 부부들은 망태 둘러메고 섬진강 변에 나가 향기로운 쑥 뜯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쑥만 보먼 나는 수영이 살린 생각이 나. 울 엄마가 다 죽어가는 우리 수영이 살렸거든. 그 때 돌림병이 돌았는디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을 믹이도 낫덜 않허더라고. 하여간 먹었다 허먼 줄줄 싸고 물까지 다 토해버렸응게. 며칠 동안 아무것도 묵지 못헝게 나중에는 애기가 축 처져 불더라고. 그리서 무서운 게 엄마한테 달려와부렀제. 엄마는 애기를 보자 ‘요로케될 때까지 뭐더고 있었냐’며 인진쑥에다 꼬감(곶감)을 넣고 대리기 시작허더라고. 엄마가 대린 물을 억지로 믹있더니 애기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하더라고. 어쩔 때는 의사가 지어주는 약보다 민간에서 지은 약이 더 효염(효험)이 있을 때가 있어. 그때 내가 엄마한테 오길 잘 �제. 그라�으먼 넘덜 애기들처럼 우리 수영이 죽었는지도 몰라.” 둘째 조카 수영이는 누님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 들으며 열심히 남편과 쑥을 뜯고 있다. “그리서 내가 우리 외갓집으로 놀러 가자고 헝게 남편이 ‘좋지’ 해서 온 것 아니여.” 깔깔대며 웃고 있다. 결혼해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어린 시절 옛 추억들 자꾸만 생각나 진뫼마을 외갓집에 찾아왔다는 조카들.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텅 빈 집이지만 외갓집에 대한 추억만은 고스란히 남아 집이 떠들썩 하다. “생각보다 마을이 참 이쁘고 좋네요. 장모님 집에 모였으면 술 몇 잔 안 마셨을 텐데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아 그런지 술이 자꾸 술술 넘어가네요.” 이태 전 결혼한 둘째 조카 남편은 진뫼마을 봄풍경이 너무 아름답다며 계속 술잔 돌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외할머니 할아버지 지켜보고 있는 안방에 온 가족 모여들어 왁자지껄하는 모습 보니 사람은 가도 추억만은 지워지지 않아 ‘고향집 산 보람’이 내 가슴 가득 뭉클하게 차오르고 있다. 추억 새록새록 돋게 하는 고향집.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대궐집 기둥보다 더 아름답고 예쁘게 서 있는 우리집 기둥 나무 보듬으러 이번 주 휴일이면 나는 또 고향으로 발길 옮길 것이다. 가도 가도 가고 싶은 푸르름 짙어가는 그리운 내 고향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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