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죽거든 햇빛 한번 쐬게 해주라” | ||||||||||||||||||||
| 부모님 묘 이장하던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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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때 뽑지 않고 그대로 놔둔 배추도 지난 겨울의 칼바람 이겨내고 연노랑 물결 이루며 봄나비떼 불러들이고 있다.
겨울철이면 하루도 쉬지 않고 도시락 싸들고 진뫼마을 산이란 산은 모두 더트며 선산까지 나무하러 다니던 어머니.
99년 봄. 인근 마을 곳곳에 흩어져 누워계신 조상님들 선산에 모셔와 유택을 새로 지어드리게 되자 집안 형님들은 우리 형제들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내게 다짐이라도 받듯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나 죽거든 햇빛 한번 꼭 쐬게 해주라. 내 너그덜한테 바랄 것 하나 없지만, 나 죽으먼 괘(관)는 꼭 빼주어야 헌다. 관이 썩으먼 내 몸도 비틀어져 누워 있을 것 아니냐. 그러면 안 돼제. 한평생 너그덜 위해 먹도 입도 못허고 손발 닳게 뛰어댕�응게 죽어서는 핀히 좀 누워 있을란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논밭으로 뛰어다니며 열심히 살았던 어머니는 죽어서만큼은 편히 누워 있고 싶다 했다. 99년 봄. 햇살 한번 쐬게 해달라는 어머니 소망이 이뤄지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형제들은 동생이 이장하는 모습 보면 안 좋다 하니 집에서 음식 장만 도와주고 있으라 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몇 십 년 만에 칠흑 같은 어둠 뚫고서 자식들 만나러 오는데 가지 않다니. 세상에 불효 중에서 그런 불효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장 하던 날 아침. 가고 싶었지만 발길 떨어지지 않아 나는 도저히 나설 수 없었다. 어머니 보고 싶어 밤마다 베갯잇 적시던 숱한 날들 떠올라 머리 가로젓고 있었다. 남의 손으로 입혀진 수의 탈탈 털고 일어나는 어머니, 내 품에 안기면 ‘어머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꼭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평생 흙과 나뒹굴며 검붉어진 얼굴 사라진 모습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상상하기 싫었다.
‘지금쯤 부모님은 어둠 헤치고 나오고 계시겠지. 벌써 햇빛 봐 부렀을까’
강 건너 그만그만하게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뒷산 남쪽 봉우리 선산을 감싸고 있는 벌통바위 울울창창한 소나무가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지금쯤 형님들은 부모님 만나려고 땀 뻘뻘 흘리며 삽질하고 계시겠지. 부모님은 어둠 헤치고 따스한 봄 햇살 쬐며 자식들 만나니 얼마나 좋아하실까.’
“보먼 안 좋다는디 너 뭐더게 벌써 올라오냐. 쬐께 있다가 올라가.”
“그러도 평생 못 만날 줄 알았는디 자식새끼들과 하루 만난게 얼매나 좋은가. 오메는 오늘 따땃헌 햇빛 한번 쬔게 겁나게 좋을 것이네. 내게 괘 빼주라고 몇 번을 애기�는디 인자 소원 이뤘응게 핀히 누워 잠드실 수 있겄고만….”
선산 가는 길. 밤나무 아래 누님과 나란히 앉아 부모님과 일곱 남매 부둥켜 안고 오순도순 살던 행복했던 지난 시절 뒤돌아보며 잠시 이야기꽃 피우고 있었다.
그 시간. 이승으로 잠시 소풍 나온 부모님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봄 햇살 쬐며 자식들 품에 안겨 깨끗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자식들 손으로 개운하게 목욕 끝낸 부모님은 선조님부터 먼저 유택을 새로 짓느라 해가 기울 것 같아 큰형님 짊어진 바지게 올라타고 진달래꽃 붉게 핀 선산을 내려왔다.
18년 전, 어머니 심어 놓았던 통통한 무와 배추. 어머니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선산으로 떠나던 날 밤, 첫눈 내려 꽁꽁 얼어버렸던 무와 배추가 이제야 봄바람 타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텃밭에 꽃수를 놓고 있나 보다. 그 무와 배추꽃. 바람이 불 때마다 허리 굽혀 꽃잎 문드러지도록 절을 하고 있는 듯해 나도 바람 불 때마다 허리 굽혀 땅에 절을 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을도 많이 변했지요. 사람들 지나다니는 발자국 소리 예전 같지 않을 겁니다. 마을은 이제 텅텅 비어 절간처럼 조용해져 버렸지요. 그리운 집에 오셨지만 안타깝게도 들어갈 수가 없네요. 하지만 이 곳 텃밭에서 별과 달을 이불 삼아 오늘밤 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잡시다.’
날이 어두워지자 둘째 형님과 나는 번갈아 가며 부모님 곁을 지켰다. 어머니 담배 한대 꼬나물며 땀을 닦던 밭두렁에 앉아 지나온 세월 이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데 앞산에 볼그스름하게 떠오른 초승달 빙그레 웃고 있다. 밤새 불어대는 차가운 봄바람에 새벽녘 손발 비벼대며 일어섰다 앉았다 추위 쫓고 있는데 시린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 텃밭에 쏟아져 내려와 내 몸 따스하게 녹여주고 있다.
날이 밝자 바지게 타고 다시 선산으로 가야 하는 부모님. 나는 텃밭에 계신 부모님을 차례로 가슴에 꼭 껴안고 바지게에 태웠다. ‘어머니 아버지! 텃밭에 내려쬐는 따스한 햇살 많이 받고 가시는가요. 이 텃밭, 지금 아이들과 함께 주말이면 내려와 손발톱 속에 흙 집어 넣고 있어요. 마을에 오니 참 좋으시지요. 이제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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