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 돌리며 다니던 ‘대숲밭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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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는 도롱고테 우리 논 바로 윗논에서 보리를 베며 “곧 있으면 뺑이치로 간디 쉬지도 못허고 맨날 일만 허다가 군대 가게 생겼다”며 이마에 흐르는 땀 닦고 있었다. 현호와 나는 가끔씩 명렬이 형님이 운영하는 회관 구멍가게에서 겁도 없이 외상술을 먹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큰일날 이었지만 부모님들은 자식이 군대 간다고 하니 세간살이 뒤흔드는 일 저지르지 않는 한 ‘혼나는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있었다. 취기는 ‘알딸딸’ , 흘러간 옛 노래는 강가에 울려퍼지고
한달 가까이 진뫼마을 산골짜기 논밭 쫓아다니며 보리 베고 이모작 모내기까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회관 뒷집에 사는 친구 오금이네 아버지께서 갑자기 현호와 나를 가게로 불렀다. “그 전 같으먼 마을에서 송별식도 해주고 그런디 시방은 그러덜 않헝게 내 너그덜한테 막걸리 한 잔 사줄라고 불렀다. 그나저나 고생 허겄다. 하여간 몸 성히 잘 다녀 오는 게 부모님한테 효도하는 거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 노릇헝게 힘들더라도 잘 다녀 오니라.”
다음 날, 평밭 들머리에 있는 오금이네 논에 모내기를 하러 갔다. 점심을 먹고 나면 모내기꾼들은 그늘 찾아 들어 단잠을 자곤 한다. 새카만 얼굴에 더벅머리 청년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강변 길가에 자라고 있는 아까시나무 그늘에 누워 단잠을 청하는데 내 옆에 누운 오금이 동생 진성이가 잠 못 이루고 있었다. “서울 가도 마땅히 배운 기술이 있어야 자리를 잡제. 농사 지어봤자 맨날 도로그택(변함이 없고)이고. 희망이 보여야 일헐 맛이 나제. 그래도 지금은 요로케 형들이랑 일허로 댕긴 게 심심허지는 않아 좋은디 곧 있으먼 형들도 군대 다 가불먼 나 혼차 어치게 시골서 지낸데아. 참말로 까깝허고만.” 해가 서산에 기울자 하루 종일 허리 굽혔다 폈다 모 심기에 지친 친구들과 후배들은 ‘허리병 치료제’인 소주병 바닥내고 있었다. 모내기 끝난 논에서 저녁 먹는 시간. 집에서 놉 식구들까지 모두 불러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먹던 저녁식사는 언제부턴가 모내기한 집주인이 너무 힘들어 모내기 끝난 논 바라보며 길가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밥 먹기 전, 논바닥에 꽂아둔 어린 모 바라보면 왜 그리 맘이 뿌듯한지 밥 한술 뜨지도 않았는데도 배가 불러왔다. 저녁 먹을 때 마저 남은 소주병과 막걸리 통개 완전히 바닥을 낸 품앗이 꾼들. 식사가 끝나자 어둑어둑 땅거미 내리며 평밭 들녘에 개구리 우는 소리 요란하게 들려왔다. 어둠 내린 논두렁에 벗어 놓은 신발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데 모두들 술기운 ‘알딸딸’하게 올라와 흘러간 옛 노래 강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날밤, 마을 친구들은 큰집 골방에 모여 혀 꼬부라진 소리로 떠들며 놀고 있었다. 친구들은 이웃 통안마을에서 진뫼마을 강변 ‘상급배미’ 논 아래로 천렵 왔다가 마을 사람들과 한바탕 패싸움 벌인 이야기로 좁은 골방에 구멍 난 문풍지 윙윙 울리고 있었다. “통안(마을)이 사람들이 우리 마을로 놀러 왔다가 겁도 없이 한판 붙었다 디지게 깨지고 갔잖아. 진뫼가 마을은 쬐깐히도 그때 청년들은 모두 한가락씩 다 �어 잉! 그때 죽은 용식이형이 정자나무 옆 찬수네 보리밭에서 이단옆차기로 차분디 아이고메! 참말로 겁나불도만. 태권도를 히서 그런가 몸이 훨훨 날아불더랑게.” 몽롱한 술기운 머리 끝까지 올라와 있는데 죽은 셋째형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갑자가 깊은 슬픔에 빠져 들며 눈물 핑 돌았다. 함께 자취하며 대학교 다니다 갑자기 떠나버린 형. 그렇잖아도 보고 싶어 형이 누워 있는 강 건너 큰집 ‘대숲밭’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핑 돌곤 했다. 식구들은 강 건너 평밭에 일하러 가는 길에 꼭 지나가야만 하는 대숲밭이 나오면 항상 긴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와 함께 가는 날이면 더더욱 고개 숙이며 억지로 헛기침 해대며 애써 눈길 피해 강을 바라보며 지다 다니곤 했다. 젊은 나이에 가버려 항상 보고 싶고 그리워하던 형 얼굴 떠올라 눈물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형이 보고 싶다”며 엉엉 울며 방문 박차고 대숲밭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징검다리 건너 대숲밭 가는 강변 오솔길. 친구들은 “오밤중에 지금 어디를 갈라고 허냐”며 붙들며 말렸다. 하지만 평소 보고 싶어 억누르고 지내던 슬픔 활화산처럼 폭발해버려 나도 어찌하지 못하고 대숲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대숲밭 한켠 묵정 밭에 잠들어 있는 셋째 형 무덤 찾아가는 길. 어디에 무덤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덤 오르는 길은 잡목과 내 키를 훨씬 넘는 풀들 우거져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붙잡으려 뒤쫓아 오고 있었 나는 엉엉 울며 내 키 훌쩍 넘는 풀 이리저리 헤치며 무덤 찾아가고 있었다. 형이 죽고 난 뒤 어머니는 내 바로 위에 형과 나를 데리고 딱 한번 무덤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무덤을 쓰다듬으며 통곡하던 어머니. 무덤 앞에서 그 모습 떠올리니 더 슬퍼져 무성하게 자란 풀 내리치며 나는 통곡하고 있었다. “용식이 형! 여기가 어디가디 누워 있어. 얼릉 일어나 나랑 함께 집으로 가자. 오메는 날마다 형을 부르며 가슴 쥐어 뜯으며 살고 있어. 불쌍한 우리 형! 어서 일어나 나랑 집으로 가자.” 나를 따라온 친구들, 무덤 아래 대숲밭 길가에 서성이고 있었다. “도수야! 그만 울고 얼릉 니롸” 계속 부르고 있었다. 봇물처럼 한번 터져버린 울음 멈추지 못하고 나는 어둔 강물 위로 통곡 소리 하염없이 실어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내려오라고 고함을 쳐도 계속 울고 있자 친구들은 무덤까지 올라와 내 양쪽 어깨 붙들어 잡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 김도수 "고 놈 떠나고 난 뒤, 내가 지금까지 어치게 산지 아냐"
마을로 돌아와 큰집 골방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머리는 띵하고 속이 울렁거려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는데 문밖에서 어머니 부르고 있었다. “잘 헌다. 내 속을 갈기갈기 찢어 뒤 짚어 놓은 게 좋제. 내 썩은 창시 어지간히 긁어내라.” 어머니는 어젯밤 일을 다 알고 있었다. 징검다리 건너 대숲밭 가는 강변에서 친구들과 옥신각신 붙들고 뿌리치는 소리에 내가 형 무덤 찾아가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어머니.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을 맞은 나는 어머니 얼굴 슬쩍 한번 쳐다보았다. 어머니 역시 퉁퉁 부어 있었다. 그날 밤 내가 어머니 오장육부 다 뒤 짚어 놓았으니 어찌 편히 잠들 수 있었겠는가. 어머니 얼굴 차마 바라볼 수 없어 고개 숙이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그런데 손등이 쑥쑥 아려왔다. 술에 취해 잠이든 어젯밤은 잘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손등 곳곳이 날카로운 풀에 베인 상처자국 낭자했다. 맨주먹 불끈 쥐고 무덤 내리치며 울었으니 날카로운 풀들, 내 손을 가만두었겠는가. 난도질 당한 손등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양 손 다 성헌데가 없고만. 너 오늘 쓰래리서 모 어치게 숭굴래. 고 놈 떠나고 난 뒤, 내가 지금까지 어치게 산지 아냐. 너그덜이라도 나를 편허게 히줘야제. 너그덜이 내 속을 그렇게 뒤집어 놓으먼 나 오래 못산다.” 그날 아침 나는 실 장갑 끼고 새몰마을 정자나무 아래 종옥이네 논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 찌려고 논물에 손 담그는데 어젯밤 어머니 마음 갈기갈기 찍어놓은 가시들 내 손등에 다시 박히며 쑥쑥 아려왔다. 성공해서 고생하신 부모님 편히 한번 모신다고 늘 노래 부르던 형. 형은 몇 년 전 대숲밭을 떠나 선산에 잠들어 계신 부모님 곁으로 따라갔다. 하지만 아직도 한밤중 내 눈물 받아 고개 떨구던 풀들 다시 일어서는 봄이면 나는 아직도 대숲밭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산다. 그날 밤, 맨 주먹 불끈 쥐고 무덤 내리치며 형 이름 부를 때마다 어머니도 이불 속에서 ‘니가 내 앞에 뗏짱을 두르다니…’ 가슴 쥐어뜯으며 울었으리라. 어머니 눈물 받아 흐르던 섬진강. 망덕포구에 이르기도 전 짠물이 되어 흐느적흐느적 흘러 갔을 그 짠 강, 지금 앞산에 핀 밤꽃 품어 안고 흘러 마을이 다 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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