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아이들 가슴에 ‘고향’을 선물하다

버들개지 2011. 5. 13. 13:22

아이들 가슴에 ‘고향’을 선물하다

책보 메고서 아빠의 초등학교 등굣길 체험중인 가애와 민성이.


밤마다 꿈 속에서 고향 진뫼마을을 헤매고 다니다 꿈에 그리던 고향집을 산 지 열네 해. 고향 집을 샀을 때 딸 가애와 아들 민성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가애는 대학생이 되었고 민성이는 고3이 되었다.

주말이면 자식들 앞세우고 고향에 돌아가 폐가로 방치되었던 집을 고치는 동안 아이들은 잘도 뛰어다니며 놀았다. 마을에 또래 아이들 한 명 없어 심심해 할 줄 알았는데 둘이서 마을과 강변을 휘젓고 다녔다. 봄이면 강가에 나가 송사리를 잡아 고무신 속에 담아와 병 속에 넣어두고 하루종일 바라보다 광양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강변에 민들레, 제비꽃, 토끼풀 환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과 함께 자랐다. 주말에 진뫼마을만 다녀오면 그 날 일기장은 빽빽하게 두 장을 넘기기 일쑤였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마당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눈사람을 만들곤 했다. 생활의 터전인 광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 떠날 채비를 하면 아이들은 “우리 쬐께만 더 놀다 가자!”며 붙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고향집을 나서려는데 민성이가 세숫대야에 눈을 담고 있었다. 광양에는 눈이 잘 내리지 않고 내려도 금세 녹아버리니 ‘집에 가서 눈사람 만들어 놓고 싶다’며 마당에 쌓인 눈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눈이 녹지 않도록 단단하게 뭉쳐 광양으로 실어와 아파트 복도에 눈사람을 만들어 세워 두기도 했다.

고향 집을 샀던 첫 해, 마을 앞 고추밭에 고추를 심었다. 비닐을 씌우고, 모종을 심고, 지지대를 꽂고, 고추가 자라는 동안 잡초를 뽑는 일을 항상 아이들과 함께 했다. 고추밭은 시간을 초월해 3대가 서로 땀 흘리며 만나는 소중한 땅이기도 했다.

마을 앞 징검다리에서.


그 해 고추농사는 대풍작을 이뤘다. 뙤약볕 아래 식구들 모두 고추를 따는데 딸내미가 땀 삐질삐질 흘리며 열심히 따는 모습을 모정에서 보던 마을 어머니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따 뜨건디 띵깡(떼)도 안 부리고 애들이 잘도 허네. 신발 신을 겨를도 없이 뛰어댕김선 일허던 월국떡을 손지들이 쏙 닮아부렀는가벼.”

그 해 고추 농사가 하도 잘 돼서 다섯 형제가 부모님 농사짓던 땅에서 자란 고추로 모두 김장을 담글 수 있었다. 고추밭에서 흙 일구며 땀 흘리던 시간들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봄이면 봄마다 발바닥 간지르는 밭을 밟아보고 싶어 안달이 날지도 모른다.

엄마아빠가 진뫼마을 집을 사서 가슴 속 깊이 고향의 추억들을 심어 주었으니, 그 보물 같은 보따리를 버리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겠지. 여름밤 은하수 이불 덮고 별 헤며 자던 벼락바위, 책보를 어깨에 메고 아빠의 어린 시절 등굣길을 따라 걷던 강둑 길과 논두렁 길, 겨울이면 비료포대 썰매 타고 놀던 뱃마당…. 모두 고이 간직할 것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결혼을 하더라도 자주 고향집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고향집 마당에 온 가족이 함께 목련을 심어 놓고 ‘가족나무’란 이름을 붙여 놓기도 했다. 집에 오면 꼭 뒤란도 돌아보도록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도 심고 각자 이름이 새겨진 푯말도 세워 스스로 가꾸도록 했다.

먼 훗날에도 민성이와 가애가 ‘봄잉게 지금쯤 마당에 부모님이랑 심어 놓은 목련이 활짝 피었을까? 뒤란에 심어 놓은 내 사과나무도, 부모님 나무인 복숭아도 곱게 피었겠지. 여름잉게 지금쯤 복숭아가 맛있게 익어가겠지. 가을잉게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겠지?’라고 고향집 풍경 그려볼 수 있도록.

진뫼마을은 지금 산벚꽃이 한창이다. 강변은 하루가 다르게 연둣빛 물감을 덧칠해 놓은 듯 푸르러지고 있다. 앞으로 아이들이 그 어느 곳에서 살든, 고향 마을의 환하고 따뜻한 봄 풍경과 마을 어르신들이 아낌없이 베풀어주던 정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김도수님은 광양에 거주하며 주말이면 고향인 진뫼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징글징글한 고향사랑’의 마음을 담은 산문집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전라도닷컴)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진뫼마을 아이스링크 뱃마당에서 썰매 타기.

 

여름밤 벼락바위에서 잠자고 나서.

지게에 나뭇짐 지고 징검다리 건너기.


섬진강이 준 선물, 다슬기 잡기.


방아개비 친구 만난 날.


봄이면 나물 캐고.


배추 심는 데도 한몫.


고향집 마당에서 참깨 털기.


풀피리도 불어보고.


고향집 마루.


마을 앞 정자나무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환하게 피어난 목련꽃. 고향집 마당에 심은 ‘가족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