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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메! 여기 독 속에 구물구물허게 들었 네!” 입대하는 아들 위해 미꾸라지를 잡아다가 시래기와 갖은 양념을 넣고 가마솥 가득 끓여내 던 어머니의 추어탕. 눈물나도록 그리운 그 맛! |
| ⓒ 김도수 | 바람 불면 날아갈 듯 몸집이 왜소하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늘 비실비실해 ‘갈비’라는 별명을 얻고 살았던 나. 그렇게 체력이 약한 막둥이 자식이 영장을 받은 81년 늦가을. 입대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애가 탔다. “뭘 믹이서 군대 보낸다냐. 중전(마을) 가서 외상으로 돼야지 고기 몇 근 사다 낄이줘야 헐턴디…. 날짜는 무장무장(점점) 앞으로 다가온디 내가 일만 허느라고 아들 몸보신도 못 시켜주고 있다…”
“아이고메! 여기 독 속에 구물구물허게 들었네”-몇 날 며칠 먹었던 추어탕 추수를 다 끝내고 난 어느 날, 콩 타작하려고 준비했으나 날씨가 흐렸다. 어머니는 하늘을 흘깃 한번 쳐다보더니 “오늘은 콩 뚜들지 말고 미꾸라지나 잡으러 가자”며 둥근 함지박과 바가지들을 챙겼다.
농사일 외에는 좀처럼 다른 일은 하지 않던 어머니. “돈이 없어 괴기는 못 사 믹일 망정 미꾸라지라도 잡아 체력 보강히서 군대 보내야겄다”며 미꾸라지 잡으러 나섰던 것이다. 어머니는 미꾸라지가 있겠다 싶은 곳을 평소 눈 여겨 봐두었던지 곧바로 상급배비 논 아래 강변으로 갔다.
강가에 물이 방방하게 고여 미꾸라지가 있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자 나는 뗏장을 떠 다 물길을 가로막고 어머니와 함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물이 바닥을 드러내자 미꾸라지들이 진흙탕 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내가 큰 돌을 떠들면 그 아래 숨어 있던 미꾸라지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치려 하면 어머니는 재빨리 바가지를 들고서 “아이고메! 여기 독 속에 구물구물허게 들었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미꾸라지를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래기와 갖은 양념을 넣고 가마솥 가득 물을 붓고 추어탕을 끓였다. 식사 때마다 부모님과 내 밥 그릇 옆에 놓여지던 추어탕. 어느 날 어머니 밥 그릇 옆에서 사라지더니 아버지 밥 그릇 옆에서도 사라졌다. 국물이 닳아져 짭조름해지자 어머니는 물을 더 붓고 끓여 계속 내 밥 그릇 옆에 올렸다. 몇 날 며칠 끼니 때마다 먹어도 감칠맛 나던 추어탕은 질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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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돼지 고기 한 근을 못 믹여 미안하다”며 잡아주신 오리 세 마리 추어탕을 먹이고 난 다음 어머니는 뭐를 해 먹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집 나간 오리를 생각해 내고는 오리를 잡아주려 했다. 그러나 늘 농사일에 치여 사는 우리집은 집 나간 오리들이 강가 어디쯤 머물고있는지 소재 파악도 되지 않고 있었다.
오리는 새끼 때부터 해지면 집으로 들어오도록 길들여 키운다. 아침에 강으로 몰고 나갔다 해가 뉘엿거리면 집으로 몰고 들어온다. 그렇게 길들여 키운 오리들은 해지면 꼬박꼬박 집으로 잘도 들어왔다.
말 잘 듣던 오리 새끼들이 어미 오리가 되자 하루 이틀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마다 농사일 끝내고 집에 들어와 허리 누이고 싶던 해거름녘, 나는 힘들게 오리들을 몰고 왔다. 그러다 가을걷이가 시작되자 바빠서 집에 들어오지 않던 오리들을 강가에 방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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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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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두메산골 진뫼마을에 형형색색 꽃수를 놓던 붉은 낙엽들,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며 그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던 날. 남쪽 저리소산 아래 강부터 샅샅이 뒤지며 강 따라 내려갔으나 오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뛰엄바위에 이르렀을 즈음 오리 한두 마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십 여 마리나 되는 오리라 떼거리로 몰려다닐 거라 생각했으나 짐승들이 잡아먹어 버려 단 세 마리뿐이었다.
강가에 방치해 날짐승으로 변해버린 오리들을 집으로 몰고 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함을 지르고 돌팔매질하며 힘들게 올려 보내면 머물던 자리로 다시 가버리기 일쑤였고, 마을 쪽에서 쫓으면 강 건너 쪽으로 건너가 버렸다. 쫓고 쫓다가 날이 저물어 포기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함께 몰고 오자며 간짓대 들고 따라 나섰다. 길들여 사육하지 않고 오랫동안 강에서 살아버려 날짐승으로 변해버린 오리들. 돌팔매질하며 고함을 질러봐도, 간짓대로 강물을 탕탕 내려치며 물장구를 쳐봐도, 오리들은 좀처럼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 하지 않았다.
작전을 바꿔 어머니와 강 양쪽에서 쫓았다. 그러나 날짐승으로 변해버린 오리들은 몇 미터 전진하면 곧바로 강물을 타고 평소 머물고 있던 제자리로 가버리곤 했다. 오리들은 집으로 가는 것을 아예 잊고 있었다.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나는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 몸을 오들오들 떨며 힘들게 쫓아 집으로 몰고 왔다. 어머니는 “보약 캥이는(커녕) 돼지 고기 한 근을 못 믹여 미안하다”며 세 마리 모두 잡아 주었다. 날짐승으로 변한 자연산 오리라 그런지 무를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인 오리탕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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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몸보신시키려고 오리 잡으러 간 내 어머니. 돌팔매질하고, 고함 지르고, 간짓대로 탕탕 내려치기도 하던 그 강물. 변함없이 진뫼마을 앞을 흐르고 있다. |
| ⓒ 김도수 | “안 믹이고 보내먼 내가 두고두고 맘이 걸릴 것 같어”-토끼 옻칠기 군대 가기 십 여일 전쯤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리자 마을 형님 몇 분이 토끼몰이를 갔다가 토끼를 한 마리 잡아왔다.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자 “울 아들, 내일 모레 군대 가는디 옻칠기 내서 한 마리 히믹일랑게 나한테 팔소. 안 믹이고 보내먼 내가 두고두고 맘이 걸릴 것 같은 게 나한테 팔아.” 형님들이 절대 안 팔겠다던 토끼를 사정사정해서 외상으로 가지고 왔다.
어머니는 ‘옻’을 타는 편이었다. 몸이 허약한 아들을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토끼 옷칠기’ 내주려고 옻나무 껍질을 벗겨왔다. 어머니는 토끼 고기에 옻나무 껍질을 넣고 가마솥에 푹푹 삶다 그만 얼굴에 김이 쏘여 눈이 퉁퉁 부어버렸다.
어머니는 토끼 고기를 먹기 전, 달걀 노른자를 내 손과 입술에 골고루 발라주고 나머지를 먹게 했다. 옻 오르는 사람은 항문까지 가려우니 달걀 노른자를 바르고 먹으면 괜찮다며 미리 예방을 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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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군에 입대하는 날짜가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 몸이 허약한 아들 체력 보강시켜준다며 ‘토끼 옻칠기’ 내서 먹인 어머니. 혹시 아들 얼굴에 옻이 올라 눈이 퉁퉁 붓거나 몸이 가려우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으나 다행이 건강한 몸으로 정읍역에서 논산훈련소 가는 입영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상급배미 강변에서 미꾸라지 잡으며 환하게 웃던, 오리 쫓느라고 간짓대를 강물에 탕탕 두드리며 고함 질러대던, ‘옻’이 올라 얼굴까지 퉁퉁 부어가며 밥상 위에 토끼 옻칠기를 올리신 어머니의 ‘체력 보강용 고기’들. 시래기 넣고 고소하게 끓인 추어탕과 무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인 오리탕. 토끼 고기에 옻나무 껍질 넣고 푹푹 고아 쌉싸래하던 ‘토끼 옷칠기’. 어머니 정성이 듬뿍 담긴 몸보신용 음식들은 제대하는 그 날까지 약효 100% ‘사랑의 보약’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