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정자에 앉아 국수를 먹으며

버들개지 2007. 5. 21. 11:41

정자에 앉아 국수를 먹으며
 김도수 

  | 호수 : 46호(삶이보이는창) 

 

올 봄, 고향마을 텃밭에 참깨를 심었다. 텃밭이 마을 앞에 있는 관계로 신경 쓰면서 농사짓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욕깨나 얻어먹기 십상이다. 시기가 지나도 씨를 뿌리지 않거나 곡식들이 풀 속에 갇히거나 밭두렁에 자란 풀들이 곡식을 덮는다든가 하면 안 된다. 그러기 전에 깨끗이 매주고 베어줘야 하니 주말에 고향집에 도착하면 바쁘기만 하다. 풀을 매놓고 돌아서면 곧바로 돋아나는, 한 주만 안 가면 난리 치는 풀들과의 전쟁을 계속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촘촘하게 뚫린 검정 비닐 사이로 우북하게 자란 참깨를 두세 개씩 남기고 솎는다. 어떤 놈은 비닐 구멍으로 나오지 못하고 어떡하든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비닐 구멍 안쪽에 고개를 내밀며 비닐을 봉곳하게 쳐들고 있다. 비닐 구멍 안팎에 참깨와 풀들이 한 데 뒤섞여 참깨 솎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튼실하고 싱싱해 보이는 참깨를 두세 개씩 남기고 솎아내면 몸과 몸을 서로 기대며 자라다 홀로 서 있으려니 지탱할 힘이 없어 비실비실 주저앉는다. 그러니 비닐 구멍에 흙을 도포하여 참깨를 세워줘야 하고, 또 고랑에 자란 풀들까지 매줘야 하니, 백이십 평 되는 텃밭이 천 평도 넘게 보이며 일은 더디기만 하다.
쪼그리고 앉아 참깨를 솎아줘야 하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농사, 아무나 짓는 게 아니다. 인내와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 뿌린 씨앗을 자식처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멀었다. 힘들 때마다 계속 수익성을 따지며 농사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참깨가 내 입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고향으로 달려와야 할 기름값이며, 고속도로 통행료며, 이것저것 잡비까지 합치면 수확량의 몇 배는 더 사 먹을 수 있는데 괜히 고생만 하고 있구나 후회를 한다.
올 봄, 텃밭에 참깨를 심는다고 하니 “이젠 제발 그만 농사짓고 편하게 쉬다 오라”며 즐기는 생활을 권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솔깃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어쩌랴. 부모님 손톱 발톱 속에 들어갔다 나온 찰진 흙들, 차마 내 손에서 끝내 버릴 수는 없어 끙끙거리며 참깨를 솎는다.

허리 쉼을 하며 뒤를 돌아본다. 예쁘게 솎아준 참깨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흡족해 기쁘기만 한데 매야 할 밭이랑을 보면 밭에서 뛰쳐나가 버리고 싶다. 매야 할 참깨밭을 쳐다보니 구릿빛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당장 호미를 놓고 뒷산에 누워계시는 부모님께 달려가 ‘아버지 어머니,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릎 꿇고 엉엉 울고 싶다.
텃밭 바로 위에 있는 정자에서 놀고 계시던 어머니들이 부른다.
“어이 도수, 고만 허고 얼릉 올라와. 퍼져불먼 맛 없응게 어서 와.”
“예, 바로 올라갈게요.”
“도수는 집에 오먼 한시도 쉬지를 않고 일만 혀. 여기서 뻔득 저기서 뻔득, 참말로 하루 종일 일만 허다가 가. 월곡떡 탁이서 그런가 부지런도 혀.”
국수다. 찬물에 막 씻어온 윤기 나는 쫄깃쫄깃한 국수가 플라스틱 함박에 가득 담겨 있다. 어머니들은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부터 차례차례 한 그릇씩 퍼 담아 준다. 국수를 받아 든 사람들은 상추 무침을 넣고 비벼서 비빔국수로 먹기도 하고, 대가리만 남은 멸치에 호박을 잘게 썰어 푹 삶아낸 멸치국물을 붓고 말아 먹기도 한다. 모두들 국수 그릇에 입을 바짝 대고 입술을 오므려 ‘후루룩 후루룩’ 국수가락을 빨아올린다.
함박에 가득 담긴 국수를 보고 ‘저 많은 국수, 누가 다 먹을까.’ 걱정을 했다. 맥없는 기우였다. 정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숫자만 생각하고 집에 계신 분들과 마을 앞에서 일하고 계시던 어머니들은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국수를 나누어주던 점순이네 어머니는 “현철이네 어메도 안 왔고, 영애네 어매도 안 왔고, 세운이네 어매도 저기 밭에서 일허고 있고, 빠진 사람이 상댕히 많고만.” 내 짧은 생각을 나무라는 듯 국수는 금세 줄어들고 있다.

국수를 먹다 보니 모내기 할 때 품앗이꾼들이 논두렁에 앉아 소주 한 잔씩 걸치며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수 먹던 생각이 난다. 이 세상 그 어떤 악기로도 감히 흉내낼 수 없었던 국수 빨아올리는 소리가 오랜만에 정자 안에 울려 퍼진다. 새참 때면 마을 공동체 소리 들리던 논두렁에 ‘후루룩’ 소리 끓긴 지 이미 오래다.  
이농 현상이 고향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폐가로 방치된 집들이 늘어나고 어머니 홀로 사는 집들, 하나 둘씩 불 꺼져가며 정적만 감도는 고향마을. 모내기 철이면 논두렁에 앉아 국수 빨아올리며 ‘후루룩’ 소리 요란하던, 허리치료제 소주잔을 기울이던 풍경은 이제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대신 늙으신 60대 아버지 홀로 이앙기를 끌며 모내기 하는 모습만 있을 뿐이다.

나도 멸치국물에 국수를 말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다. 어찌나 맛나던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그릇을 비우고 다시 빈 그릇을 당숙모님 앞에 슬며시 내민다.
“엄머! 도수 겁나게 배고팠능갑다. 일 허고 묵응게 마싯제?”
“예. 겁나게 맛있고만이라우.”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국수를 맛본단 말인가. 어디서 이런 멋진 화음에 동참하여 호사를 누린단 말인가.
“어이 도수, 쏘주 한잔 혀. 참깨 솎아내는 것이 심는 것보다는 몇 배나 더 힘들 것이네. 허리 무쟈게 아프제? 일일이 구멍마다 손질 히야헝게 겁나게 더뎌. 농사 져묵는 것이 보통이 아녀. 어매들도 힘든디 자네는 오죽허것능가. 참말로 깨 좀 묵을라고 애쓰고만, 애써.”
소주잔을 단숨에 비우고 안주를 집어 먹으려 하니 상추 무침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상추 저리고 남은 된장 그릇이 보인다. ‘아 그렇지. 저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으면 되지. 풋고추에는 막걸리가 제격인디 소주면 또 어떠랴.’
정자 바로 앞에 심어놓은 풋고추를 한 움큼 따다 쟁반 위에 올려놓으니 마을 사람들 달려들어 풋고추에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킨다.
“아따, 고 놈 징그랍게 매웁네. 쏘주 맛은 어디로 가불고 매운 맛만 입 속에 남아부네.”
매운 입 속을 달래느라 연방 ‘씩씩’거리면서도 한잔 더 먹고 싶은지 소주잔을 내민다.

술잔이 오고 가고 맛있게 국수를 먹고 있는데 세운이네 할머니가 내 앞에 앉아 국수를 드신다. 돌아가신 어머니보다 아홉 살 위인 세운이네 할머니는 나와 함께 밭을 매러 다닌 밭동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허리 굽혀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시는 세운이네 할머니 어깨 너머로 앞산 초록물결이 하늘거리며 뙤약볕에 밭 매러 다니던 그 여름날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어머니들은 푹푹 찌는 폭염 속에서도 품앗이 하며 밭을 매러 다녔다. 아침이면 손잡이가 달린 밥 소쿠리에 보리밥을 가득 담아 들고, 둥근 소쿠리 속에 반찬과 소주 대두병을 담아 머리에 이고 강 건너 비탈진 앞산과 남쪽에 있는 평밭으로 밭을 매러 다녔다.

점심이 끝나고 오후가 되면 발바닥까지 뜨겁게 달아오르던, 호미로 밭을 득득 긁으면 먼지만 폴폴 올라오던 그 폭염 속에서 어머니들의 애절한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땅을 콕콕 찍어대며 콧노래로 읊조리던 애달픈 삶의 노랫가락들. 지금 ‘후루룩’ 국수를 빨아올리는 어머니들의 등 굽은 허리 너머로 무성하게 숲을 이룬 앞산의 밭들이 눈앞에 다가온다.
앞산은 밭 매기가 힘들 정도로 경사가 심한 곳이다. 그곳에 부모님들은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고 한지(韓紙)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를 심고 그 사이에 콩을 심었다. 닥나무 때문에 콩밭은 바람 한 점 없이 푹푹 찌기만 했고 어머니들은 폭염을 이겨내기 위해 술 한 잔씩 드시며 흘러간 옛 노래를 불러댔다.
애절하게 불러대는 노랫가락이 강바람을 타고 간간이 집 앞 느티나무까지 들려왔다. 느티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소꿉장난을 하고 있으면 왕매미가 울어대고, 무더위에 지쳐 퍽퍽한 땅을 찍어대며 몸부림치는 어머니들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말매미들, 올 여름도 어김없이 느티나무에 찾아와 고향 떠나간 마을 사람들을 찾아 부르며 울어대고 있다. 그러나 떠나간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외지에서 놀러 온 사람들만이 뽕짝 노래 크게 틀어놓고 고스톱을 쳐대며 삼겹살 굽는 냄새만 피워대고 있다. 그래도 말매미는 계속 악을 쓰며 울어댄다.
앞산에서 콩밭 매며 애절하게 노래 부르던 어머니들 노랫소리도 끓긴 지 이미 오래다. 콩밭 매던 어머니들 이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있고, 젊은 며느리들도 백발이 되어 품앗이 할 사람도 놉 구할 사람도 없게 됐다. 대대로 물려받아 식솔들 허기를 면해주던 앞산의 콩밭들이 묵정밭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쎄빠지게 농사 지어 콩 몇 말 수확해봤자 허리만 휘어지고 빚만 늘어나니, 힘에 겨워 콩 다발 이고 강을 건너 올 수 없으니 노랫소리 끊긴 게 당연한 일이지. 당연한 일이었겠지.

이제 앞산의 밭들은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갔다. 두메산골 강변마을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한 집 두 집 모여들어 논밭을 일구고, 새끼들 굶주리지 않기 위해 비탈진 앞산까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괭이를 들고 개간을 하던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게 됐다.
자손 대대로 농사지어 자식새끼들 굶어 죽지 않게 키워냈으니 이제 옛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매만지던 흙들 뿌리친 죄, 어찌 면할 수 있을까.
고향 떠나간 사람들 앞산 묵정 밭 앞에 모여 그 동안 배고픔 덜어주던 고마움들 뿌리친 죄, 다 받아 굽어 살피라고 언제 제(祭)라도 한번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산에 콩밭들, 이젠 완전히 묵정밭으로 변해버렸고 다음 차례는 강 건너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평밭’이다. 경사진 두메산골에서 제일 평평한 곳이라 ‘평밭’이라 불리는 그곳도 고부랑 허리로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 머지않아 곧 묵정밭으로 변해갈 것이다. 지금 정자에 모여 앉아 국수를 드시는 부모님들, 한 집 두 집 자꾸만 불 꺼진 집들이 늘어나니 말이다.
비탈진 앞산 밭에서 손을 떼고 이제 평밭만 손에 쥐고 일하시는 어머니들. 해가 떠도 밭에 가시지 않고 오늘도 정자에 모여 “이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 일 못해 묵겄다”며 굽은 허리를 마루바닥에 부리며 돌아눕는다.

부모님들 한 분 두 분 평밭 가는 걸음 멈춰서고, 정자에 모여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무심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살겠지. 언젠가 오늘 ‘후루룩 후루룩’ 국수가락을 빨아올리며 합창을 하던 마을 공동체 소리도 옛 이야기가 되어버리겠지.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수를 먹던 마을 사람들, 모두 자리를 뜨자 세운이네 할머니 홀로 남아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어느새 평밭 가는 길에 눈길을 주고 있다. 세운이네 할머니 오늘도 강물을 따라 평밭에 밭 매러 가는 모양이다.



글쓴이:  전남 순천에 거주하며 주말이면 고향인 전북 임실 진뫼마을로 돌아가 밭 농사를 짓고 있고, 산문집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전라도닷컴)를 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