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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설날에 눈 내린 '앞산' 풍경. |
| ⓒ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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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자나무 뒤로 보이는 '앞산'. |
| ⓒ 김도수 | 초등학교 5,6학년이던 겨울방학. 그 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구들이 마을 앞산인 장산(長山)으로 등산을 다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을 앞에 모여 해발 350미터쯤 되는 앞산을 낑낑대며 올라 다녔다.
경사가 아주 심한 비탈길이라 몇 미터 오르면 입에는 뜨거운 입김이 훅훅 품어져 나왔다. 우린 ‘어서 정상에 올라가 아침밥 짓는 어머니께 고함을 질러 자랑을 해야지’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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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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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산' |
| ⓒ 김도수 | 징검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20여 미터쯤 가다 보면 앞산 오르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다 보면 앞산 남쪽 능선 정상에 도달하는데 그곳에 ‘신씨 묘’가 자리잡고 있다. 나무하러 가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 잠시 쉬며 뒤따라오는 일행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가곤 했다. ‘신씨 묘’에서 동쪽으로 계속 직진하여 가면 ‘맥골’이 나오는데 우린 그 곳까지 나무를 하러 다녔다.
앞산을 넘어 골짜기마다 지게를 받쳐놓고 나무를 하던 진뫼마을 사람들. 나뭇짐을 꾸려 산을 내려오는 길엔 앞서 내려온 사람들이 또 ‘신씨 묘’에서 나뭇짐을 받쳐놓고 일행들을 기다렸다 함께 내려오곤 했다.
등산을 즐기던 친구들도 ‘신씨 묘’에서 헐떡거리던 숨을 잠시 멈추며 휴식을 취했다. 다시 앞산 정상을 향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10여 분쯤 오르다 보면 조그마한 바위가 우뚝 서 있다. 그 바위에 서서 아들이 산 정상에 올라왔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아침밥 짓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모두들 ‘야호’를 목청껏 외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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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산에서 바라본 마을. 섬진강에 눈이 녹고 봄기운이 찾아들었다. |
| ⓒ 김도수 | 다시 앞산 정상을 향해 가파른 길을 잠시 오르다 보면 평평한 산등성이 길이 나온다. 산등성이 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다 보면 ‘절골’ 골짜기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윗마을 물우리 사람들이 봄이면 고사리 꺾으러 다니던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옹달샘이 나온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무릎 꿇고서 앞산에 절을 해대며 목을 축였다.
옛날에 절이 있다 해서 ‘절골’이라 이름 붙여진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면 등산은 모두 끝이 났다.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였는데 무엇보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기쁨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아침밥 짓는 어머니께 야호를 외쳐대며 부지런하고 씩씩한 어린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어 등산은 내겐 큰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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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가 염소들. |
| ⓒ 김도수 | 겨울방학 숙제로 선생님께서 글을 써오라 했는데 나는 마을 앞산으로 등산 다니던 글을 써서 냈다. <등산을 하면 건강에도 좋고 높은 산에 올라가 마을을 바라보며 내가 장차 커서 무엇이 될까 미래의 꿈을 펼쳐보는 시간이 있어 좋았다. 등산을 마치고 징검다리에서 땀을 씻으면 기분이 너무 상쾌했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 앞산을 바라보면 내가 ‘9자’를 그리듯 앞산을 한 바퀴 빙 돌고 왔다는 뿌듯한 기분이 들어 너무 좋았다.>
선생님은 내가 쓴 글이 좋았던지 수업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읽어보라고 했다.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거나 발표를 하면 부끄러워 얼굴이 홍당무가 되곤 하던 나는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내 글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선생님은 ‘글을 참 잘 썼다’고 칭찬을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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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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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석이 동생 딸내미들이 쇠죽쑤는 황토방 앞에서. |
| ⓒ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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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설 명절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해가 바뀔수록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명절 분위기도 나지 않고 썰렁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아내도 ‘진뫼도 이젠 다 됐다’고 썰렁한 설 명절 분위기를 말한다.
“누구네 집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안 왔는데 우리 집만 왔다. 함께 놀아줄 아이들도 없으니 설 지내고 바로 집으로 내려가자. TV도 잘 안 나오고 컴퓨터도 없으니 너무 심심하다.” “경기가 안 좋긴 안 좋은가 봐요. 사람들이 통 안 보여. 왜 그렇게 갈수록 마을이 썰렁헌지 모르겄어. 설 돼도 조용헌 것 봉게로 인자 진뫼도 망했는갑쏘.”
아내 말마따나 마을에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 몇 분 돌아가시면 진뫼마을도 문 닫는 날이 올 것만 같다. 출향해서 사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아이들 다 가르치고 나면 귀향해서 살겠다고 하지만 그 때까지 집들이 쓰러지지 않고 온전하게 버틸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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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산에 오르다. |
| ⓒ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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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설 쇠러 왔던 사람들 대부분 떠나간 설 다음날 오전. 아이들과 아내를 앞세우고 앞산에 올라갔다. 아빠가 나뭇짐 짊어지고 내려오다 넘어졌던, 겨울방학 때 아침이면 마을을 바라보며 어머니께 고함을 치던 앞산에 가보고 싶었다.
아이들은 산길에 들자 마자 “아빠, 너무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어요. 꼭 올라가야 하나요?” 입을 헉헉거리며 가쁜 숨 몰아 쉬며 가파른 길에 주저앉고 만다.
“야, 빈 몸으로 올라가는데 힘이 들어서야 쓰겄냐. 평소 산에 안 다니니 다리에 힘이 없어서 그래. 아빠는 이 길을 어렸을 때부터 나뭇짐 짊어지고 내려왔으니 얼매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겄냐?”
앞산 우측 8부 능선쯤 올라갔을 때 갑자기 길이 사라지고 없다. 내가 올라 다녔던 길은 잡목과 가시덩굴이 우거져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몇 년 전 설 연휴에 마을 선후배들과 함께 올라왔을 땐 숲이 우거져 있어도 그런 대로 길을 뚫고 갈 수 있었는데 이젠 아니다.
잡목이 비교적 덜 우거진 밤나무 숲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간다. 그런데 밤나무 숲이 끝나자 잡목이 우거져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뒤 따르던 아이들은 “아빠는 진뫼서 몇 십 년을 살았다면서 앞산 길 하나 제대로 못 찾아 헤맨다”고 핀잔을 준다. “아빠, 더 이상 올라가지 말고 여기서 집으로 내려가요”하며 자꾸만 짜증을 낸다. 그 때마다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면 아깝지 않느냐며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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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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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씨묘를 지나다. |
| ⓒ 김도수 | 내가 맨앞에서 잡목과 가시덩굴을 모두 제거하며 가는데도 가시덩굴이 하도 많아 아이들과 아내는 연신 가시에 찔리고, 잡목은 얼굴을 때린다. 가시덩굴에 손과 발이 긁히고 찔리고 옷을 뚫고 들어오는 가시를 빼내며 뒤따라 오던 아내와 이이들. 언제 길이 다시 나타나느냐고 계속 묻는다. 힘들게 숲을 헤치며 참고 또 참으며 뒤따라 오던 아내와 아이들이 고함을 지른다.
“앞에 감선 까시덩쿨 좀 꺾어 불고 가제 왜 걍 몸만 빠져나가. 애기들 얼굴에 까시덩쿨 다 덮치고 있잖아.” “아빠는 진뫼는 모르는 데가 없다고 맨 날 큰 소리 뻥뻥 치더니 산길 하나 제대로 못 찾고 헤매고 있고만. 길 잊어 불고 우리들에게 시방 거짓말 치고 있제.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이야?”
여기서 돌아가버릴까. 아니지. 힘들게 가시덩굴 헤치고 정상 부근까지 왔는데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지금부턴 인내와 끈기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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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가시덩굴 속을 오랫동안 헤매던 끝에 드디어 앞산 남쪽 산등성이에 다다르니 길이 나타난다. 아이들 얼굴에 갑자기 환한 미소가 돈다. 포기하지 않고 전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미소다.
‘임산’(林氏山)을 가로질러 앞산을 오르는 산등성이 길은 아직 살아있었다. 앞산 남쪽 산등성이 정상에 있는 ‘신씨 묘’에 도착해 우린 목을 축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맥골’이란 곳이 나온디 내가 그곳까지 나무를 허로 댕깄어. 여기서 쫴께만 더 올라가면 야호를 외치던 우뚝 선 바위가 나타난게 한바탕 바짝 힘 써서 올라가자. 경사가 심히서 좀 힘이 들 것인디 여그만 올라가 불먼 이젠 힘든 곳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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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아이들은 ‘임산’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집에 가자고 한다. 나도 길이 사라져 너무 힘들 것 같아 포기하고 내려갈까 생각도 해봤다. 아내 눈치를 살펴보니 포기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래, 이번에 올라가지 못하면 아이들은 영영 앞산에 발 딛고 서 있어 볼 날이 없을 거야.
드디어 초등학교 겨울 방학 때 아침이면 마을을 행해 힘껏 야호 소리 외치던, 우뚝 선 바위 옆에 섰다. 부모님 떠나버린 텅 빈 집을 항해 야호, 다들 외지로 떠나버린 텅 빈 마을을 향해 다시 야호를 힘껏 외쳐댄다.
야호 하고 외치면 산에 오르지 않은 아이들이 마을에서 다시 야호하고 대답을 해주던 아름답던 그 겨울아침. 여기저기서 야호 소리 요란하게 들려오던 섬진강변 작은 강변마을엔 이제 메아리 소리 대신 봄눈 녹아 흐르는 강물만이 ‘졸졸’ 노래하며 봄을 부르고 있다.
조금만 더 오르면 평평한 길이 나오니 힘을 내자며 아내와 아이들을 격려한다. 낙엽 쌓인 가파른 길이라 계속 미끄러지며 넘어진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다리가 아프면 쉬었다 다시 걷고 오르고 또 오른다. 2시간이면 앞산을 한 바퀴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길이 사라져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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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렸을 적 저 바위에 올라 야호를 외쳤다. |
| ⓒ 김도수 | 앞산 정상의 산등성이를 따라 가는 길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잡목이 자라지 못해 그런 대로 갈 만했다. 앞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진뫼마을 풍경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잡목에 가려 온전히 바라볼 수는 없었다.
산 정상에서 물우리 가는 길로 접어든다. 목말라 꿀떡꿀떡 마셔댔던 옹달샘은 숲이 우거져 찾을 길 없고 ‘절골’로 내려오는 길 역시 사라져 또다시 가시덩굴 숲을 헤치며 내려와야만 했다.
조금만 내려가면 근방 길이 나오겠지 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던 가시덩굴 숲.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님과 누이 고사리 꺾으러 함께 왔던 곳인데 이젠 완전히 길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깊게 패인 계곡이 새로 생겨 그 곳으로 어렵사리 내려왔다.
절골 5부 능선쯤 명렬이 당숙네 밭이 보이자 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밭은 이미 숲으로 변해 다만 밭이 있었다는 흔적인 감나무들만이 칡덩굴에 엉켜 씨름하고 있다.
“아빠, 여기까지 어떻게 밭을 짓고 살았어요. 밭에 오려면 넘넘 힘들었겠다. 옛날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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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려오는 길. |
| ⓒ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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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강과 마을이 보이자 아이들은 콧노래 부르며 즐겁게 내려온다. 무겁게 걷던 발걸음 역시 가볍고 힘차다. 오전 10시50분에 오르기 시작해 오후 2시20분에 강가에 도착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물에 세수를 하며 힘들게 산을 오르고 난 뒤 땀을 씻는 쾌감을 만끽한다.
앞산을 다시 바라본다. 밤이면 식솔들 등 따뜻하게 데워주려고 나무하러 오르던 길. 끙끙대며 힘들게 오르는 길이 아까워 욕심껏 나무다발 꾸려서 내려오다 그만 주르륵 미끄러져 넘어질 때마다 나뭇단 다시 홀쳐 매고 일어서면 무거웠던 나뭇짐이 가벼워져 있어 입술 깨물며 씁쓸하게 내려오던 그 길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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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우리네 삶도 항상 평탄한 길만 걸을 수 없듯이 때론 무거운 짐을 지고 경사진 산을 내려오다 미끄러져 구르는 ‘지게꾼’ 인생일는지도 모른다. 몇 번씩 넘어지고 구르다 보면 어느새 나뭇단은 줄어들어 짓누르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다. 손에 잡혔던 모든 것들 다 쥐고 갈 수 없음을 앞산 길에서 나는 배웠다.
아이들 언젠가는 ‘내가 저 앞산에 발 딛고 서 있던 설날이 있었다고, 가시덩굴에 온 몸이 찔려 아픈 산이었다’고 회상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한번은 더 앞산을 바라보며 보듬고 있는 시간을 가져보겠지.
강 건너 고향 진뫼마을만 바라보며 사계절 내내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으며 언제나 듬직하게 서 있는 앞산.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오르고 싶은, 아버지 굽은 등 같은 산. 나 평생 앞산을 바라보며 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