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고향집 정자나무 아래 텐트를 치고

버들개지 2007. 11. 21. 10:22
고향집 정자나무 아래 텐트를 치고

▲ 진뫼마을 앞 정자나무.
ⓒ 김도수


휴가나 명절 때 고향에 찾아가면 꼭 하룻밤이라도 자고 오고 싶었다. 그러나 고향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 있으니(그땐 아직 고향집을 사지 않은 때였다) 마음뿐이었다. 큰집 작은집이 있기는 하지만 맘 편하게 자고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아쉬움만 남긴 채 발길을 돌리곤 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95년 8월. 내가 태어나 자란 보금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항상 잊지 못해 밤마다 꿈속에서 나타나는 고향 진뫼마을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 휴가를 떠났다. 드디어 텐트를 장만해서 작심하고 떠난 것이다.


돗자리 깔고 마을 사람들에게 술과 고기 대접
들뜬 마음으로 고향 가는 길. 마을 어르신들께 시원한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려고 아이스박스를 사서 술과 고기 과일 등을 담았다. 간단하게나마 점심도 드리려고 묵은지에 밑반찬 몇 가지와 밥을 해 갔다.

마을 앞 강변에 서 있는 두 그루 정자나무. 지금은 모두 외지에서 놀러 온 사람들 차지가 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회관 앞 모정도 지어지지 않은 때라 큰 정자나무 아래는 아버지들이, 작은 정자나무 아래는 어머니들이 쉬고 계셨다.

작은 정자나무 아래다 돗자리를 깔고 마을 사람들에게 고기 구워 술 한 잔씩 대접해 드렸다. 술 한잔에 너무 고마워하는 마을 사람들. 사실 술을 대접받아 고마운 게 아니라,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온 내 발걸음에 더 행복을 맛보고 계신 것이었다.

아내와 자식들 데리고 고향에 찾아간 나도 기분이 좋아 부모님들께서 따라주는 술을 덥석덥석 받아 마시고 있었다. 이젠 그만 해야지 하면서도 “오랜만에 고향에 왔는디 내 잔도 한 잔 받으소! 요 놈, 딱 한잔만 더 혀” 하는 바람에 차마 내미는 술잔 뿌리치지 못해 자꾸 받아 마셨다.

‘기분이 딱 좋을 만큼’ 취기가 올라와 있는데 윗것테 사는 종길이 아제가 또 소주병을 들고 내 앞에 앉는다. “어따, 도수가 고향을 잊지 않고 요로게 찾아와 술 한 잔씩 대접히 준게 참말로 고맙고만. 자네가 고향에 올 때마다 (자네)집 나오먼 꼭 연락 주라고 히쌌는디 집 판다는 얘기가 안 나온게 내가 더 안타까와 죽겄네. 언젠가는 안 팔겄는가. 오늘 자고 가제? 내 잔, 딱 한잔만 더 받소!”

어머니들은 두메산골 강변마을에서 ‘월곡떡’과 한평생 흙에서 나뒹굴며 땀흘렸던 옛이야기들을 정겹게 나누고 있었다.
“월곡떡이 살았으먼 막둥이 자식이 요로케 술 받아와서 우리들한테 대접히 준게 얼매나 좋아라고 �을까? 아마 덩실덩실 춤췄을 것이여.”

 

“넘덜 오메는 다 있는디 왜 울 오메만 없데아”
자식새끼들 먹이고 가르치느라 징그럽게 일만 하다 떠난 어머니. 함께 밭을 매던 친구 어머니들은 다 있는데 왜 ‘월곡떡’만 없을까? 어머니 없는 쓸쓸한 고향….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며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설움에 복받쳐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두 다리 쭉 뻗고 목놓아 울고 말았다.

“울 오메가 보고 싶네요. 그 좋은 계곡 다 뿌리치고 내가 왜 진뫼로 휴가를 오는지 알아요. 울 오메가 보고 싶어서 와요. 그런디 넘덜 오메는 다 있는디 왜 울 오메만 없데아. 오메! 내 술 한잔 받고 가제 뭣이 그리 급허가디 빨리 가 불었어. 오메! 보고 싶어 미치겄소. 울 오메는 어째서 막둥이 자식 술 한잔도 못 받고 고생만 허다 가 불었데아.”

 

“어따, 어메 보고 싶으먼 몽땅 울어 불소. 나 죽은 뒤 도수같이 어메 보고 잡다고 고향에 찾아와 울어줄 자식 하나만 있어도 나는 원이 없겄네.”
깨복쟁이 친구 종옥이 어머니는 어메가 보고 싶다고 울어대는 나에 대한 ‘짠한’ 마음보다 죽은 뒤에도 자식에게 사랑 받는 월곡떡에 대한 부러움이 더 컸나 보다.

 

“아먼, 어메가 보고 잡겄제. 얼매나 넉 어메가 보고 잡으먼 니가 휴가를 여그로 왔겄냐. 니가 운 게 내 맘이 짠허다. 넉 어메는 하도 건강히서 오래 살 줄 알았는디 그렇게 허망허게 가불 줄 누가 알았겄냐!” 큰어머니는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얼굴 좀 닦아라고 건네주고 있었다.

 

취직이 되면 주말마다 술 받아오라고 하던 내 어머니 월곡떡. 막둥이 술 한 잔 못 받고 떠나버린 것이 못내 가슴 쓰라렸는데 펑펑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러나 마을 어르신들께 술 한잔 드린다고 불러놓고 괜히 추태를 부린 것 같아 창피했다. 정자나무 아래서 함께 쉬고 있던 어머니들이 저녁밥 지으러 모두 돌아가자 아내가 버럭 화를 냈다.

 

이럴라고 고향으로 휴가 오자고 �소? 지금 나이가 몇이요. 참말로 어이가 없고만. 어린 자식들 얼굴 보기 챙피히 죽겄네.”

 

부모형제 옹기종기 모여 살던 때가 너무도 그리워
해가 지자 큰 정자나무와 작은 정자나무 사이 도로가에 텐트를 쳤다.
“텐트는 무슨 텐트냐. 얼릉 걷어 불고 우리집으로 들어가서 밥 묵고 자자. 집 놔 두고 무슨 텐트 속에서 잔다고 그려.”

눈이 퉁퉁 부어 가지 않으려 했지만, 큰아버지 손에 끌려 큰집 식구들 틈에 끼여 몇 숟가락 뜨고 와서는 아이들과 함께 나란히 텐트 속에 누웠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니 뒷산에서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가 참으로 처량했다. 어머니 없는 고향 땅이 더욱 서럽고 허전해서,  부모형제들 옹기종기 모여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살던 때가 너무도 그리워서 또 다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밤 깊을수록 더욱 커지던 여울물 소리에, 밤새 아린 마음 후벼파는 소쩍새 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강변이 희부염해지며 동이 터올 무렵, 퉁퉁 부은 눈을 문지르고 있자니 울 어메 보고 싶다고 눈물 펑펑 쏟고 만 어제 일이 떠올라 밝은 대낮에 마을 사람들과 얼굴 마주할 일이  창피했다.
해서, 곤한 잠에 빠져든 아내와 아이들을 깨웠다. 마을을 떠나려 하니 그새 야금야금 가슴 속에 스며 든 물안개가 내 발목을 꽉 붙들었다. 밤새 울어대던 여울물 소리 따라 나도 남쪽 저리소산 아래 강물로 젖어 들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아침밥 먹자며 나를 깨우러 나왔다. 그런데 분명 있어야 할 자리에 텐트가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 강변에 텐트를 치고 잤는지 벼락바위부터 상급배미 논 아래 강변까지 샅샅이 뒤지며 찾으러 다녔다. 동생 부부 떠난 쓸쓸한 고향으로 여름휴가 차 찾아온 조카가 울고 떠나버렸으니 큰아버지는 그날 아침 얼마나 마음이 쓰리고 아팠을까.

 

분명 정자나무 밑에다 텐트를 치고 잤는디 아침에 밥 묵으라고 깨우러 강게 텐트가 없어져 부렀더라고. 가먼 간다고 이애기나 허고 가제 그랬냐. 그리야 내가 안 찾제. 그날 아침 내가 갱본을 다 뒤지고 댕김선 너를 얼매나 불렀는지 알기나 허냐?”

 

98년 고향 집을 사기 전까지, 휴가철이 다가오면 아내는 늘 말하곤 했다.
“또 텐트 갖고 진뫼로 갈라요? 고향에 가서 한바탕 엉엉 울고 와야 휴가 갔다 온 기분이 안 나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