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집 정자나무 아래 텐트를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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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깔고 마을 사람들에게 술과 고기 대접 들뜬 마음으로 고향 가는 길. 마을 어르신들께 시원한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려고 아이스박스를 사서 술과 고기 과일 등을 담았다. 간단하게나마 점심도 드리려고 묵은지에 밑반찬 몇 가지와 밥을 해 갔다. 마을 앞 강변에 서 있는 두 그루 정자나무. 지금은 모두 외지에서 놀러 온 사람들 차지가 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회관 앞 모정도 지어지지 않은 때라 큰 정자나무 아래는 아버지들이, 작은 정자나무 아래는 어머니들이 쉬고 계셨다. 작은 정자나무 아래다 돗자리를 깔고 마을 사람들에게 고기 구워 술 한 잔씩 대접해 드렸다. 술 한잔에 너무 고마워하는 마을 사람들. 사실 술을 대접받아 고마운 게 아니라,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온 내 발걸음에 더 행복을 맛보고 계신 것이었다. 아내와 자식들 데리고 고향에 찾아간 나도 기분이 좋아 부모님들께서 따라주는 술을 덥석덥석 받아 마시고 있었다. 이젠 그만 해야지 하면서도 “오랜만에 고향에 왔는디 내 잔도 한 잔 받으소! 요 놈, 딱 한잔만 더 혀” 하는 바람에 차마 내미는 술잔 뿌리치지 못해 자꾸 받아 마셨다. ‘기분이 딱 좋을 만큼’ 취기가 올라와 있는데 윗것테 사는 종길이 아제가 또 소주병을 들고 내 앞에 앉는다. “어따, 도수가 고향을 잊지 않고 요로게 찾아와 술 한 잔씩 대접히 준게 참말로 고맙고만. 자네가 고향에 올 때마다 (자네)집 나오먼 꼭 연락 주라고 히쌌는디 집 판다는 얘기가 안 나온게 내가 더 안타까와 죽겄네. 언젠가는 안 팔겄는가. 오늘 자고 가제? 내 잔, 딱 한잔만 더 받소!” 어머니들은 두메산골 강변마을에서 ‘월곡떡’과 한평생 흙에서 나뒹굴며 땀흘렸던 옛이야기들을 정겹게 나누고 있었다. “월곡떡이 살았으먼 막둥이 자식이 요로케 술 받아와서 우리들한테 대접히 준게 얼매나 좋아라고 �을까? 아마 덩실덩실 춤췄을 것이여.”
“넘덜 오메는 다 있는디 왜 울 오메만 없데아”
“어따, 어메 보고 싶으먼 몽땅 울어 불소. 나 죽은 뒤 도수같이 어메 보고 잡다고 고향에 찾아와 울어줄 자식 하나만 있어도 나는 원이 없겄네.”
“아먼, 어메가 보고 잡겄제. 얼매나 넉 어메가 보고 잡으먼 니가 휴가를 여그로 왔겄냐. 니가 운 게 내 맘이 짠허다. 넉 어메는 하도 건강히서 오래 살 줄 알았는디 그렇게 허망허게 가불 줄 누가 알았겄냐!” 큰어머니는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얼굴 좀 닦아라고 건네주고 있었다.
취직이 되면 주말마다 술 받아오라고 하던 내 어머니 월곡떡. 막둥이 술 한 잔 못 받고 떠나버린 것이 못내 가슴 쓰라렸는데 펑펑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러나 마을 어르신들께 술 한잔 드린다고 불러놓고 괜히 ‘추태’를 부린 것 같아 창피했다. 정자나무 아래서 함께 쉬고 있던 어머니들이 저녁밥 지으러 모두 돌아가자 아내가 버럭 화를 냈다. “이럴라고 고향으로 휴가 오자고 �소? 지금 나이가 몇이요. 참말로 어이가 없고만. 어린 자식들 얼굴 보기 챙피히 죽겄네.” 부모형제 옹기종기 모여 살던 때가 너무도 그리워
큰아버지는 아침밥 먹자며 나를 깨우러 나왔다. 그런데 분명 있어야 할 자리에 텐트가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 강변에 텐트를 치고 잤는지 벼락바위부터 상급배미 논 아래 강변까지 샅샅이 뒤지며 찾으러 다녔다. 동생 부부 떠난 쓸쓸한 고향으로 여름휴가 차 찾아온 조카가 울고 떠나버렸으니 큰아버지는 그날 아침 얼마나 마음이 쓰리고 아팠을까. “분명 정자나무 밑에다 텐트를 치고 잤는디 아침에 밥 묵으라고 깨우러 강게 텐트가 없어져 부렀더라고. 가먼 간다고 이애기나 허고 가제 그랬냐. 그리야 내가 안 찾제. 그날 아침 내가 갱본을 다 뒤지고 댕김선 너를 얼매나 불렀는지 알기나 허냐?” 98년 고향 집을 사기 전까지, 휴가철이 다가오면 아내는 늘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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