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너도 내 빤스 볼라고 혔제?”

버들개지 2007. 9. 14. 11:21
“너도 내 빤스 볼라고 혔제?”
코흘리개 친구들과 동창회 하던 날

▲ 덕치초등학교 아침 조회 모습
ⓒ 전라도닷컴

“너 중전마을 신작로 가상에 살던 양숙이 맞제?”
“그려 임마. 나 양숙이다.”
“너 서울 살제? 서울 물 묵고 살더니 얼굴도 뽀얀해지고 멋쟁이가 다 되아 불었다 잉. 너만 보면 누런 코 질질 흘리고 댕기던 생각이 난다 야!”
“너는 코 안 흘리고 댕겼냐? 니 옷 소매는 항상 반들반들 혔어야. 맨날 옷 소매에 코 닦고 댕겼잖아.”
“맞아. 내 옷소매는 항상 뻔떡빤떡 혔제. 하하! 그 때는 모두 다 거긋따 코 닦고 댕겼냐안.”
“근디 너 학교 댕길 때 키도 쬐깐허고 못 생겼는디 인자는 아주 잘생겨 불었다야?”

▲ 하교길 모습. 멀리 사는 마을아이들부터 줄을 세워 하교를 시켰다.
ⓒ 전라도닷컴

“내가 초등학교 때 너 얼매나 좋아했는지 아냐?”

몹시 바람불고 춥던 72년 2월19일. 빛나는 졸업장을 들고 교문을 나서던 코흘리개 친구들. 마지막 수업 끝난 교실에서 떠들던 아이들처럼 방 안이 왁자지껄하다.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은 서울과 전주에서 번갈아 가며 일년에 한 번씩 열린다. 그 동안 나는 전주에서 열리는 모임에 세 번 참석했다. 두 번째 모임에 나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만나기도 했다. 얼굴만 마주쳐도 홍당무가 되고 심장이 쿵쾅거리던, 학교 가는 날이 즐겁던 그 때.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첫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너 얼매나 좋아했는지 아냐? 너그 집에 보리 베러 가던 날 있었잖아. 그때 니가 내 옆에서 보리를 벴는디 심장이 멈춰질 뻔 혔당게.”
“글먼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그랬냐. 행이는 수줍어서 그 때는 그런 말 꺼내지도 못했지. 그렇게 좋아했으먼 나중에라도 찾지. 그럼 지금쯤 니 각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하하! 근디 너 말고도 나를 좋아하는 남학생들이 겁나게 많았어야.”

▲ 졸업앨범
ⓒ 전라도닷컴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만나 즐겁게 놀던 동창회 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전주 큰형님 집에 함께 갔었다. 그런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어둠이 내려 집으로 갈 시간이 되어 아내와 아이들이 동창회 모임 장소 부근에 와 있었다. 빨리 집에 가자는 전화에도 아빠가 나타나지 않자 “언제 내려갈 거냐”고 아들이 채근하는 전화를 또 했다.

“민성아! 아빠가 짝사랑하던 그 여학생을 만나 불었어. 긍게 쬐께만 더 기달려라. 인자 언제 또 만날 꺼냐. 집에 가먼 한턱 쏠텅게 엄마한테 금방 간다고 니가 말 좀 잘 해줘라. 알았제. 울 아들 민성이 최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은 “아빠가 짝사랑하던 그 여학생을 만나 지금 즐겁게 놀고 있는데 엄마는 쫓아가서 데려오지 않고 지금 뭐하냐”며 성화였단다.
아내는 “얼매나 보고 싶었던 여학생이었는디 시방 넉 아빠가 얼릉 나오게 생겼냐. 우리들이 쫴께만 더 참고 기다렸다가 니리(내려)가자”며 오히려 아들을 달랬단다.

▲ 똘망똘망하지 않습니까! 졸업앨범 속 제 사
진입니다.
ⓒ 전라도닷컴
거시기 안 잡히려고 양손으로 가리고 달아나고
지난해 봄, 전주에서 열렸던 초등학교 동창회. 동창회에 가면 우선 말부터 트고 지내니 좋다. 나보다 한 살 많은 58년 개띠가 되었든, 두 살 많은 닭띠가 되었든, 아니면 나보다 한 살 어린 쥐띠가 되었든 하여간 무조건 ‘너’로 통한다.

동창생들 거의 대부분이 누구네 집 아들딸이고 식솔들 숟가락도 몇 개인지 훤히 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 친구들처럼 앞뒤 재가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맘 편하게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 동창생은 모두 80명 졸업했다. 그 중 동창회 모임에 나오는 친구들은 20명쯤 된다. 사는 게 힘들어서 또는 시간에 쪼들려서, 아니면 연락이 끊겨 못 나오는 친구들과 뭐가 그리 급한지 하늘나라로 벌써 가버린 친구들도 있다.

동창생들 대부분이 벌써 자식들은 군대 가고 결혼하고 ‘자식농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 모여서 노는 것은 꼭 초등학교 교정에서 짓궂게 놀던 ‘코흘리개’ 모습 그대로다.  학창시절에 있었던 옛 추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러다 운동장에서 치마 입고 고무줄 놀이하던 여학생들 팬티 보려고 땅바닥에 엎드려 쳐다보던 남학생들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여자 동창생이 “이제야 복수할 기회가 왔다”며 남학생들 거시기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게 아닌가.

남학생들은 모두 놀라 양손으로 거시기를 꼭 움켜쥐고 있다. 그 중 6학년 때 ‘급장’을 했던 삼수 친구. 공부도 잘하고 착했던 친구는 거시기 안 잡히려고 사타구니를 양손으로 가리고 달아나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동창생 모두가 배꼽을 잡고 나뒹군다.

나는 키도 작고 어려서 고무줄 놀이하는 여학생들 옆에도 안 갔다. 그런데 내 거시기도 만지려고 다가오는 게 아닌가. “너도 내 빤스 볼라고 혔제?”
나도 삼수 친구처럼 거시기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나는 정말로 너그들 고무줄 놀이헌 데 옆에도 안 갔어. 진짜여. 한번도 니 빤스 쳐다볼라고 안 혔당게. 너, 내 것 만지면 나 오늘 부로 각시한테 끝장난다.”

그런데 ‘야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건 뭘까. 우리 모두 그날 저녁엔 초등학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고 있으려니 아내가 궁금했던지 자꾸 묻는다. 이러저러했다고 하니 아내 왈. “시골 학교라 동창생들이 몇 명 안 된 게 겁나게 재밌겄고만. 우리는 7반이나 된게 또 한 반에 70명씩이나 된게 누가 누군지도 잘 몰라. 자기는 참말로 좋겄소. 거시기 만질라고 쫓아다니는 여학생들이 아직도 있응게.”

남학생들 거시기 잡으러 다니던 그 여학생은 거시기 잡는 흉내만 냈을 뿐인데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꼭 표현했다. 내 거시기 만지려고 달려들었다가 지은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다. 두 눈 감고서 고개 숙이며 잠자고 있는 모습. 한마디로 ‘도수 니 것은 청춘이 다 끝났다’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모두들 그 표정에 방바닥을 손으로 내려치며 자지러진다. 내 옆에 있던 득진이 친구는 기분이 좋아 ‘허허’ 웃고 있다. 거시기 검사 결과 두 눈 크게 뜨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는 모습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동창생들 대부분이 고개 숙이며 잠자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득진이 친구만 고개를 쳐들고 있었던 것이다.

▲ 6학년1반 졸업사진
ⓒ 전라도닷컴

동창회라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구들도 있고

동창생들 중에는 두메산골 가난한 집에 태어난 죄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이 꽤 많다. 동창회 모임이라고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초등학교 동창회. 그러니 이 날만큼 소중한 만남의 날이 또 어디 있을까.

해장국까지 먹고 나니 새벽 3시. 찜질방에 들어가 우린 수다를 더 떨다 잠깐 눈 붙이고 나서 고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향으로 봄소풍 나온 친구들은 아침이면 풀잎에 달려 있는 이슬방울을 털며 등교하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또다시 나눈다.

바지 가랑이 촉촉히 적시며 등교하던 날들이 꼭 엊그제 같은데 벌써 늙수그레한 중년이 되어 흰 머리카락 봄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 때 우리들 모두 시험을 잘못 봐서 첫 발령 받아 막 부임한 최진숙 선생님께 얻어터지던 날 생각 나냐? 선생님은 우리들 때리고 나서 자기가 잘못 가르쳤응게 더 큰 ‘죄인’이라며 종아리 걷어올리고 교단에 올라가 급장인 너부터 때리라고 매차리(회초리) 줬잖아. 그 땐 참말로 무서웠어 잉. ”

눈썹이 짙고 임실 지사면이 고향인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이름은 여자 같았던 선생님 얘기다. 친구들은 서로 술잔을 권하며 일상의 모든 시름 다 잊고서 산벚꽃 환하게 핀 고향에서 깊은 행복에 젖어 있다. 단골로 소풍가던 ‘산안절’에도 올라보기로 한다.

산안절 올라가는 가파른 오솔길은 사라지고 대신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이 뻥 뚫려있다. 산안마을에 있다 해서 불려진 산안절.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왕이 되게 해달라고 만일 동안 기도했다 해서 지금은 절 이름이 만일사로 바뀌어 있다.

친구들은 가을 소풍 때면 산안절 감나무 아래서 장기자랑을 하고 보물 찾던 곳을 두리번거린다. “절은 새로 지서(지어) 불어서 하나도 모르겄는디 감나무들은 아직도 여전허고만.” 고목이 된 감나무들을 만져보고 있다.

감나무 아래서 어머니께서 싸주신 ‘노란 벤또’를 열고 맛있게 먹던 소풍날이 생각난 듯 친구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내년 요 맘 때까지 어떻게 기다린다냐!”며 손 흔들던 깨복쟁이 친구들. 얼른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