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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밖 정자나무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면 우리 동네 사람들이 외지에 나가는 식구를 따라 나가 배웅하는 ‘공식 이별장소’인 ‘몰무동길’ . 내 어머니 ‘월곡떡’도 아들 셋 군대 보낼 때마다 이 곳에서 눈물로 치맛자락을 적셨다. 그 오른쪽으로 가르마 같은 길을 따라 가면 버스가 다니 는 중전마을에 닿는다. 타향을 떠돌며 살던 내게 가슴 저리는 그리움으로 떠오르던 길이다. |
| ⓒ 김도수 |
고향 진뫼마을에서 버스가 다니는 중전마을로 나가려면 어른 걸음으로 약 20분 정도 걸린다. 진뫼 오리길. 나는 이 길을 걸어서 세상 속으로 들어왔고 이제 주말이면 그 길을 밟고 돌아가 고향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타향을 떠돌며 살던 내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진뫼 오리길은 가슴 저리는 그리움의 길이었다. 산허리 돌아가면 소살대며 흐르는 섬진강, 아스라이 보이는 느티나무와 마을, 강물 휘돌아 내려오던 언저리의 저리소산은 얼마나 눈에 밟히는 풍경이었는가.
어머니 치마 자락 눈물로 적시던 삼거리 ‘몰무동’ 두메산골 강변마을에 태어난 내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알았던 첫 기억은 큰형님이 멋진 군복을 입고 휴가 나왔다 귀대하는 길에 어머니 등에 업혀 따라가던 ‘몰무동길’이다. 집을 나서서 5분쯤 걷다 보면 갯터로 가는 강변 오솔길과 중전마을 나가는 삼거리 길이 나온다. 이 곳이 기안이양반네 집 감나무밭 앞인데 마을 사람들은 이 부근을 ‘몰무동’이라 부른다. 옛날에 말을 묻은 곳이어서 ‘말무덤’이던 것이 몰무동으로 불리게 된 이곳은 우리 동네 사람들한테는 외지에 나가는 식구를 따라 나가 배웅하는 ‘공식이별장소’이기도 하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재촉하며 어머니 모습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군용모자 흔들며 뒤돌아서서 뒷걸음치며 가던 큰형님. 마을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복두형님네 다랑이논을 아들이 막 돌아가려 하자 어머니는 복받쳐 오르는 슬픔 참을 수 없었던지 내 엉덩이를 한 쪽 손으로 받치더니 치마 자락 걷어 올려 눈물 흠뻑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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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몰마을 앞 첫집 앞을 걷고 있는 나의 가족. |
| ⓒ 김도수 | 내 바로 위에 형이 군대 가던 날 아침엔 차가운 강바람이 몹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날도 어머니는 물무동길에 서 있었다. 어머니 못 따라오게 종종걸음 치며 달아나던 형. 괜히 마음 아프니 따라오지 말라며 앞만 보며 달아나던 형을 어머니는 뛰면서 쫓아가다 그만 몰무동길에 멈춰 서서 두 볼에 타고 흐르는 눈물로 또 치마 자락 적시고 있었다.
“오메! 춘게 얼릉 들어가. 나 잘 갔다올랑게 걱정허지 말고 어서 들어가 불어!” 그렇게 소리치고 군에 들어간 형은 첫 휴가 나와서 그 날 이야기를 꺼냈다. “오메는 몰무동에서 울고 서 있제, 마을은 점점 뒤로 멀어지제 참말로 미치겄도만. 그리서 복두형님네 논 돌아감서는 기언치(기어이) 돌아봐 불었제. 고향아! 잘 있거라 마을을 한번 찬챙히(찬찬히) 둘러보고 물무동에 서 있는 오메한테 얼릉 들어가라고 소리를 쳤제.”
어머니는 내가 군에 가던 날 아침에도 몰무동길에 서서 치마 자락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빡빡머리 덮은 빵모자 둘러쓰고 어머니 보고 싶어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걷던 몰무동 길. 나 역시 마을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복두형님네 논 다랑이 돌아가며 “오메! 어서 들어가불어!” 울먹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떠나가는 막둥이 자식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얼마나 울고 계셨을까? 세 아들 군대 갈 때마다 울 어머니 치마 자락 적시며 서 있던 몰무동길은 어미 가슴 후벼파는 눈물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몰무동길이 늘 서럽게 울고 가던 길만은 아니었다. 밤 늦게 막차를 타고 내려 껌껌한 길 걸어가다가 복두형님네 논 다랑이 돌아가면 멀리서 불 켜진 마을이 보이면서 얼마나 가슴 따스한 행복이 밀려왔던가. 불빛 가까이 다가올수록 어머니를 크게 외치며 신나게 달리던 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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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길을 걸어서 세상 속으로 들어왔고 이제 주말이면 그 길 을 밟고 돌아가 고향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식구들과 함께 걷는 진 뫼 오리길. 그 길 위에서 내 모습 사라지는 그 날까지 평생 사랑하며 걸을 그 길. |
| ⓒ 김도수 | 세상 쓴맛 단맛 다 보며 걸은 그 길 진뫼 오리길. 나는 이 길 위를 세상 쓴맛 단맛 다 보며 걸었다. 대입 예비고사 성적표 받아 들고 막차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볼 시린 겨울 밤, 앞으로 어떻게 인생길을 가야 할지 막막해 구름에 가려진 달에게 물어보며 걷던 아득한 길.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는 힘들게 뒷바라지 한 어머니 얼굴 떠올라 엉엉 울며 갈팡질팡 걷던 길. 공장에 취직해 돈 벌어 야간 학교라도 가야겠다고 두 손 불끈 쥐고 걷던 길. 취직 시험 보러 갈 차비가 없어 쌀자루 메고 끙끙거리며 중전마을로 쌀 팔러 가던 길. 쌀을 팔아서 서울로 시험 보러 갔다가 합격자 게시판에 내 이름 석자가 보이지 않자 “맥없이 쌀만 없이고 온 놈”이라고 아버지에게 몇 달은 들볶일 생각에 그만 서울에서 한동안 내려오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그 길.
기한 내에 내지 못한 육성회비 가지러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며 선생님께 혼날 생각에 엉엉 울며 가던 길. 회비 못 만들어준 내 어머니, 몰무동까지 따라와 내 등 두드리며 “이번 달까지만 잘 참고 전디거라(견디거라). 그 때까지는 어떡허든지 간에 내가 만들어 볼텅게 울지 말고. 니가 뭔 죄가 있겄냐!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죄뿐이제…” 말 잇지 못하던 길. 끝내 어머니를 울게 한 길. 복두형님네 다랑이 논 돌아가며 어머니 손 흔드는 모습 뒤돌아보고는 서러움에 복받쳐 울다 앞이 안 보여 넘어질 뻔했던 그 길. 학교에서 쫓겨온 아들 빈손으로 보내야 했던 어머니 오장육부 뒤집어 놓고 눈물 펑펑 쏟게 하던 그 길. ‘오메가 뭔 죄가 있다요. 내 등짝에 지게 하나 맞춰줘 불먼 오메도 핀헐 턴디….’ 어린 맘에 가난한 오메가 짠해서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서럽게도 울고 가던 길.
지나온 시절 돌아볼 적마다 머릿속으로 수수만번도 더 걸었던 진뫼 오리길. 눈에 아른거려 고향 떠나서도 하루도 잊고 산 적이 없는 그 길. 고향집 찾고부터 주말마다 내 다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걷는 진뫼 오리길. 그 길 위에서 내 모습 사라지는 그 날까지 평생 사랑하며 걸을 그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