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게 짊어지고 염소 데리고 꼴 베러 가다가 강변에 염소 매 놓고 잠시 텃논에 들러 물꼬 막고 나서 다시 염소 데리고 웃골 소막으로 깔 비러 가는 재수네 아버지. 안개 속으로 총총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아려 온다. |
|
ⓒ 김도수
|
“저 놈의 새들은 새벽잠도 없는가벼. 날이 새기도 전에 울어쌌네.” 새소리뿐만 아니라 아랫것테 쪽에선 “새벽이 왔응게 어서 일어나싯쇼오오∼∼” 닭들이 계속 홰치며 깨우고 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40분.
어릴 때부터 배인 습관은 무섭다. 아버지 불호령이 아직도 귀에 박혀 눈뜨면 일어나야 한다. 아버지는 해가 뜨면 자식들이 누워 있는 꼴을 못 봤다. 만약 새벽에 일하러 나갔다 돌아올 때까지 자고 있으면 집에 한바탕 난리가 난다.
“해가 중천에 떴는디 허리 부러졌가디 안 일어나냐! 내가 죽어야 저 새끼들이 정신 채리제. 적(저희) 애비는 새복부터 일어나 ‘삼대논’ 논두렁 다 비고 오는디 시방까지 자빠져 자고 있네. 아, 빨리 안 일어날래. 이불 걷어서 마당에다 떤져불랑게.”
아버지 목소리 떠올리며 호미와 삽을 챙겨 집 앞 텃밭에 풀 매러 간다. 골목을 빠져나가는데 벌써 아랫집 점순이네 부엌에서 쌀 씻는 소리가 들려온다.
괭이 들고 마을에서 제일먼저 논에 나가는 재수네 어머니. ‘몰무동’쪽을 향해 종종걸음치고 있다. “어디를 고로케 부리나케 가요?” “오늘 우리 집 모 숭거. 기계(이앙기) 들오기 전에 물 뺄라고 몰무동 논에 물꼬 트로 가.
지금이야 기계로 하지만, 일일이 손모 심던 예전 같으면 모내기철이면 마을 사람들은 새벽밥 먹고 모 찔 때 앉을 함박이나 나무 상자를 하나씩 들고 논으로 달려갔다. 한 달도 넘게 진뫼마을 골짜기 안 돌아다니는 곳이 없이 품앗이로 돌아다니며 모를 심었다. 그러다 보면 손톱이 다 닳아 버렸고, 쓰리고 아픈 손가락에 골무나 누에고추를 잘라 끼고 모를 심기도 했다.
“모 숭군 기계 고거 참 잘 나왔어. 시방같이 노인네들이나 몇썩(씩) 남은 촌에서 손으로 숭군다먼 일년 내내 숭궈도 모 다 못 숭굴 것이여.” “근디 재수네 아부지는 어디 가시고 어메가 논에 가요?”
“우꿀(윗골) 소막에 간데야. 소를 네 마리나 키운게 아침마다 깔(꼴) 비로 가야 혀. 호랭 물어갈! 작년에는 새끼라도 뱅게 농사자금 안 빌려 쓰고 살았는디 올해는 새끼도 안 배네. 쓰레트가 깨져서 엊그저께 농사자금 끌어다 지붕 이섰는디 먼 수로 갚을까 깝깝허고만. 꼭 한 마리 배야 쓰겄는디…. ”
 |
 |
|
감자꽃도 일찌감치 눈을 뜬 새벽.
|
주영이 어머니 삽을 들고 몰무동 논으로 나오고 있다. 재수네 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주영이네 논도 오늘 모내기 한단다. 그래서 새벽부터 물 빼러 나온 주영이 어머니는 논을 고르고 있다.
“왜 이렇게 울툭불툭허데야…. 논 간 날 해필 벌이 날라고(분봉) 히서 내다 보들 못했드만 …. 내가 옆에서 지키보고 있었으먼 요로케 높고 낮고 허들 안헐 턴디. 비 며칠 쏟아져 불먼 낮차운 디는 방방허게 물이 차서 모 다 녹아불게 생겼는디 큰일이고만….”
3년 전 주영이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시고 나서 주영이 어머니는 광주에 사는 자식 집으로 떠나버리고, 그렇잖아도 적막하기만 하던 고향마을에 불 꺼진 집이 하나 더 늘어났었다. 그러다 지난해 봄,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온 주영이 어머니는 홀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지난해 주영이네 집에 다시 환하게 불 켜지던 그 봄밤, 왜 그리도 눈물이 나던지. 반가운 그 불빛 다시 꺼질까봐 한동안 주영이네 집을 기웃거리곤 했다. 이제 주영이네 마당 한켠엔 장독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벌통이 놓여지고, 꿀 따러 다니는 벌들이 윙윙거리고 있으니 더 이상 주영이네 집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점순이네 어머니가 비닐 포대로 만든 망태를 둘러메고 집을 나오고 있다. “어디 갈라고 일찌건치 나오요?” “일찌건치도 아녀. 바쁜 농사철인디 새복에 한나절 일은 히야 일 추리 나가제. 어지께 우리 새물 앞에 있는 ‘봇도랑 논’에 모내기 혔어. 아침에 모 좀 때우고 올라고. ” “벌써 모내기 다 끝내 불었소?” “논이나따나 몇 마지기 되간디. 다 합쳐야 일곱 마지기여. 기계로 숭거붕게 근방이여. 전에는 모 숭굴라먼 이 집 저 집 놉 얻으러 댕기느라 골목께나 싸대고 댕겼는디.”
잘 심는 사람들은 마지기당 한 명 반 정도, 보통 사람들 같으면 두 명 정도는 들어가야 모를 심었다고, 놉을 다 못 채우고 모를 심을 것 같으면 품앗이꾼들한테 욕깨나 얻어 먹어다고 예전 얘기를 꺼낸다.
“시방은 일도 없어. 전 같으먼 여자들은 국시 삶아 샛꺼리 준비히야제, 없는 반찬 이것저것 맨들어 내야제, 못밥 히서 이여 날려야제. 하여간 쬐깐 애새끼들도 물 주전자 들고 심부름 히야 모 숭겄제. 모 숭군 사람들은 또 얼매나 힘들었어. 써레질 끝나먼 논 골라야제, 오전 내내 모 쪄 내야제, 바작(바지게)에 져날리야제, 모 안 딸리게 적당히 뿌려놔야제, 참말로 힘들었제. 시방은 참말 일도 없어. 근디 외려 전보담도 힘이 안 나. 전에는 몸으로 때운 품삯값이라도 떨어졌제 시방은 그도 안 나와.” “농사지먼 기계 삯으로 다 나가불제라우? 요새 모내기 허는 디 한 마지기에 얼매씩이나 받으요?”
“한 마지기 논 가는 디 만 이천 원, 로타리 치는 디 이만 오천 원, 심는 디 이만 원, 나락 빈 디 삼만 원. 고 돈만 들어가간디. 농약 히야제, 비료 히야제. 근디 작년에 40kg 매상 한 가마니에 사만 팔천 원이던가, 하여간 오만 원이 쬐께 안 됐어. 긍게 수지타산이 맞게 생겼는가. 씬(쓴)물나게 몸뚱아리로 때운 값은 지허고(제하고) 계산을 혀도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디지게 고상만 허는 것이제. 매상이나 다 받아주가니. 작년에 우리집 앞으로 매상이 열 한 개 돌아왔어. 한 마지기에 두 개씩도 안돼. 근디 에프틴(FTA)가 머신가 고것 땜시 올해는 매상을 작년보다 더 안 받아준다고 허던디. 긍게 나락이 안 나도 걱정, 많이 나도 걱정이제. 맨날 걱정만 허다 판나. 그리도 어쩌겄어. 모라도 숭거 놔야 가실이먼 자석들한테 쌀 가마니나 부쳐 주제. 그리야 맘이 호복허제.”
뒤따라 나온 점순이네 아버지는 새벽일 늦었다고 재빨리 경운기 시동을 살려서 점순이네 어머니 태우고 통통거리며 고샅을 빠져나간다. 세몰마을 앞에 있는 봇도랑논으로 모 때우러 간단다. 그래도 점순이네 부모님은 부부끼리 농사짓는, 요새 농촌에는 얼마 남지 않은 행복한 부부다. 요새 농촌에는 아버지 먼저 돌아가시고 나면 어머니 홀로 농사짓고 사는 집이 많다. 진뫼마을만 해도 열 다섯 가구 중 어머니 홀로 사는 집이 아홉 집, 부부가 사는 집이 여섯 집이다. 홀로 농사짓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일인지 농촌이 고향인 자식들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으리라.
 |
 |
| 1 몰무동 논에 물꼬 트고 모판을 끄집어내고 있는 주영이 어머니. 2 우꿀 소막에 깔 비러 가는 길에 물꼬를 막고 있는 재수네 아버지. 3 세몰마을 앞 봇도랑논으로 모 때우러 가는 점순이 아버지. 4 마을에서 제일 먼저 논에 나가 모내기 할 논에 물꼬 틀고 나서 다시 밭에 가는 재수네 어머니. 5 모내기하려는 논을 들여다보고 있는 재수네 염소들. 6 약 치러 가는 종길이 아제. 지난 5월26일 토요일 내 고향 진뫼마을 어르신들의 새벽. “새복에 한나절 일은 히야 일 추리 나가제”하시며 총종 종종걸음…. |
|
ⓒ 김도수
|
재수네 아버지, 지게 짊어지고 염소 몰고 회관 앞으로 나온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세요?” “우꿀 소막에 좀 갈라고. 아무리 바빠도 사료값 한 푼이라도 아낄라먼 깔 벼다 믹이야제. 미국서 쇠괴기 수입헌다고 방송 때린 뒤부터 소값이 똥값이 되아부렀어. 맥없이 농협 빚내서 소 키워서 시방 우리집 살림살이 거덜나게 생겼어….”
꼴 베러 가다가 강변에 염소 매 놓고 잠시 텃논에 들러 물꼬 막고 안개 속으로 총총 사라지는 재수네 아버지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아려 온다. “그저 새복부터 뛰어댕기야 묵고 살제 그라니먼(그렇지 않으면) 농촌에서는 못 살아.” 지푸라기만한 희망도 남은 것 같지 않은 고향을 지켜가고 있는 어르신들은 매일 그렇게 새벽을 열고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