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피 떨라먼 돼아지 안 팔라네"

버들개지 2007. 11. 21. 10:33
“피(皮) 떨라먼 돼아지 안 팔라네”
진완이 양반 새벽같이 돼지 잡으러 오던 날

우리집 돼지를 달던 저울은 어디로 사라지고 없고 저울추만 마을
회관 보일러실에서 어렵게 찾았다.
ⓒ 김도수


진뫼마을 고향집 부엌에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찬장 밑에 낡은 솥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음식물 찌꺼기나 뜨물을 받아놓았다가 돼지 밥을 주기 위한 구정물 솥이었다.
돼지 우리는 마당 한켠 ‘겨세식’ 변소와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돈이 몹시 쪼들려 어떻게 헤쳐나갈 방법이 없거나 하면, 돌 두 개 나란히 놓여진 겨세식 변소 한켠에 널빤지 칸막이를 설치해 돼지를 더 키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변소에 앉아 있을 때마다 돼지가 꿀꿀거리며 널빤지 칸막이를 곧 박차고 나올 것만 같아 변소 가는 것이 몹시 두렵기만 했다.

부모님은 노상 들녘에 나가 있기 때문에 돼지 밥 주는 것은 대부분 어린 자식들 몫이었다. 돼지도 사람 발자국 소리를 어찌나 잘 아는지 내가 학교에 갔다 오면 배고파 죽겠다는 듯 고함을 빽빽 질러댔다. 그 꿀꿀대는 소리에 나는 돼지 밥부터 챙겼다. 시지근한 냄새 풍기는 구정물을 양동이에 가득 퍼 담아 몽근 겨 한 바가지 구유 통에 부어주면 돼지는 금세 조용했다. 돼지도 입맛은 잘 알아 몽근겨가 떨어져 구정물만 퍼주면 먹지 않고 꿀꿀댔다. 그러면 식구들이 먹다 남은 시래기국이나 갖가지 음식물 찌꺼기나 호박이며 감자 등을 섞어서 주면 홀짝거리며 잘도 먹었다.

 

‘요 놈 돼아지 팔먼 이번에 자식들 회비 다 댈 수 있을까?’
어머니는 돼지가 어느 정도 크면 시세를 알아보곤 했다. 읍내에 나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이 회비 가지러 올 시기가 되면 아버지께 넌지시 물었다.
“애들 회비 낼 때가 된 것 같은디 이번에 곡식 팔아서 돈 만들기는 틀렸고, 돼아지 팔아서 만들어야 헐랑가 벼. 지난 번처럼 회비 안 냈다고 학교서 쫓겨오기 전에 팝시다. 이 달 안으로 팔아야 헐 것 같은디….”

돼지우리(오른쪽)에 키우다 돈이 급하면 겨세식 화장실(파란문, 왼쪽)에도 키웠다.
ⓒ 김도수


“회비 안 냈다고 학교서 짜르던 안 헐텅게 좀 더 참으라고 혀. 포도시 백 근 이짝 저짝 나가겄고만 살 좀 찌워서 팔아야제 시방 팔겄어. 넘덜은 새끼 몇 번씩 내이고 백 칠팔십 근씩 나가는 돼아지를 파는디 우리 집은 돈이 급헝게 새끼 한번 못 내이고 저런 쬐깐헌 돼아지를 팔랑게 속상히 죽겄고만 벌써 팔자고 헌가. 백 근 넘어가먼 그 때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팍팍 커분디….”

하지만 주말이면 계속 회비 독촉장 들고 와 부모님께 돈 달라고 조르던 자식들 성화에 아버지도 더 이상 참지 못했던지 돼지를 팔기로 했다. 돼지 팔기로 결정한 날로부터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구유통을 들여다봤다. 만약 구유통에 구정물이 남아 있으면 우리 집은 한바탕 시끄러웠다.
“내일 모레 돼아지 잡으로 온다는디 보리쌀이라도 좀 삶아서 믹이던지 허제 구시(구유)통에 꾸정물이 그대로 남아 있네. 저 놈의 돼아지가 뭘 묵어서 근수가 나가겄냐. 그라니도 덜 큰 돼아지 팔랑게 속상히 죽겄고만 누구 하나 구시통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네.”

어머니는 아까운 보리쌀을 삶아 몽근 겨와 함께 하루에도 몇 번씩 돼지 밥을 주었다. 아버지도 돼지가 살찌려면 자고로 잘 먹고 잘 자게 해야 한다며 가마니를 잘라 우리 벽을 빙 둘러 씌워 실내를 어둡게 해줬다.

돼지를 사가는 사람은 중전마을 진완이 양반이었다. 진완이 양반은 진뫼마을이 고향으로 중전마을 한가운데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돌아온 장날 안으로 잡아간다고 했응게 언제 잡으러 올지 몰라. 진완이도 보통은 넘은게 새복에 일어나서 잡으로 올 것이여. 그렁게 잡으러 오기 전에 밥을 몽땅 믹이놔야 혀.”

어머니는 새벽에 눈뜨자마자 돼지 밥부터 챙겼다. 어떤 날은 한밤중에 변소 갈 때도 밥을 챙겨주곤 했다. 돼지 잡으러 오는 진완이 양반 역시 새벽에 밥을 먹이고 안 먹이고에 따라 돈 액수가 차이가 나니 약속한 날짜를 어기고 갑자기 들이닥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뭔 놈의 돼아지를 이 캄캄한 새복에 잡으러 왔다냐! ”
그 날도 어머니는 새벽에 변소 가며 돼지 밥을 주고선 사르르 잠이 들었는데 마당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진완이 양반이었다.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나 화를 버럭 내고 있었다.
“뭔 놈의 돼아지를 이 캄캄한 새복에 잡으러 왔다냐! 어저께 나하고 만나서 이야기헐 때는 모레쯤 잡으로 온다고 히 놓고 오늘 갑자기 급습을 히 불어. 진완이가 나를 아주 우습게 보고 사는고만 잉.”

▲ 겨세식 화장실에 돼지 가두며 키우던 우리 문짝.
ⓒ 김도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기 전, 어머니께 당부했다. “저울 차지러 간다고 시간을 좀 끌텅게 그 때까지 돼아지 발목 못 묶으게 히야 혀. 꾸정물 한 모금이라도 더 믹이야 넘덜 돼아지처럼 근수 지대로 받제.”

진완이 양반은 어머니가 만류할 틈도 없이 미리 준비해 온 새끼줄을 들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새벽에 달려왔지만 구유 통에는 이미 돼지 밥이 부어져 있었다.
“아이고메! 요로케 밥을 몽땅 믹이서 잡으먼 나는 어떻게 돼아지 장사를 헌데아. 요 놈 잡아 놓으먼 뱃속에 맨 꾸정물만 쏟아져 나오겄네.”

진완이 양반이 새벽같이 달려오는 바람에 돼지는 밥을 다 먹지 못한 채 발목에 새끼줄이 묶여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 속에 들어가 발목을 묶고 있는 진완이 양반에게 화를 냈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밥 묵고 있는 돼아지를 묶어불먼 되겄소. 모레쯤 잡으러 온다고 히 놓고 요로케 갑자기 새복에 달려와 잡아불먼 넘덜 돼아지처럼 밥도 지대로 못 믹인 우리만  손해를 보제. 그렁게 우리 집 돼아지는 피(皮) 떨 생각은 아예 맛쇼.”

“돼아지 잡으러 가는 집마다 새복에 밥을 줘 붕게 나만 손해를 보요. 긍게 내가 맨날 캄캄헌 새복에 잡으러 다닐 수밖에 없당게라우.”

 

“금방 구정물 믹인 돼아지라 피 서 근 떨먼 겁나게 봐준 것이여”
아버지는 저울을 들고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당에 돼지가 발목이 묶인 채 겔겔거리며 누워 있자 아버지는 무척 화가 났다.
“아니 진완이! 나한테 이럴 수 있는가. 넘덜 돼아지처럼 밥을 다 못 믹있응게 우리 집 돼아지는 피(皮) 떨 생각 아예 허덜 말소.”

아버지는 돼지 무게를 저울로 달려고 이웃집 오금이와 점순이네 아버지를 불렀다. 진완이 양반과 이웃집 아버지들은 돼지를 뉘어놓고 앞 뒷다리 발목을 엇갈리게 꽁꽁 묶은 뒤 갈퀴 모양의 저울 고리를 걸었다. 그런 뒤 저울 들어올리는 쇠줄 고리에 단단한 밧줄을 둥글게 옭아매 그 사이로 통나무를 집어넣고 두 분이 양쪽에 서서 어깨 위로 들어올려 저울을 달았다. 거꾸로 매달린 돼지가 고함을 빽빽 질러대며 ‘쌩똥’을 동강동강 싸며 몸부림치자 저울은 사방으로 요동을 쳤다.
아버지는 저울이 수평에서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면 고함을 질러댔다. “너무 쎄아. 뭐더고 있어. 저울추 얼릉 우게로 옮기제. 밥도 제대로 못 믹였고만 근수도 어영부영 헐라고 허네.”

몸부림치던 돼지가 순간 잠잠해지며 저울이 수평이 되자 진완이 양반은 “요로케 달먼 덜 서운허겄지라우”하며 저울 눈금을 아버지께 확인해 주었다. 눈금을 재차 확인한 진완이 양반은 “백 열근인디 피 서 근 떨고 백 일곱 근 계산 헐라요. 근방 구정물 믹인 돼아지라 피 서 근 떨먼 나도 겁나게 봐 준 것잉게 그리 합시다”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시방 뭔 소리여! 넘덜은 구정물 다 믹이고 서 근씩 떨었는디 우리 집 돼아지는 밥을 제대로 못 믹여 시방 속에서 열불나 죽겄는디 거긋따 피를 또 떤다고? 피 떨라먼 나 돼아지 안 팔랑게 걍 가소. 봉액이! 돼아지 안 팔랑게 발목 좀 얼릉 풀어 불소.”

이웃집 아버지들은 서로 한발씩 양보해 ‘한 근 반’만 떨고 가져가라며 바지게를 가져왔다.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연신 담배 연기만 푹푹 피워올리자 이웃집 아버지들은 바지게에 돼지를 들어올려 새끼줄로 꽁꽁 묶었다.

돼지가 마당을 떠나자 어머니는 우리에 둘러쳐진 가마니를 걷어내다 미처 먹지 못하고 구유 통에 절반쯤 남아있는 구정물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다. ‘더 일찍 일어나 저놈의 구정물을 다 믹있더라먼….’ 새벽 안개가 구유 통을 희끄무레하게 덮으며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