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고향 집 안방에 누워 마실 가는 밤

버들개지 2006. 1. 23. 17:00

▲ 겨울철이 되면 진뫼마을은 산사의 겨울처럼 너무도 고요해 개 짖는 소리 한번 들려오지 않는
적적한 마을이 된다.

주말이면 뻔질나게 들락거리던 고향 진뫼마을도 김장 끝내고 나면 나도 한가한 농한기 철로 접어들어 가는 횟수가 뜸해집니다. 김장 할 때 담아놓은 싱건지가 잘 익었는지 퍼 담아 오려고, 또 강추위에 부엌 방에 있는 설거지용 수도 꼭지가 터져버리는 것을 방지하려고 파이프에 연결된 나사를 잠그고 수도꼭지를 빼내버릴 겸해서 토요일 오후 고향 집으로 달려갑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싱건지를 퍼 담아 놓고 아내에게 오랜만에 고향에 왔으니 한적하게 둘이 산책도 하고 회관 방에 모여 겨울을 나는 동네 어르신들과 담소도 나누고 가자 제안합니다. 아내와 나는 강변을 산책하고 마을을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회관 방으로 들어갑니다. 회관 방에 들어가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어느새 산골마을의 짧은 해는 앞산을 넘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겨울철 진뫼마을은 너무도 심심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회관 방으로 모여들어 하루 종일 나오는 유선방송 TV를 틀어 놓고 김치 전도 부쳐먹고 라면도 끓여먹고 소주도 한잔씩 마시며 긴긴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밥짓는 당번 두 세분이 저녁을 지어 함께 먹고 헤어집니다.

 

▲ 마을 앞 섬진강도 꽁꽁 얼었다.

"어이 도수, 걍 여그서 한술 뜨고 니리가."

어머니들이 저녁밥 지으려 하자 순천 집으로 내려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들이 저녁밥 먹고 가라며 붙듭니다.
 "어이 도수, 걍 여그서 한술 뜨고 니리가. 날도 어두워져 부렀는디 언제 가서 밥 묵을라고 그런가. 애들한테 전화 히서 밥 묵고 간다고 혀. 오늘 저녁은 맛있게 뜬 청국장 낄일라고 허고만."

 

나는 저녁 밥만 먹고 나면 운전대 잡는 게 불안합니다. 초저녁 잠이 어찌나 심한지 아내는 '저녁 숟가락 떼자마자 자는 사람' 이라고 놀려댈 정도입니다. 남들보다 유독 초저녁 잠이 심한 나는 졸음운전을 핑계로 오랜만에 고향 집 안방에 보일러를 틀고 이불 펴고 아랫목에 눕습니다.

 

아내는 "여기서 자려고 싱건지 퍼로 작정을 하고 왔냐"며 신경질을 냅니다. 외풍도 심하고 추운데, 저녁 밥 안 먹고 그냥 내려갔으면 진작 순천 집에 내려갔다며 애들만 남겨두고 꼭 여기서 자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계속 짜증을 냅니다. 아무리 고향 집이 좋다고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며 운전만 하면 당장에 차 몰고 순천 집으로 내려가버리겠다고 윗목에서 입을 비죽거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올 기색이 없습니다.

 

"요로케 좋은 호텔방이 이 세상 또 어디에 있당가? 뜨건뜨건 헌게 어서 들어와 누워."
"당신이나 좋제, 나는 하나도 안 좋아." "당신 허리 아픈 게 오늘 밤 푹 좀 지지고 가. 내가 보일러 온도 이빠이 높여서 '연속'으로 틀어 놨응게 겁나게 뜨걸 것이여. 아이 사람아, 이 세상 어떤 특급 호텔도 요로케 뜨건뜨건허게 허리 지질 방은 없어. 오늘 특별히 시아부지 주무시던 아랫목에서 자네가 자소. 내가 요로케 비켜 줄텅게, 응?"

 


"이 세상 어떤 특급 호텔도 요로케 뜨건뜨건허게 허리 지질 방은 없어"

아내는 차가운 기온만큼이나 냉랭하게 토라져 있더니 아버지 주무시던 아랫목에 누워 자라는 내 배려에 못 이기는척하고 아랫목에 눕습니다.
 "인자 올 겨울은 이게 마지막 자는 것이여. 겨울에는 춥고 신난히서 난 시골은 싫어. 겨울에 자자고 하면 나는 버스 타고 혼자 순천 집으로 니리가 불랑게 고로케 알아. 싱건지만 얼릉 퍼 담아 온다고 히놓고 무슨 놈의 잠까지 자. 마을을 돌며 산책하자고 할 때부터 수상허더라고. 핸드폰이나 줘. 애들 밥이나 묵었능가 전화 히볼랑게."

 

"토요일 날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헝게 애들이 전화 한 통 없잖여. 중학생이나 됭게 저그들이 알아서 밥 챙기 묵게 너무 신경 쓰지 마. 아, 밥 있겄다, 국 있겄다, 식탁 위에 올려 놓고 먹기만 허먼 되는 일을 갖꼬 일일이 간섭허지 말고 자립심 길러주게 걍 냅둬부러. 글고 올 겨울 마지막 잔다고 힜는디 구정 설에는 자네 혼자 순천 집에서 지낼랑가?"
"시방 나 웃을 기분아녀. 이빠이 성질 났는디 농담까지 허고 있네."

 

아내는 곤히 잠이 들고 부엌 방 돌담 쪽에 있는 기름 보일러 연기 통에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습니다. 잠 안 오는 밤이면 봄부터 가을 까지는 소쩍새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밤 친구가 되어 옛 향수를 자극하며 외로움을 달래주었는데 겨울철에는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들려와 외로운 밤을 보내게 됩니다.

 


겨울 진뫼마을은 깊은 산 속에 있는 절

겨울철이 되면 진뫼마을은 산사의 겨울처럼 너무도 고요해 개 짖는 소리 한번 들려오지 않는 적적한 마을이 됩니다. 개라도 키우는 집이 있다면 가끔씩 개 짖는 소리라도 들려와 적적하지 않을 텐데 마을엔 짐승 키우는 집이라곤 아랫집 점순이네 집 암소 한 마리가 유일하니 진뫼마을은 깊은 산 속에 있는 절과 똑같이 고요한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마을 제일 윗집 한수 형님 집부터 마을 끝 영애네 집까지 오늘 밤 나와 함께 잠이든 마을 사람들 이름을 불러보며, 손가락 구부려 가며, 한 사람 한 사람씩 세어 봅니다. 빈 집, 또 빈 집을 건네 뛰다 이젠 구들장까지 사라져버린 옆집 앵순이네 집에 눈길이 머물고 맙니다.

 

추수가 한창이던 60년대 후반 어느 가을날, 하루 종일 고단한 일 끝내고 편히 누워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남의 집보다 가을걷이가 늦어 안타깝다며 볏단 날려주러 동네 청년들과 아저씨들 지게 짊어지고 우리 집으로 모여들어 막걸리 한잔씩 드시던 날 밤. 환한 달빛 아래 줄줄이 서서 봇도랑 가는 논두렁 길에서 작대기로 지게 발목을 톡톡 두드리며 유행가 부르며 볏단 짊어지러 가던 그 길을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다시 걷고 있습니다.

 

둥근 달빛 아래 용쏘배미 논에서 볏단을 꾸려 짊어지고 봇도랑 길로 내려 서서 줄줄이 걸어 가는데 발걸음을 뗄 때마다 노란 벼들이 출렁출렁 노래하던 밤. 모두들 자기 힘에 부치지 않게 가볍게 볏단 꾸려서 짊어지고 오는데 앵순이네 아버지는 힘에 부치게 볏단을 지고 왔는지 마당에 덥석 부리며 "아, 한 다발 더 얹어서 와부더니 등짝이 활랑 빗기져 부렀는가벼."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 훔치며 껄껄 웃으시던 옆집 앵순이네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여 잠 못 이루기 시작합니다.

 

허리 고부라지게 삶을 져 나르던 지게 세대의 아버지들. 허기진 배 채워주려고 논두렁 길에서 고개 부러져라 뜨거운 삶을 이고 날리던 똬리 세대의 어머니들. 한편의 영화처럼 생을 아름답고 위대하게 살던 분들, 이제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회관 방으로 모여들어 긴긴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 수리하기 전 옛 모습 그대로의 오금이네 집 부엌 뒷문.
이제 다 부서지고 사라져 옛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내 사진
속에만 남았다.
오늘 밤 나와 함께 잠이든 마을 사람들 숫자를 다시 세어봅니다
돌담 위에 얹혀진 시커먼 구들장들. 올 겨울 내내 그 위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햇볕이 다녀가고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고향 떠나간 분들에게 고향 소식을 전하고 있겠지.
오늘 밤 나와 함께 잠이든 마을 사람들 숫자를 다시 세어봅니다. 총 22가구에서 빈집 7가구를 빼고 나니 15가구, 거기에 서울 아들네 집으로 올라간 3가구를 빼니 12가구에 31명이 잠이 들었습니다. 가끔씩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끓길 때마다 강가로 귀 기울이면 겨울강물은 여윌 대로 여위었는지 소란스런 여울소리만이 밤의 적막을 깨우며 흐르고 있습니다.

 

밖에 바람이 세차게 부는지 문풍지가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쇠죽 방처럼 뜨끈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강바람 세차게 부는 날이면 강변마을은 기온이 뚝 떨어져 얼굴까지 이불을 끌어다 덮으며 잠을 잡니다.
아, 그런데 쉬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순천 집 같으면 벌써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인데 오랜만에 고향 집 안방에 누워서 그런지 눈만 말똥거리며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몸은 안방 아랫목 이불 속에 누워 있는데 다리 달린 내 눈은 또 마실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집을 나서자 마자 우리집과 한 골목인 내 친구 오금이네 집을 힐끗 쳐다보다 그만 쏙 들어갑니다.

 

오금이네 집에 들어서서 토방 앞에 서성거립니다. 그러자 오금이네 어머니께서 우리 집을 향해 전화 왔다고 소리치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도수네 오메, 도수네 오메. 전화 왔어라우. 얼릉 와서 받아라우. 포항 용기한테 전화왔는디 전화세 많이 나옹게 쬐께 있다가 다시 허라고 내가 끊었응게 어서 와라우."

 

70년대 후반, 전화가 걸려오면 스피커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70년대 후반, 정부에서 시골 마을마다 수동식 전화기 한대씩 설치해 주었는데 전화가 걸려오면 스피커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야 했다. 그래서 스피커가 설치된 마을회관 바로 뒷집인 오금이네 집에다 스피커 시설을 이전해 놓았다. 전화가 걸려오면 오금이네 부모님은 스피커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재빨리 알리곤 했다.

 

전화를 걸려면 수동식 전화기 옆에 붙어있는 손잡이를 마구 돌리면 면 소재지에 있는 우체국 교환원이 나왔다. 교환원에게 통화 하고자 하는 상대방을 알려주고 나서 수화기를 끓고 기다리면 잠시 후 벨 소리가 울리며 상대방과 통화가 되었다. 상대방과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 놓으면 잠시 후 다시 벨 소리가 울렸는데 "방금 통화 한 것은 몇 통화로 요금은 얼마입니다" 하고 교환원이 전화요금을 알려왔다.

 

오금이네 집은 70년 대 후반, 마을에서 흑백 텔레비전 서 너 대 설치한 집 중에 한 집이었다. 그래서 가끔씩 친구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러 갔는데 미안해서 평일 날을 가지 못하고 주로 토요일 저녁에 갔다. 토요일 저녁에는 유명한 가수들이 나와서 최신 유행가도 불러주고 화려한 조명아래 멋지게 춤을 추는 무용단 아가씨들 쇼까지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우린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토요일 밤이면 오금이네 집 토방 앞에서 망설이다 이내 문고리를 잡곤 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오금이네 어머니는 찐 고구마를 내 놓으며 "우리껏 고구마 좀 묵어봐. 겁나게 달아. 좀 팍팍 할 턴디 싱건지나 좀 내와야 쓰겄고만." 김장독에 담아 마당 한 켠에 묻어 놓은 이빨 시린 싱건지를 한 양 푼 퍼오면 우린 싱건지 국물을 훌훌 들이마시며 고구마를 맛있게도 먹었다.

 

▲ 오금이네 집은 70년 대 후반, 마을에서 흑백 텔레비전 서 너 대 설치한 집 중에 한 집이었다.
정부에서 시골 마을마다 수동식 전화기 한대씩 설치해 주었는데 전화가 걸려오면 오금이네 부
모님은 스피커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재빨리 알리곤 했다. 지금 오금이네 집 마당은 두개의
마당이 하나로 합쳐져 벌통들이 놓여져 있다.


오금이네 집은 130평쯤 되는 넓은 집터를 자랑

오금이네 집 마당은 두 개로 되어 있다. 집을 막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있고 큰 마당을 오르는 계단이 있는데 진뫼마을에서 오금이네 집터가 가장 반듯하고 넓다. 두메산골 진뫼마을에서 집터가 넓어 봤자 대부분 100평을 넘지 않는데 오금이네 집은 130평쯤 되는 넓은 집터를 자랑한다.

 

큰 마당에서 작은 마당으로 내려서려 하니 오순이 누이동생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70년대 후반 어느 해 겨울 새벽녘, 서울로 돈 벌러 간 착하디 착한 오순이 동생이 설 쇠려고 마당에 들어서며 "엄마!" 하고 크게 부르던 소리가 찬바람 가르며 아련히 들려온다.

 

하얀 피부에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큰 오순이 동생. 설 쇠려고 밤새 야간열차를 타고 달려와 새벽녘 마당에 들어서서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엄마"를 크게 외치던 오순이 동생이 오늘밤 너무도 보고 싶다.
 
오순이 동생은 기계 소음 진동하는 건물 안에서 하루 종일 얼마나 '엄마'가 불러보고 싶었겠는가. 얼마나 밟아보고 싶어 달려왔던 마당이었던가.
깜박 졸다 눈떠보니 나는 아직도 오금이네 집 아래마당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서지 못하고 서 있다.

 

지금 오금이네 집 마당은 두개의 마당이 하나로 합쳐져 벌통들이 놓여져 있다. 서울 사는 큰집 희수 동생이 시골에 내려오면 편히 쉬었다 가려고, 나이 들면 귀향해서 살려고, 폐가로 방치된 집을 사서 깨끗이 수리를 해놓았는데 큰집 형님이 마당에 벌을 키우고 있다.

 

눈까풀 무겁게 짓누른다. 밤중에 오줌 누려고 한번은 꼭 일어나야 하는데 그 일을 피해보려고 큰맘 먹고 밖으로 나간다. 마루 한 켠 기둥에 붙어있는 형광등 스위치를 올리는데 오금이네 집 마당 쪽에서 "엄-마, 엄-마!" 하고 새벽녘 오순이 동생이 떨리던 목소리로 크게 부르며 들어서던 모습이 보이는 듯 해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다.
지금 오금이네 집은 마당에 놓인 벌들만이 벌통 속에서 긴긴 겨울을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