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자 몸 추스려야 농사짓제” | ||||||||||||||||||||||||||||||||||||
| 진뫼마을 사람들의 '봄철 몸만들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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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상류지역인 진뫼마을 앞 강은 겨울철이면 강물이 줄어들면서 이끼 낀 돌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내민다. 강물 속에 잠겨 있던 돌들은 어디 세상 구경 좀 하자고 고개 한번 내미는데 시린 강바람은 여지없이 온몸을 때리며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 칼바람 맞으며 봄이 오기를 기다려온 돌들이 불어난 강물에 몸 담그며 ‘얼씨구 좋구나’ 소리치며 좋아하고 있는 듯 강물소리 소란스럽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강변엔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노래하며 농사철이 다시 시작됐으니 어서 논밭으로 나오라고 불러댄다. ‘진뫼마을 농부님들! 겨우내 회관 방에 모여 편히 놀았으니 어서 논밭으로 나오시지요.’
겨우내 회관 방에 모여 사는 진뫼마을 사람들은 설 명절이 지나면 “올 한해 또 얼마나 뛰어댕겨야 눈발이 휘날린다냐’’ 하며 쑤시는 어깨와 팔 다리를 주물럭거리며 지난 겨울을 너무도 아쉬워한다. 설이 지나고 따스하게 햇볕 내려 쪼이는 날, 마당에 아물아물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어깨를 축 늘어뜨리던 부모님. “아이고, 어쩌꺼나. 벌써 마당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네. 해가 갈수록 농사일 힘에 부쳐 죽겄는디 또 봄이 돼야 불었는개비여. 이 놈의 농사, 안 져 불 수도 없고. 언제나 핀히 한번 봄맞이 해 본다냐.” 꽃 피고 새 울어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된 이 봄날, 마을회관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 수를 세어봤다. 갈수록 점점 줄어드는 신발 짝을 보니 ‘이제 진뫼마을도 문 닫을 때가 서서히 다가오는가’ 싶어 씁쓸하기만 하다. 폐가로 방치된 고향집을 사서 돌아오던 98년 3월 이후 벌써 마을 어르신들이 열 두 분이나 돌아가셨다. 지금 현관에 놓여진 신발 켤레 수와 엇비슷한 숫자다. 그 때나 지금이나 밖으로 흘러나오는 회관방 텔레비전 소리는 여전한데 마을 사람들 목소리는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어떻게 수술은 잘 되었다요? 가까운 데 같으먼 한 번 가본디 병문안 한번 못 가보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별 소리를 다 허네. 수술은 아주 잘 됐다고 허도만. 물리 치료를 쬐께 더 받고 니리(내려)가라고 �는디 하도 집을 오랫동안 벼둥게 (비어두니까) 궁금히서 못 있겄더라고. 인자 수술 �응게 괜찮 것제.” 점순이네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왼쪽 엉덩이뼈 관절이 안 좋아 절룩거리며 힘들게 농사를 지어왔다. 다리가 아프니 지난해 추수 일은 모두 점순이네 어머니 몫이었다.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지난해 가을 추수 끝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 수술을 받고 오랜만에 내려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구 병문안 가면 봉투라도 하나 허제 그러요? 병원에 가보지는 못할 망정 뭐라도 사 드시게 봉투 하나 만들어 서울간 사람 편에 보냅시다.” 병문안 가는 사람 만나지 못해 '봉투'는 겨우내 아내 핸드백 속에 들어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대문 앞에 서 있는 점순이네 어머니 모습을 본 아내가 달려가 봉투를 내민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수술�다는디 가보지도 못하고 뭐라도 마싯는 것 사드리세요. 지난번 한밤중에 왔는디 대문 앞에 차가 받쳐져 있더라고요. 그리서 니로셨는가 궁금히서 아침에 가봤더니 차가 없더라고요.” “응, 집에 갑자기 볼일이 있어서 사위 차로 니�다가 안 자고 그날 밤 바로 올라가부렀어. 적(저희) 아부지가 병원에 누워있는디 자고 갈 수 있어야제. 집이도 애들 갈침선 복잡헐 턴디 뭐더게 요론 걸 들고 와.” 받지 않으려는 봉투를 억지로 몸뻬 바지 속에 넣고 아내는 내 쪽으로 뛰어와버린다. 먼 친척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게 이웃이라는데 겨우내 위 아래 집에 사람소리 들리지 않으니 우린 봄이 오기를 무척 기다렸다.
“봄 됐응게 인자 몸 추스려야 농사짓제. 심난히도 어쩌겄어. 좋은 전답들, 묵히불먼 안 돼잖여. 아직까지 걸어댕길 힘은 있응게 농사짓기 좋은 전답들은 져야 제, 뭐.” 진뫼마을 사람들은 설이 지나면서부터 몸 만들기에 나선다. 처음엔 ‘윗골’로 2,3킬로씩 가볍게 산책을 나간다. 그런 뒤 일년 열두 달 응달 진 저리소산에 눈이 녹으면 그 쪽으로 코스를 바꾼다. 저리소산 강변 길에 겨우내 얼어붙었던 얼음들, 봄비에 녹아 내리면 마을 사람들은 장천선(장산리와 천담리를 잇는 길)길을 따라 5,6킬로씩 걷는다. 무슨 운동을 하던 준비운동을 철저히 해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겨우내 회관 방에 모여 놀던 진뫼마을 사람들도 운동선수들처럼 몸을 단단히 만들어 농사철을 대비한 몸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운동 나서는 아버지들은 한 분도 없다. 모두 어머니들뿐이다. 현재 열 다섯 가구인 진뫼마을에 아버지들은 모두 여덟 분이 살고 있다. 그 중 여섯 분이 겨울철이면 어머니들과 함께 회관 방에서 노는데 운동 나가는 것은 좀 쑥스러운지 한 분도 없다. 아니, 가끔씩 산으로 약초 캐러 다녀서 평소 운동을 하며 지내서 그런가 보다. 어머니들은 아침밥 드시고 9시쯤 해서 산책 겸 운동을 나선다. 마을을 출발해 천담마을 까지 갔다 오면 5,6킬로쯤 걷게 되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힘이 드는 분은 천담마을까지 안 가고 중간쯤에서 다시 돌아온다. 잘 걷는 사람, 못 걷는 사람이 있으니 단체로 뭉쳐서 가지는 못하고 두 패로 나뉘어 가거나 또는 각자 몸 상태에 따라 조금씩 떨어져 걷는다. 어머니들 중에는 다리가 아파 절룩거리는데도 운동을 따라나서는 분도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 운동을 해서 남들 농사지을 때 어떡하든 따라 지어야겠다는 각오가 남달라 보인다.
강을 거슬러 마을이 가깝게 다가오자 개구리들이 크게 울어댄다. 농사가 시작됐다는 개구리들 ‘휘슬’ 소리에 어머니들은 맘이 심란들 하신지 점점 걸음걸이가 느려지며 이마에 파인 주름살, 더욱 골 깊어진다. 앞산을 힐끗 쳐다보던 어머니들. 한숨을 푹푹 내쉰다. 땀 흘려 농사짓던 밭들, 이제는 묵정밭으로 변해가는 모습 차마 바라보기 민망해 고개를 돌리고 만다. 뙤약볕 아래 콩밭 매다가 힘들면 소주 한잔 걸치고 내놓던 한스러운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어머니들을 뒤따라 갔던 아내가 마을에 들어서면서 말한다. “어메들이 평소 저리소에 눈이 녹아야 봄이 온다고 허도만 참말로 저리소에 눈이 녹응 게 봄이 오고만,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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