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입안에 침 고이는 ‘오두개의 계절’

버들개지 2008. 7. 16. 10:44
입안에 침 고이는 ‘오두개의 계절’

ⓒ 김도수


보리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모내기가 한창이면 뽕나무에 매달린 시푸르뎅뎅한 오디들 서서히 흑자색을 띠며 익어간다. 이 때가 ‘가랭이 찢어지게’ 뛰어다니는 농번기 철이다.
보리도 수확해야 하고 모내기도 해야 한다. 누에는 네 잠 자고 나면서부터 뽕을 많이 먹기 시작하니 뽕을 따서 누에 밥도 줘야 하고 밤에는 또 누에똥도 가려줘야 한다. 일년 중 가장 고단하고 힘든 시기다.

하지만 진뫼마을 철부지들에게 오두개(진뫼마을에서는 오디를 그렇게 부른다)의 계절은 입안에 침이 고이는 계절이기도 했다. 먹을 것 궁한 시절, 새콤달콤 익어가는 검자줏빛 오두개를 보면 침이 꿀꺽꿀꺽 넘어가곤 했다.

학교 갔다 오는 길. 동구 밖 ‘몰무동’ 길가 재춘이네 보리밭 가에 심어진 뽕나무에 달린 오두개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면 친구들은 서로 따먹으려고 뽕나무 가지를 붙들고 싸우기도 했다. 뽕나무에 몇 명씩 달라붙어 정신 없이 오두개 따먹던 코흘리개 친구들. 혼자 먹기 미안해 동생들에게 갖다주려고 노란 ‘양은 벤또(도시락)’ 꺼내서 큰 것들만 골라 담기도 했다.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짓밟으며 정신 없이 오두개 따먹다 보면 갑작스레 재춘이네 어머니 고함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언(어느) 놈들여. 언 놈들이 우리 뽕나무에 올라갔냐? 저 놈 새끼들이 넘 누에농사 망칠란가비여. 뽕나무 가쟁이를 다 뿐질러 놓고 있네. 아, 빨리 안 나가냐!”
쏜살같이 줄행랑을 친 다음날도 우린 또 재춘이네 뽕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 김도수

“다무락 허물어진게 존말로 헐 때 올라가지 마라”

우리 집과 옆집 앵순이네 집 경계엔 돌담이 쌓여 있다. 그 돌담 바로 아래 앵순이네 집 쪽으로 뽕나무 세 그루가 서 있었다.  

누에 키우는 집 대부분은 집안에 뽕나무 한두 그루씩을 비상용으로 키우고 있었다. 바쁜 농사철에 비가 내려 뽕을 따러 갈 수 없거나, 누에 밥 주다 뽕이 모자라면 얼른 따 먹이려고 집안에 키우는 것이다.

지금은 베어버렸지만 우리 집도 두 그루의 뽕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대문 오른쪽 돌담 아래 있었고 뽕나무는 지붕 위로 가지가 뻗을 정도로 큰 나무였다. 또 한 그루는 대문 왼쪽 돌담 아래  있었다.
우리 집 뽕나무는 나무만 컸지 오두개는 길쭉한 데다 맛도 영 아니었다. 그런데 앵순이네 집 뽕나무는 오두개가 크기도 크면서 아주 달고 맛있었다.

돌담 위로 뻗은 뽕나무 가지에 오두개가 꺼멓게 익어가기 시작하면 나는 오두개를 노려보며 군침을 흘리곤 했다. ‘혹시 오늘 뽕을 따 불먼 저 맛있는 오두개가 다 사라져부는 것 아니여. 오늘 따묵어 불까?’ 

마당에 서서 입맛 쩝쩝 다시고 있으면 아버지는 눈을 흘겼다. “다무락 허물어진게 존말로 헐 때 올라가지 마라. 그것 쪼께 안 따묵은다고 배고파 죽기라도 허냐!”

학교 갔다 올 무렵이면 부모님들은 대부분 들녘에 나가 있는 시간이다. 나는 돌담에 얼굴 빠끔히 내밀고 앵순이네 집안 동태를 살피고는, 아무도 없다 싶으면 재빨리 돌담을 타고 올라가 후드득 잘 익은 오두개 몇 개를 따먹고 내려오곤 했다. 검붉어진 입술로 만면에 환한 웃음 짓고 있었지만 항상 실컷 따먹지 못해 아쉽기만 했다.

▲ 뽕나무 서 있던 앵순이네집. 이제 돌담만 남아 휑한 마음 지울 수 없다. 오두개 몰래 따먹다
나무에서 떨어져 혼났던 추억이 그 터에 있다.
ⓒ 김도수


“월곡떡한테 일러서 혼내줘야 쓰겄고만”

집에 아무도 없는 일요일 오후였다. 돌담을 슬슬 기어올라가 앵순이네 집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돌담 위에 서서 잘 익은 오두개를 골라 정신없이 따먹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 뒷문이 삐그덕 열리며 앵순이네 어머니가 나오는 게 아닌가.

‘어메! 들켜 불었고만!’ 당황하여 잡고 있던 뽕나무 가지로 얼른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가만히 뽕잎 사이로 보니 앵순이네 어머니가 내 얼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몸이 딱 굳어지며 발이 떨어지지 않아 도망 칠 수 없었다.

“누가 우리집 오두개 따묵어라고 �냐! 우리 애기들 따줄라고 애끼놨는디 다 따묵어 불먼 어치게 혀. 아, 얼릉 안 니리가. 월곡떡한테 일러서 혼내줘야 쓰겄고만.”
돌담을 타고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쉽게 내려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어머니께 일러바치지는 않았는지 몹시 혼날 줄 알고 마음 단단히 먹고 있는데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잘 익은 오두개 바라보면 또 따먹고 싶어 돌담을 기웃거렸다.

연둣빛 뽕잎 사이로 시커멓게 매달려 나를 유혹하는 검자주빛 오두개. 햇볕 나는 날이면 더욱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어느날 학교 갔다 돌아오는데 그 날 따라 배가 굴풋했다. 나는 다시 돌담을 타고 올라가 앵순이네 집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얼른 따먹고 내려오리라 마음먹고 돌담 위에 서서 서둘러 잘 익은 것만 골라 따먹고 있었다.

그런데 돌담 가까이 뻗은 가지에 매달린 오두개는 다 따먹어 버려 더 이상 따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뽕나무에 올라가 본격적으로 따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 오셨는지 앵순이네 어머니가 마당에서 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모내기하다 자고 있는 아이 잠시 젖 먹이러 왔던 것 같다.

“아니 저번에도 가지가 찢어져 있도만 또 찢을라고 올라갔냐!” 
호통소리에 놀라 뽕나무에서 내려오려 하는데 당황한 나머지 그만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찌지직 부러지는 뽕나무 가지를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땅에 머리가 쿵 닿았다. 순간 별이 뻔쩍하더니 이내 하늘이 노랗게 변하며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떨어진 그대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아이고메! 이를 어쩐데아! 어디 안 다쳤냐?”
놀란 앵순이네 어머니가 소리치며 달려와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디 보자. 머리는 안 깨졌는갑다. 다행이다 다행이여. 그렁게 내가 뭐라고 허데. 오두개 따묵지 마라고 혔잖냐. 오두개 따묵다 나무에서 떨어지먼 죽어야 죽어!”
나는 옷을 탈탈 털며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오두개는 내게 가장 맛있는 간식이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수난을 당하면서도  나는 돌담을 타고 앵순이네 뽕나무를 오르락내리락 하곤 했다.

앵순이네가 서울로 이사 가고 잡초 무성하던 그 집은 이제 다 헐리고 기둥 팔려나가고 뽕나무까지 베어지고 말았다. 부엌 뒷문 열고 나오던 앵순이네 어머니 얼굴과 맞닥뜨려 얼른 뽕잎으로 얼굴 가리던 그 집. 이제 텃밭으로 변해 휑한 마음 지울 수 없다.
오두개 사라진 고향마을의 하늘은 오늘도 헛헛하니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