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안에 침 고이는 ‘오두개의 계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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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아무도 없는 일요일 오후였다. 돌담을 슬슬 기어올라가 앵순이네 집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돌담 위에 서서 잘 익은 오두개를 골라 정신없이 따먹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 뒷문이 삐그덕 열리며 앵순이네 어머니가 나오는 게 아닌가. ‘어메! 들켜 불었고만!’ 당황하여 잡고 있던 뽕나무 가지로 얼른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가만히 뽕잎 사이로 보니 앵순이네 어머니가 내 얼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몸이 딱 굳어지며 발이 떨어지지 않아 도망 칠 수 없었다. “누가 우리집 오두개 따묵어라고 �냐! 우리 애기들 따줄라고 애끼놨는디 다 따묵어 불먼 어치게 혀. 아, 얼릉 안 니리가. 월곡떡한테 일러서 혼내줘야 쓰겄고만.” 돌담을 타고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쉽게 내려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어머니께 일러바치지는 않았는지 몹시 혼날 줄 알고 마음 단단히 먹고 있는데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잘 익은 오두개 바라보면 또 따먹고 싶어 돌담을 기웃거렸다. 연둣빛 뽕잎 사이로 시커멓게 매달려 나를 유혹하는 검자주빛 오두개. 햇볕 나는 날이면 더욱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어느날 학교 갔다 돌아오는데 그 날 따라 배가 굴풋했다. 나는 다시 돌담을 타고 올라가 앵순이네 집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얼른 따먹고 내려오리라 마음먹고 돌담 위에 서서 서둘러 잘 익은 것만 골라 따먹고 있었다. 그런데 돌담 가까이 뻗은 가지에 매달린 오두개는 다 따먹어 버려 더 이상 따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뽕나무에 올라가 본격적으로 따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 오셨는지 앵순이네 어머니가 마당에서 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모내기하다 자고 있는 아이 잠시 젖 먹이러 왔던 것 같다. “아니 저번에도 가지가 찢어져 있도만 또 찢을라고 올라갔냐!” 호통소리에 놀라 뽕나무에서 내려오려 하는데 당황한 나머지 그만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찌지직 부러지는 뽕나무 가지를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땅에 머리가 쿵 닿았다. 순간 별이 뻔쩍하더니 이내 하늘이 노랗게 변하며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떨어진 그대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아이고메! 이를 어쩐데아! 어디 안 다쳤냐?” 놀란 앵순이네 어머니가 소리치며 달려와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디 보자. 머리는 안 깨졌는갑다. 다행이다 다행이여. 그렁게 내가 뭐라고 허데. 오두개 따묵지 마라고 혔잖냐. 오두개 따묵다 나무에서 떨어지먼 죽어야 죽어!” 나는 옷을 탈탈 털며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오두개는 내게 가장 맛있는 간식이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수난을 당하면서도 나는 돌담을 타고 앵순이네 뽕나무를 오르락내리락 하곤 했다. 앵순이네가 서울로 이사 가고 잡초 무성하던 그 집은 이제 다 헐리고 기둥 팔려나가고 뽕나무까지 베어지고 말았다. 부엌 뒷문 열고 나오던 앵순이네 어머니 얼굴과 맞닥뜨려 얼른 뽕잎으로 얼굴 가리던 그 집. 이제 텃밭으로 변해 휑한 마음 지울 수 없다. 오두개 사라진 고향마을의 하늘은 오늘도 헛헛하니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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