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그때 그 논두렁깡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버들개지 2008. 7. 15. 11:02
그때 그 논두렁깡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김도수

 

고향 진뫼마을은 섬진강 상류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피란을 왔다가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토끼와 발 맞추며 사는 두메산골이다. 그러다 보니 마을이 가장 번성했던 60~70년대에도 마흔 가구가 채 되지 않았다.

 

마을은 작지만 내가 자라며 보아온 세대의 자식들 남녀 성 비율은 남자가 휠씬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웃 마을에서 진뫼마을 하면 학생들이 많고 야무진 마을로 자리매김돼 있었다.

 

80년 후반까지만 해도 8·15일 광복절이면 해마다 덕치면 체육 대회가 열렸다. 마을 대항 축구나 배구시합 대진표 추첨 결과 진뫼마을과 붙게 되면 우리마을보다 두세 배 큰 마을도 상댕히 껄끄러운 마을과 붙게 되었다며 고개 흔들 정도였다.

 

왜 조용히 깔 비고 있는 사람 건드리는 거요?"

 

보리가 쑥쑥 올라오고 종달새 울어대던 70년 초반 어느 해 봄이었다. 이웃 구림면 통안마을 사람들이 마을 앞 강변으로 천렵을 왔다. 어머니들은 소쿠리에 음식을 이고 오고, 아버지들은 막걸리 통개와 장구를 둘러메고 마을 앞 강변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통안마을 사람들은 남쪽 저리소산 가는 길 상급배미 논 아래 자리를 잡았다. 상급배미 강변은 아름드리 미루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고 언덕도 평평해 놀기 좋았다.

 

ⓒ 김도수

ⓒ 김도수

오후가 되자 통안마을 사람들은 덩더쿵 덩더쿵 장구를 치며 흘러간 옛 노랫소리를 마을까지 울리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 통안마을 사람들은 바쁜 농사철 돌아오니 우리 한잔씩 꺾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껏 놀자며 목청껏 노래 부르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아랫것테(아랫곁) 사는 태선이형이 상급배미 논 아래로 소 꼴을 베러 갔다. 열심히 소 꼴을 베고 있는데 통안마을 청년 몇 명이 다가와 태선이 형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어이, 젊은이! 뜨건디 뭔 깔을 비고 있어. 우리랑 한잔 걸치고 걍 놀아불어.

 

형은 인상 팍팍 쓰며 묵묵히 소 꼴만 베고 있었다. 그래도 청년들은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그렇잖아도 형은 그날 억지로 소 꼴을 베러 가 기분 별로였는데 가라앉은 마음 들쑤시고 있었다.

 

놀로 왔으먼 조용히 놀다 갓쇼! 맥없이 깔 비고 있는 사람 건들지 말고.

 

그래도 계속 시비를 걸어오자 형이 버럭 화를 냈다.

 

왜 조용히 깔 비고 있는 사람 건드리는 거요? 남이사 깔을 비더니 말더니 콩나라 팥나라 왜 자꾸 헛소리 지껄이는 것이여. 시방.

 

뭐셔. 너 지금 우리들한테 뭐라고 �어. 헛소리 지껄인다고. 요곳이 우릴 뭘로 보고 말을 함부로 지껄이고 있어.

 

말싸움 끝에 서로 멱살을 잡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통안마을 청년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달려드는 바람에 형이 넘어져 청년들 발길에 짓밟혔다. 이를 목격한 마을 아이들이 아랫것테 사는 재진이 형에게 알렸고, 형이 달려가 싸움은 더 확대되었다.

 

싸움이 크게 일자 통안마을 어르신들이 나서서 뜯어 말렸다. 싸움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통안마을 사람들은 다시 장구를 치며 즐겁게 놀았다. 서산에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통안마을 사람들은 천렵을 마치고 상급배미 강변 길을 나서고 있었다.

 

 

ⓒ 김도수

 

마을 청년들이 통안이 사람들한테 맞아 불었다네

 

통안이(마을) 사람들한테 태선이 형이 맞아 불고, 이를 알고 달려간 재진이형까지 얻어맞아 불었다네하는 소리가 마을에 급속히 퍼졌다.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은 두 눈 부릅뜨고 상급배미 강변길로 달려가고 있었다.

 

두 눈에 쌍심지 돋우며 맨 먼저 달려간 사람은 큰집 용조형이었다. 점순이네 상급배미 논 아래 강변길에서 통안마을 사람들과 맞닥뜨린 형님은 아까 우리 마을 청년 때린 놈이 누구여! 존 말로 헐 때 빨리 나와. 안 나와! 두 눈 부릅뜨며 고함치고 있었다.

 

술 기운 달아오른 통안마을 청년들도 가만있을 리 만무였다. 요새끼가 시방 우리들 앞에서 건방지게 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두 주먹 불끈 쥐며 달라들었다.

 

용조 형님은 왼손잡이다. 통안마을 청년들 달려드는 쪽쪽 왼손 훅을 연거푸 날리자 그 자리에 주저 않으며 쓰러져갔다. 상대방이 아무리 몸집이 크고 날렵해도 왼손 훅에 한방 걸리면 쓰러졌다.

 

이를 목격한 통안마을 젊은 청년들은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 한꺼번에 우르르 달려들자 형도 마을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마을 청년들이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상급배미 강변 길을 달려가고 있던 큰집 맏형인 판조형님. 형님은 우리 일곱 되지기 논 아래 강변 길에서 달려오는 통안마을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젊은 시절 인근 마을 사람들 다 모여드는 주막집 있던 중전(마을) 바닥을 매일 휩쓸고 다닐 정도였고 한 가락 했던 형님이었다.

 

여그가 시방 어딘줄 알고 고함을 빽빽 지르고 난리여! 내게 잡히는 놈은 오늘 뼛따구 추리불랑게 어디 한번 덤빌터먼 덤벼 봐. 달려드는 쪽쪽 오른손 훅을 연거푸 날리자 아이고메! 나 죽네 그 자리에 푹푹 쓰러지던 통안마을 사람들. 아무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마을 청년들이 통안이(마을) 사람들한테 맞아 불었다네하는 소식이 집집마다 퍼지며 달려 나온 마을 청년들. 마을 앞 강변 길은 통안마을 사람들과 한바탕 패싸움이 벌어져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서로 쫓기고 쫓다 정자나무 아래 길가로 옮겨져 싸우고 있었다. 코피가 나고 입술이 터지고 머리에 피가 나고 강변은 두 마을 간 격렬한 격투기장으로 변해 버렸다.

 

마을 앞 길가에서 불붙은 싸움은 정자나무 옆 찬수네 보리밭으로 옮겨져 싸우고 있었다. 두 마을 사람들 모두 몽둥이나 돌 같은 흉기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았다. 순수한 맨주먹 하나로 맞짱을 뜨고 있었던 것이다.

 

ⓒ 김도수

 

황산벌 전투보다 더 치열했던 보리밭 싸움

 

인근마을에서 학생들 많기로 소문이 난 진뫼마을. 그 때 순창읍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 사이에 태권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배우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진뫼마을 청소년들이 아니었다.

                       

보리 이삭 통통하게 밴 푸른 보리밭 짓밟으며 맨주먹 불끈 쥐고 싸운 격투는 백제와 신라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한판 싸웠던 황산벌 전투보다 더 치열했다.

 

진뫼마을 중·고생들은 일대 일로 싸우고 있으면 뒤로 달려가 한방씩 날리며 재빨리 도망쳤다. 형들은 태권도를 해서 그런지 발차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통안마을 사람들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사람들 숫자로 보면 열세도 아니어서 마을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라 밀리지 않으려고 악을 바락바락 쓰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진뫼마을 중·고등생들이 느닷없이 뒤에서 한방씩 날리고 도망치는 바람에 싸움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찬수네 보리 밭은 보리타작을 해놓은 것처럼 납작하게 쓰러져 갔다. 찬수네 어머니 당숙모는 발 동동 구르며 싸움 말리고 있었다.

 

얼릉 보리밭에서 안 나가! 올 여름 우리집은 뭐 묵고 살라고 넘 농사를 망쳐부러. 아, 싸울라먼 질가테 가서 싸우던지 허제 왜 해필 넘 보리밭에 들어와 싸우고들 난리여.

 

우리집 셋째 용식이형도 찬수네 보리밭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때 형은 태권도 공인 3단이었다. 아버지는 형에게 싸움에 끼어들기만 했다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따라 다니며 말리고 있었다.

 

하여간 싸움판에 끼어들기만 �디허먼 알아서 히라. 집단 폭행에 걸려들먼 니 신세 오늘부로 조져붕게. 그 동안 고생히서 공부 시켰는디 한 순간에 날려 불먼 쓰겄냐. 존말로 헐 때 넉 아부지 말 듣거라 잉.

 

아버지 마음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나서서 싸우고 있는데 어찌 홀로 바라만 보고 있으란 말인가. 형은 통안마을 청년이 우리 마을 사람을을 계속 몰아붙이며 주먹으로 가격을 하자 쏜살같이 달려가 이단 옆차기를 날렸다. 그 청년, 밭 언덕으로 나가 떨어져 나뒹구는 모습을 본 통안마을 사람들은 어디서 태권도 사범을 데리고 와부렀는가 비여. 그라니고는 저렇게 공중을 날아댕김선 차덜 못혀. 고개 절래절래 흔들며 달아나고 있었다.

 

 

ⓒ 김도수

마을사람 모두가 전과자가 될 판에...

 

통안마을 사람들 코피가 터지고 머리가 찢어지고 다리 절룩거리며 아이고메! 나 죽겄네 나뒹굴며 정자나무 아래로 한두 명씩 드러눕기 시작했다. 아무리 주먹이 강한 사람도 타지에 가면 한 수 꿀리고 들어가기 마련인 법. 마을은 작지만 어찌 외지에서 놀러 온 사람들이 토박이 진뫼마을 논두렁 깡패들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싸움이 끝난 뒤, 진뫼마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병원에 드러누운 사람이 없었다. 일대 일로 싸우면 밀리지 않고 또 크게 얻어 맞지도 않아 작은 부상은 입었지만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없었다.

 

싸움이 끝나자 통안마을 이장인 듯한 사람이 나서서 진뫼마을 사람들 이름을 묻고 다녔다. 집단폭행 가해자로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아야! 저그 저 갱본에서 삘건 옷 입고 세수허고 있는 청년 이름이 뭐냐?

저 사람이라우. 삘 것 옷 입고 있응게 삘건사람 이겄지라우.

뭐셔! 요 동네는 전부 아그똥헌(정도를 벗어남) 애기들만 키우고 있고만.

 

그 날 저녁 통안마을 사람들은 진뫼마을 사람들에게 집단 폭행 당했다며 덕치지서로 고소를 했다.

 

그 놈의 동네는 전부 태권도 유단자들만 모여 산가 우리 동네 사람들이 겁나게 맞아 불었소. 시방 전부 허리를 못쓰고 병원에 누워 있응게 유치장에다 모두 쳐넣어서 콩밥 좀 묵게 히줏쇼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단다.

 

덕치지서에서 진뫼 이장을 찾고 난리가 났다. 폭행 가담자 명단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그 당시 작은아버지가 덕치 농협장이었는데 덕치지서와 통안마을을 오가며 서로 좋게 풀자며 빌고 다녔다. 집단폭행으로 구속되면 조카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모두 전과자가 되니 힘 좀 쓸 위치여서 나선 것이다.

 

마을에 긴급 회의가 열었다. 부상당한 통안마을 사람들에게 치료비에 보태 쓰라고 마을공동회비에서 합의금 봉투를 만든 것이다. 작은아버지는 그 봉투를 들고 통안마을 사람들에게 합의해 줄 것을 부탁했다.

 

허리가 아파 지금 병신이 되아부렀는디 합의는 무슨 놈의 합의여! 나는 절대 합의해 줄 수 없응게 나 때린 놈들 다 유치장에 쳐 넣어 불어야 혀.

 

통안마을 사람들 일부는 절대 합의해 줄 수 없다며 극렬히 반대 했다. 하지만 진뫼마을 사람들만 일방적으로 죄값을 치르는 게 아니라 상대인 통안마을 사람들도 폭행을 가했으니 함께 치러야 할 죄값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피해를 보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주위 사람들이 좋게 끝내자며 합의해 줄 것을 종용했다.

 

합의 보려고 며칠 동안 통안마을과 지서 번갈아 뛰어다닌 작은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통안마을에서 고소를 취소해 싸움은 마무리되었다. 만약 그 때 작은아버지가 농협장이 아니었더라면 합의하는 데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덕치면 3대 공직(면장, 지서장, 농협장)자 중 한 사람이었으니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한결 수월했다.

 

 

ⓒ 김도수

 

마을은 작지만 매운 맛 보여주던 그 봄날

 

그 해 찬수네는 보리를 거의 수확하지 못했다. 보리밭에서 두 마을 사람들 뒤엉켜 한바탕 나뒹굴며 싸웠으니 수확할 보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 보리밭, 지금 한수형님이 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여름이면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러운 고추 열매를 보면 마을은 작지만 매운 맛 보여주던 그 봄날이 떠올라 정자나무에 앉아 지나간 흑백 필름 되돌려 보고 있다.

 

땡기벌(땅벌) 건들면 전원 출격해 물불 가리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 쏘듯, 마을 청년을 건드려 벌떼처럼 달라들어 싸우던 그 논두렁깡패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다 떠난 텅텅 빈 마을 바라보며 오늘밤 나와 함께 자는 사람 숫자를 세어 본다.

사는 집 열 네 가구. 자는 사람 스물 일곱 명.

 

마을은 이제 지팡이 짚고 앞산만 바라보며 객지로 떠나간 자식들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사는 불 꺼진 어둔 마을로 변해버렸다. 한때 건들면 벌떼처럼 우르르 달려들어 마을의 자존심 굳건히 지키며 살아 왔는데 이젠 아침이면 노인네 몇 분 헛기침 해대며 흐르는 강물 무심히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