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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수 |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30년 만의 큰 가뭄이라 했다. 2001년 7월,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전국에 댐 12개를 2011년까지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 중엔 높이 56m, 길이 400m, 저수용량 1억5000만t, 홍수 조절용량 100만t 규모라는 섬진강 적성댐도 포함되어 있었다. 댐이 건설되면 순창군 2개면 7개 마을과 임실군 2개면 12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된다 했다. 내 고향 진뫼마을도 물 속에 고스란히 잠기게 될 판이었다.
‘고향땅, 절대 수장시킬 수 없다’…시위현장 뛰어다닌 부모님들 헌데 적성댐 건설이 발표되자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몰예정지역 강변 논밭을 사들여 양어장을 만들고 유실수를 심었다. 댐이 건설될 경우 받을 수 있는 보상비를 계산하며 투기를 하는 그들은 외지인들이었다.
“이왕 마을을 떠날 바엔 우리도 양어장이나 지어서 한몫 잡아불까?’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지역 주민들도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답답했다. 수몰 예정지역은 두메산골인지라 대부분 늙으신 부모님들만 거주하고 있었다. 정부를 상대로 싸운다는 건 달걀로 바위 치는 꼴이었다.
그런데 늙으신 부모님들은 그런 싸움을 시작했다. 수몰예정지역인 순창·임실 지역민들은 도청으로, 한국수자원공사로, 국정감사장인 서울 여의도로, 임실 장터로 내달리며 항의 시위를 계속했다. ‘고향땅, 절대 수장시킬 수 없다’며 삽과 호미 내팽개치고 시위 현장 뛰어다니다 밤늦게 돌아와서야 식은 밥 한 숟가락 뜨고 잠이 들던 늙으신 부모님들. 그분들 덕에 적성댐은 지금 ‘유보’되어 있다.
“그 돌 절대 가져갈 수 없응게 정자나무 아래다 갖다 놓고 가쇼.” 적성댐 건설 계획이 발표되고 난 이듬해, 진뫼마을엔 어김없이 화사한 봄이 찾아왔다. 강변엔 물감들인 것 같은 연둣빛이 나날이 짙어가는데 지난 겨울 마을 앞에 걸어놓은 적성댐 반대 현수막은 찢어지고 누렇게 변해갔다. 찢겨진 현수막 대신 마을을 지켜줄 든든한 수호신 같은 존재가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느 날, 강 건너 평밭 논에 중장비가 들어와 개간을 하고 있었다. 중장비 기사는 공사를 끝내고 징검다리 부근에 있던 바위 하나를 가져가려다 내게 딱 걸리고 말았다. “그 돌은 절대 가져갈 수 없응게 정자나무 아래다 갖다 놓고 가쇼.”
한눈에 봐도 그 돌은 진뫼마을을 지켜줄 지킴이돌로 ‘맞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킴이돌을 세우려 맘먹고 있던 참이었다. 중장비로 돌을 꺼내려면 하루를 쓰나 한 시간을 쓰나 비용은 똑같이 이십오만 원을 달라니 월급쟁이인 내 지갑을 탄하고 있었는데 돈 안들이고 돌을 꺼낸 것이다. 게다가 마침 김씨 집안 선산 일을 하게 되어 중장비 기사에게 미리 부탁을 했다. 일 끝나고 나가는 길에 잠시 마을 앞 정자나무 길가에 갖다 놓은 돌 좀 세워달라고 돈 5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강마을 사람들 땀과 흙 씻어주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로 선산일 마지막 날, 어둠이 내려서야 일이 끝났다. 마을로 내려와 보니 컴컴한 밤중인데 선산일 도와주던 마을 사람들과 집안 형님들이 모두 돌을 세우러 나섰다. 돌 세우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았다. 밧줄을 걸어 세우려 해도 돌출 된 부위가 없다 보니 곧추 서질 않았다. 비스듬하게 들려진 돌을 여럿이 밧줄을 잡아당겨 어렵사리 세웠다.
지킴이돌에 새길 글귀는 향토사학자에게 미리 받아두었다. 그이는 진뫼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글귀 하나를 보내주었다. ‘천유불식(川流不息).’ ‘내는 흘러 쉬지 않는다’란 글귀였다. 강물이 지금처럼 그대로 흘러가면 마을도 그 곁에서 영원히 평화로울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글귀는 돌에 새기지 못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마을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보초석도 제게 주어진 일을 알 것이고 그 곁을 흐르는 강물 또한 제 갈 길을 알고 있을 터였다. 정자나무 아래 서 있노라면 강물과 지킴이돌의 대화가 들리는 듯하다. ‘난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이고 싶다. 강마을 사람들 바라보며 그 얼굴에 흐르는 땀과 손발에 묻은 흙도 씻어주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고 싶다.’
‘강마을엔 사람이 살아야 한다. 내 여기 서 있는 한 이 마을은 절대 물에 잠길 일 없을 것이니 맘 편히 농사들 지으시라.’ 마을 사람들 힘 모아 일으켜 세운 진뫼마을 지킴이돌, 마을 사람들 바람을 담고 천년만년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적성댐 영원히 유보돼야
적성댐은 전남 동남부지역의 공업용수와 식수난 해소를 이유로 섬진강 상류인 순창군 적성면에서 임실군 강진면 일대에 건설하려는 댐이다. 10㎞ 상류 지역에 저수량 4억6600만 톤의 섬진강댐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하류에 또 댐을 건설한다는 것. 게다가 건교부(현 국토해양부)는 당시 적성댐 건설 계획에서 물 공급 인구수를 부풀려 산정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통계청의 2001년 광주광역시 추계 인구수가 153만9000명인데, 건교부 적성댐 기본계획은 186만5000명으로 추정함으로써 큰 차이가 났다. 또 138만 명인 2001년 광주광역시 실제 인구수가 적성댐 기본 계획에서는 10만 여명이나 더 많은 148만7천 명으로 잘못되어 있었다.
섬진강 하류가 그나마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염된 강물을 걸러주는 필터 역할을 해 주는 구간들 때문일 것이다. 임실군 강진면에서 덕치와 순창 적성면에 이르는 약 15㎞ 정도 되는 협곡엔 갈대숲과 조그마한 소(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적성댐 건설은 이러한 필터를 제거하는 행위다. 강 하류를 죽은 강으로 만드는 적성댐은 영원히 유보돼야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