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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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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방에 호미 내던지고서 양은솥에 물부터 끓이던 어머니 내게 여름이면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수제비다. 여름 내내 어머니는 뙤약볕에 밭 매러 다니다가 점심 드시러 와서는 후다닥 밀가루 반죽을 해놓고 갔다. 저녁에 수제비를 쑤려면 미리 반죽을 해 놓아야 하는데 밭일이 늘 늦게 끝나다 보니 점심밥 먹자마자 준비를 해 놓고 다시 밭으로 내달렸던 것이다.
어머니는 수제비를 조금이라도 일찍 쑤어주려고 집에 있는 자식들에게 미리 감자 껍질을 벗겨 놓으라 했다. 밭에서 들고 온 호미를 뜰방에 내던지자마자 양은솥에 물을 붓고 자식들에게 아궁이에 불을 지피도록 했다.
감자를 먼저 썰어 넣고 물이 팔팔 끓으면 반죽을 조금씩 떼어 넣으며 주걱으로 휘휘 저어 반죽이 서로 달라붙지 못하게 했다. 수제비가 익어갈 무렵이면 호박과 마늘과 간장을 넣고 마무리했다. 꺼칠한 보리밥만 먹다 쫄깃한 수제비가 올라오면 처음엔 좋았다. 하지만 하루건너 밥상에 수제비가 올라오면 먹기도 전에 밀가루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아 고개를 흔들곤 했다.
수제비에 낯을 찌푸리는 자식들을 등뒤에 두고, 쌀통으로 쓰던 장독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던 어머니 목소리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어짠디야! 양석이 바닥나게 생겼네! 보리방애(방아) 찌로(찧으러) 갈 시간이 없어서 큰일이네.”
가물치 메기 쏘가리 건져 갯버들가지에 줄줄이 꿰차고 객지로 나가 사는 진뫼마을 선후배들은 8월1일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고향마을로 모여든다. 여름이면 종일 물 속에서 놀며 자란 진뫼마을 사람들은 강물에 발이라도 한번 담그고 가야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다 왔다고 말한다.
휴가 동안 물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잡고 밤이면 빠가사리 낚시도 즐긴다. 호박 넣고 끓이는 다슬기국 한그릇 훌훌 마시며 “아이고 좋다!”를 연발한다. 물고기 잡아 매운탕 한 그릇에 소주 한잔 하며 “아이고 시원허다!”를 외친다. 그러니 마을 앞에 강이 흐르지 않았으면 얼마나 허전했을까.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 일요일 오후였다. 순창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내 바로 위에 형이 집에 다니러 왔다가 가는 길이었다. 형은 김치단지를 들고, 나는 쌀을 메고 버스정류장이 있는 중전마을까지 가려고 ‘용쏘갱번’ 지름길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새몰 벼락바위’ 앞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물 속에서 큰 고기를 맨손으로 잡아올리고 있었다. 윗마을 어디에선가 독성이 있는 나무뿌리를 찧어 풀었든지, 아님 농약을 풀었든지 둘 중 하나였다.
“아이고메! 이게 웬 떡이여!” 우린 가물치 메기 쏘가리 등 큰 고기들만 건져 갯버들가지에 아가리를 줄줄이 꿰찼다. 팔뚝만한 고기들만 골라잡으며 강물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정자나무 앞 ‘뱃마당’까지 내려와 있었다. ‘뱃마당’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고기를 잡고 있었다. 형은 순창으로 가 있어야 할 시간인데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니 걱정이 앞서는지 나를 앞세우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고메! 뭔 물괴기를 요로케도 많이 잡아와 불었다냐. 텀턱시럽게 많이도 잡아불었네. 빨리 깨끗이 배 따라. 그리야 저녁에 끼리(끓여) 묵제.”
큰 물고기를 양손에 들고 나타난 아들을 보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면서도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식구들은 오랜만에 물고기 맛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일년 내내 자식들에게 돼지고기 한 근 제대로 사 먹일 수 없는 궁핍한 살림살이였기에 부모님들은 꺼림칙하면서도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실컷 먹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고향마을 찾아온 선후배들과 물고기 잡고 다슬기 잡아 매운탕에 소주 한잔씩을 또 나눈다. 고향이 주는 힘이 온 몸에 퍼지니 다시 짱짱하게 버티며 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