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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규 아재는 마을에서 한때 가장 큰 소를 길렀다. 봄이면 쟁기질 길들이느라 묵직한 돌을 올려놓은 타이어를 소에게 끌도록 하여 마을길을 빙빙 돌고 다녔다. 겨우내 외양간에 갇혀 지내던 소가 타이어 끌기에 익숙해지면 마을 앞 텃밭에 들어서서 쟁기질 연습에 몰두했다.
겨우내 아이들이 뛰어 놀아 다져진 땅을 갈아엎는 게 힘드는지 소는 눈만 깜박거리며 꼼짝않고 버티고 있기 십상이었다. 그럴 때면 종규 아재의 고함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라, 이라! 이 놈의 소가 시방 얼매나 갈았다고 나한테 띵깡(떼)을 놀라고 혀. 올해 농사 잘 질라먼 시방부터 나허고 열심히 연습을 히놓아야 서로 핀혀. 빨리 안 갈래!” 아재는 소 고삐 줄을 잡아당기거나 배에 탁탁 치며 “이라!” “자라!”를 계속 외쳐댔고 소는 헉헉거리며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종규 아재의 고함소리는 서산으로 해가 넘어갈 때까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아, 바짝 몽당구 갖다 대랑게 뭣덜혀” 종규 아재는 늘 새벽에 일어나 소가 가장 좋아하는 풀들만 골라 베어다 먹일 정도로 소를 끔찍히 사랑했다. 그런 종규 아재네 우람한 황소 씨앗을 받기 위해 아버지는 여러 번 부탁을 했다. 종규 아재는 “교미하고 나면 살이 몇 킬로씩이나 빠져버린다”며 절대로 안 된다고 손사래치곤 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교미 좀 해달라고 끈질기게 부탁을 해대니 종규 아재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아버지는 허락을 받아내자 긴 몽둥이를 들고 나와 교미 준비를 했다. 교미는 약간 경사가 진 곳에서 해야 쉽다. 그래서 마을회관 들어오는 입구 경사진 우리 텃밭 길가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마을 아저씨 두 분은 암소 뒷다리에 긴 몽둥이를 넣고 배에 바짝 갖다 댔다. 아버지는 암소의 쇠코뚜레를 붙들고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게 했다. 교미를 할 때 황소가 올라타면 무게에 밀려 암소가 앞으로 밀려 나가기 때문이다. 또 힘에 겨워 곧바로 엉덩이를 굽혀버리면 교미가 이뤄지지 않을 뿐더러 암소가 다칠 위험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뒷다리 안쪽에 몽둥이를 밀어 넣고 양쪽에 서서 꽉 잡아주는 것이다.
종규 아재는 고삐줄 바짝 잡고 암소를 향해 돌진했다. 육중한 무게의 황소가 올라타자 암소는 힘에 겨웠던지 엉덩이를 재빨리 내리며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아, 바짝 몽당구 갖다 대랑게 뭣덜혀. 부사리(황소)가 올라타먼 앞으로 밀려붕게 바짝 힘 좀 써줘야 혀. 왜 그렇게 힘 한번 못 쓰고 배그르르 주장지게(주저앉게) 히불어. 끝나먼 내 막걸리 한잔 톡톡히 살텅게 힘 좀 바짝 써줘.”
아버지의 애타는 당부에 마을 아저씨들은 “힘껏 잡는다고 잡았는디 잘 안되고만이라우. 부사리가 살살 달려와얀단 말이제 사정없이 달려와붕게 어쩌덜 못허고 우리가 힘 한번 제대로 못 써 불었고만이라우!”라고 말했다.
“인자 두 집은 오늘부터 사둔집이 되아 분 것이제 잉!” 교미가 실패하자 아버지는 잠시 담배 한대 꺼내 물고 주위를 둘러보다 고함을 질러 댔다. “야이 놈들아! 저리 안 갈래. 뭣 볼 것이 있다고 애새끼들이 요론 데 나와서 뽀짝거리고 있어.” 두 번째 시도한 교미는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주름살 깊이 패인 아버지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나 웃음도 잠시, 아버지는 다시 종규 아재에게 다가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어이, 종규! 혹시 모릉게 딱 한번만 더 붙이세. 획실히 히둘라고 그려.” “안 되어라우. 그라니도 살이 쪽 빠져불게 생겼는디 두 번은 절대로 안 되어라우.”
하지만 종규 아재는 계속되는 아버지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지 고삐줄 잡고서 강변길로 나섰다. 강변길을 왔다 갔다 하며 소를 충분히 쉬게 하고는 다시 ‘아랫것테(아랫곁)’ 들어오는 마을길로 올라와 세 번째 교미를 준비했다.
평소 농담을 잘하던 태선이 양반이 구경꾼들을 향해 농을 던졌다. “아따, 인자 두 집은 오늘부터 사둔집이 되아 분 것이제 잉!” “호랭이 물러가네. 애새끼들도 많은디 별 소리를 다 허고 자빠졌네.” 나이드신 ‘지프실떡(댁)’ 할머니가 태선이 양반에게 ‘낯박살(창피)’을 줬다.
70년대 말부터 논밭을 갈 수 있는 경운기가 진뫼마을에도 들어오기 시작하자 농사를 주도하던 ‘소의 시대’는 가고 이제 쟁기만 덩그러니 헛간에 남았다. 지금 마을에는 딱 한 마리 소만 남았다.
쟁기 짊어지고 논밭으로 소 몰고 가고 샛거리 이고 논두렁 달려가던 부모님들이 산골짜기로 거의 떠나간 강변마을엔 이제 소도 가고 푸른 초원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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