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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썬 싱건지. |
| ⓒ 김도수 |
진뫼마을은 산 속에 빙 둘러싸인 마을이라 겨울철이면 유난히 해가 일찍 저문다. 오전 오후 꼬박꼬박 두 짐씩 땔나무 해오는 날이나, 눈이 내려 골방에 모여 노닥거리며 공치는 날이나 가릴 것 없이 따스한 햇살이 마을을 벗어나기만 했다 하면 나는 무조건 쇠죽을 쑤어야만 했다.
쇠죽을 쑤고 있으면 배가 굴풋하니 고구마가 생각났다. 안방 윗목 구석텡이 한켠에 옥수숫대 엮어 보관하고 있는 고구마를 좋은 걸로 골라서 잉걸덩이에 구웠다. 고구마는 잉걸불이나 잉걸덩이에 넣고 구우면 골고루 익지 않고 타버리니 화력이 약간 수그러들 때 넣고 재를 푹 덮어서 익히면 노릇노릇하게 골고루 잘 익는다.
쇠죽을 끓이고 고구마가 익을 즈음이면 어머니는 저녁상을 차리곤 했다. 저녁상 위에 싱건지(동치미) 한 양푼 가득 썰어 놓으면 나는 쇠죽 쑤는 작은방 아궁이로 가지고 와서 고구마에 시원한 싱건지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먹었다. 고구마가 뜨거워서 고개 좌우로 흔들어 가며 먹을 때 시원한 싱건지 국물 한 모금 마시면 어찌나 목구멍이 짜릿하게 시원하던지. 고구마와 싱건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최고의 궁합이었다.
고구마와 싱건지는 최고의 궁합 겨울 어느 날, 그 날도 어김없이 작은방 쇠죽 쑤는 아궁이 앞에 퍼질러 앉아 싱건지 한 양푼 놓고 고구마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이 때 외출 나갔던 아버지께서 뜰방에 들어서며 한말씀 던지셨다.
“저 새끼는 적 어메 밥 채린데 보고도 고구마를 먹고 자빠졌네. 곧 있으먼 저녁밥 실컷 먹을 턴디 뭐더게 고구마를 먹어. 그만저만 묵고 얼릉 인나서 쇠죽이나 퍼주거라, 잉!”
“아부지! 고구마가 참 맛있게 익었는디 하나 잡술라요? 싱건지도 막 내와서 엄청 맛있는디….” “그럼 어디 나도 하나 묵어 보꺼나.”
“아부지 잡순당게 몇 개 더 꿀라요. 잉그락이 엄청 좋아서 넣어 놓으먼 금방 익어불겄네요.”
“그리라. 점심을 어설프게 묵었는가 배가 탁 고프다.”
아버지와 함께 노릇노릇 잘 익은 고구마를 먹고 있는데 저녁밥 차리는 어머니 고함소리가 카랑카랑하게 들려왔다.
“아, 밥 채린지 뻔히 암서 뭔 고구마를 그렇게 묵었싸. 도수야! 어서 상 가지고 가거라. 고구마 묵는다고 아들한테 기함질러 놓고 댑띠로 적 아부지가 허리띠 풀러놓고 묵고 있네. 고구마 땜시 싱건지 다 묵어부러서 한 뿌리 더 내다 썰어야겄고만….”
구수한 청국장 냄새 진동하는 밥상 위에는 배추김치와 ‘세갈지’(무김치)에 싱건지까지 겨울 삼인방 반찬이 올라와 있었다. 밥 한 숟가락 떠서 아삭아삭 씹히는 세갈지 한 번 베어 먹고, 뜨끈한 청국장 한 숟가락 뜨고, 윤기 자르르 흐르는 쌀밥 위에 쭉쭉 찢어 올려놓은 배추김치 한 입에 먹고, 싱건지 후루룩 마시는 황홀한 겨울 만찬.
“오늘 따라 청국장이 겁나게 맛있네. 싱건지 거섭 좀 넣고 비벼 묵을랑게 양푼허고 고추장 좀 갖다 주제 그려. 참기름 있으먼 한 방울 넣게 가져오고.”
아버지는 배추김치 넣고 끓인 청국장과 싱건지 잘게 썰어 놓은 거섭을 몽땅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비벼 드셨다. 식구들도 따라서 비비기 시작했다. 참기름 떨어뜨릴 때는 귀한 거라 참기름병에 식구들 눈이 모두 쏠렸다. 한두 방울 정확히 떨어뜨려야 하는데 서너 방울 떨어지는 날이면 아버지께 혼났다.
“참기름은 딱 한 방울이먼 족헌디 뭐더게 그렇게 서너 방울씩이나 치냐! 고로케 많이 친다고 고소한 냄새가 더 진동헐 줄 아냐. 참기름에 욕심 내지 마라.”
식구들 모두 비벼서 먹자 싱건지 거섭은 거덜이 나고 국물만 남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다시 장독대 한켠에 묻어 둔 싱건지를 푸러 가야만 했다.
청국장과 싱건지 잘게 썬 거섭을 몽땅 넣은 비빔밥 맛 우리집 윗집에 사는 깨복쟁이 친구 현주는 초등학교 1학년 마치고 서울로 전학을 갔다. 현주네 식구들의 겨울철 점심은 주로 고구마에 싱건지였다. 함께 숙제를 하려고 돌담을 타고 현주네 집에 갈 때마다 현주는 점심으로 고구마에 싱건지를 먹고 있었다.
“도수야! 고구마 하나 주먼 좋은디 여그 남아 있는 고구마는 내 동생들 몫이여. 그리서 못 주겄다. 고구마만 묵으먼 저녁때가 되먼 배가 고픈디 싱건지랑 함께 묵응게 배가 안 고파서 좋아야.”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 우리 집도 꽁보리밥에 고구마 으깨어 밥 양을 배로 불려 먹곤 했다. 침을 꼴딱거리며 쳐다보는 나에게 현주는 고구마를 반쪽으로 갈라 주었다. 맛난 고구마를 먹고 싱건지 국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 나는 마음씨 고운 현주 얼굴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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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뫼마을 고향집 마당에 묻어놓은 싱건지. 살얼음 잡힌 싱건지는 겨울 맛 중에서도 으뜸이다. |
| ⓒ 김도수 |
그 시절, 어느 집이나 고구마에 싱건지 한 양푼 있으면 점심 한 끼로 족했다. 고구마 먹고 나서 막힌 목구멍 시원스럽게 뚫어주는 싱건지가 없었더라면 고구마 맛은 훨씬 덜 했으리라.
싱건지는 큰 무를 깨끗이 손질해서 소금에 간을 한 다음 항아리 속에 사흘 동안 넣어 두었다가 적당한 양의 물을 붓고 마늘과 생강 풋고추를 넣어 함께 숙성시키면 된다.
어머니는 싱건지 하나만은 마을에서 최고로 잘 담는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우리집 식구들은 유독 싱건지를 좋아해 김장을 할 때면 남의 집보다 항상 한 항아리를 더 담곤 했다.
어머니는 무청을 다듬을 때는 싱싱한 것 몇 개만 남기고 솎아내 깨끗이 씻어 땅 속에 묻어 놓은 큰 항아리에 차곡차곡 쟁였다. 무를 ‘한 들금’(한 층) 골고루 쟁인 다음 소금을 듬성듬성 뿌리고 또 쟁여서 소금을 뿌려 상단에는 무청을 빼곡히 쪘다. 무청을 많이 찌는 이유는 우거지를 막기 위해서였다. 무청 위에는 대나무 이파리를 깔고 돌로 눌러놨다. 그런 다음 사흘이 되면 물을 붓고 생강과 마늘을 절구통에 찧어 넣었다.
어머니는 절대로 생강을 많이 넣지 않았다. 그 시절 진뫼마을에서는 생강이 귀한 몸이기도 했지만 생강을 많이 넣으면 시원한 맛을 잃어버린다고 어머니는 거짓말처럼 넣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물을 부어 담근 싱건지와 물을 붓지 않고 담근 두 종류의 싱건지를 담갔다. 물을 붓지 않고 담근 싱건지는 많은 양의 소금을 뿌려 절인 다음 시원한 곳에 오랫동안 저장해 두었다가 봄에 먹었다. 물을 붓지 않고 담근 싱건지는 항아리에 무를 넣고 소금을 많이 뿌린 다음 그 위에 몽근 쌀겨를 두툼하게 깔아서 돌로 눌러서 응달진 뒤란에 보관해 두었다. 오래되면 항아리 속에 물이 생기게 되는데 쪼글쪼글해진 무를 꺼내 겨울철과 똑같이 잘게 썰어서 시원한 샘물을 부어서 초여름까지 먹었다.
매서운 강바람이 휘몰아치는 강마을이라 그런지, 물을 부어 담근 싱건지가 숙성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싱건지를 먹기 전에는 ‘속잎지’(무청 싱건지)를 먹었다. 속잎지는 싱싱한 무청만을 골라 항아리에 넣고 소금을 듬성듬성 넣고 담았다. 사흘이 되면 돌확에 생강과 마늘을 갈아서 물을 조금 붓고 숙성이 빨리 되도록 부엌 한켠에 두었다. 청국장에 속잎지 넣고 비벼 먹으면 얼마나 맛나던지 어떤 단어로도 그 맛을 표현하기 힘들다.
“어치게 담았가디 싱건지가 요로케나 맛나데아” 겨울철, 어머니들은 품앗이로 삼을 삼으러 집집마다 품앗이를 다녔다. 우리집 싱건지가 어찌나 맛나다고 소문이 났던지 어머니들은 우리 집에 품앗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을 어머니들께서 우리집에 삼을 삼으러 오시는 날이면 나는 호롱불에 석유가 충분히 들어 있는지, 심지 상태는 양호한지 해가 앞산을 넘어가면 꼭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삼을 걸쳐 놓은 전짓다리를 방 안에 가져다 놓는 것도 내 일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밤참을 준비했는데 온기가 남아 있는 무쇠솥에 밥을 넣어 두고 아궁이를 양철로 틀어막았다. 솥에는 따뜻한 숭늉을 조금 남겨 두고 밥을 양푼째 넣어 두었는데 밤참 먹는 시간이 되면 불을 조금만 지펴도 금세 따뜻하게 데워졌다. 반찬은 배추김치, 세갈지, 속잎지, 그리고 싱건지 한 양푼을 준비했다.
품앗이는 대개 열한시 쯤 끝이 났는데 아홉시 반을 전후로 해서 어머니들은 밤참을 드셨다.
“허허! 싱건지 진짜로 맛있네. 창자까지 시원히 부네. 요로케 삼삼허게 맛나게 익을라먼 소금을 어느 정도 쳐야 헌지 나 좀 갈쳐줘. 나는 싱건지 담을 때마다 실패를 헌당게. 올해도 영 맛이 안 나. 내년에는 월국떡이 우리집 싱건지 좀 담아줘, 응! 그나저나 어치게 담았가디 싱건지가 요로케나 맛나데아.”
싱건지를 드실 때면 으레 그런 말들이 오갔다. 마을 어머니들의 이구동성 칭송에서도 확인되는 바였지만, 싱건지는 틀림없는 우리집 겨울철 밥상의 제왕이었던 것이다.
그립다, 그 싱건지 맛! 어머니가 담근 살얼음 잡힌 싱건지 한 모금 후루룩 마시면 뒤틀린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찾아 이 세상 얹히며 사는 일도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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