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강이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아 집단 거주지를 형성했고, 오늘과 같은 문명의 발달을 가져왔다. 우리 몸 구석구석에 혈관을 통해 맑은 피가 흐르듯 사람 사는 곳이면 강은 대부분 흐른다. 흐르는 피가 맑지 못하면 몸이 아프듯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물 또한 오염이 된다면 우리 인간은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아 헤매야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갈수록 맑은 강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몸 속에 흐르는 맑은 피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맑은 강을 후세에게 물려줘야 하는 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중요한 책무로 떠오르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 밤이면 모기를 피해 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가에 놓여진 바위에서 잠을 잤다. 벼락바위에서 깨복쟁이 친구들과 함께 잠을 자며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의 별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주말이면 고향에 갈 때마다 그 벼락바위를 천천히 바라보며 집으로 들어간다. 밤새 도란거리며 잠이 들던, 아침이면 이슬 맞은 축축한 이불을 어깨에 둘러메고 강 언덕을 줄줄이 오르던 아름다운 시절의 깨복쟁이 친구들 모습이 한편의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머니는 가끔씩 머리에 빨래를 이고 마을 앞에 있는 징검다리로 나갔다. 그럴 때면 나는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 징검다리 위쪽의 넓적한 허락바위에 올라가 어머니 방망이 소리에 맞춰 동요를 멋지게 불러주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들 재롱에 하던 빨래를 멈추고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며 양파 껍질 같은 하얀 미소를 내게 보내주었다. 섬진강은 아직도 내게 변함없이 어머니처럼 환한 웃음을 늘 던져 주고 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 팔공산 자락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임실, 순창, 남원, 곡성을 지나 구례 압록에서 보성강과 만나 지리산을 돌아서 광양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섬진강은 길이가 212.3킬로미터고, 유역면적은 4,896평방 킬로미터이다. 강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시며 가깝게 흐르기에 흔히 어머니의 강이라 불린다. 따스한 어머니 품속 같은 남도 오백 리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젖줄과 같은 강이다.
요즘은 섬진강 하류가 시끄럽다. 취수장 확장 이전공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수자원 공사는 광양만권 산업단지 확장과 신규산업단지 조성으로 2004년부터 물 부족 현상이 초래돼 취수장 확장 이설이 불가피하다며 오는 2004년 5월 준공 계획으로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관동 취수장에서 4.2킬로미터 상류인 다압면 고사리 죽전마을 앞 강변에 현재보다 30만톤이 늘어난 하루 55만톤 능력의 취수장과 수어댐으로 공급할 수 있는 10.6킬로미터 도수터널 공사를 완료할 계획으로 터파기 작업을 하고 있다. 취수장이 확장 이전 건설되면 강물의 유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재첩은 자취를 감추고 화개면까지 짠물이 올라와 하류의 하우스 농사는 지하수 염분 농도가 심화돼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섬진강 하류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공사는 강행되고 있다.
감사원은 수자원 공사와 전라북도의 섬진댐 수자원에 대한 비효율적인 관리실태를 지적한 바 있다. 1965년 섬진댐 축조이후 2000년 11월까지 댐 홍수위 안의 주민이주가 되지 않아 정상 수위 196.5미터 보다 5미터 하향하여 운영한 까닭에 연간 43억원에 해당하는 1억4천 4백만 톤의 물을 활용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건교부와 전라북도가 집단 이주단지 조성공사 지연 등으로 댐 홍수위선 아래에 그대로 거주하고 있는 주민 1백41세대에 대한 이주대책을 추진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세대도 이주시키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자원공사는 광주와 전남 동부권의 용수부족을 이유로 1억 5천만 톤의 물 확보 계획을 내세우며 순창군 적성면에 적성댐 건설 비용 4천3백억원을 쏟아 부으려 하고 있다.
수자원 공사는 30년 만에 큰 가뭄이 들었던 지난 2001년 7월 11일, 2011년까지 댐 12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중에는 높이 56미터, 길이 400미터, 저수용량 1억5090만 톤, 홍수조절용량 1000만 톤 규모인 적성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건교부는 적성댐 건설 계획에서 물 공급 인구수를 부풀려 산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통계청의 2011년 광주광역시 추계인구수가 153만 9천명인데, 건교부에서 작성한 적성댐 기본계획에서는 2011년에 186만5천 명으로 추정함으로써 큰 차이가 난다. 또 약 138만 명인 2001년 광주광역시 실제 인구수가 적성댐 기본계획에서는 10만 여명이나 더 많은 148만 7천명으로 잘못되어 있다. 그리고 적성댐 8킬로미터 상류에 4억6600만 톤의 섬진댐이 존재하고 있는데, 또다시 댐을 막게 되면 섬진강은 동화댐, 주암댐, 섬진댐과 함께 댐 천지가 되어 흐르지 못하고 고이는 물이 많아질 뿐 아니라 섬진강 하류 유량 감소도 우려된다.
다목적댐이 들어서 있음에도 섬진강은 아직까지 전국 5대강 중에서 가장 깨끗하다. 임실군 강진면에서 덕치와 적성면에 이르는 15킬로미터 협곡은 강물을 걸러 주는 갈대숲과 조그만 소(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필터역할을 잘 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 '남부군', '복수는 나의 것' 등이 촬영된 장소로 영화촬영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고려 말 우왕 때부터 남원 양씨들이 터를 잡아 고려시대 촌락구성 형태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고 보물 제725호인 남원 양씨 종중문서가 존재하는 구미리는 보전해야 할 가치가 큰 문화유산이다. 그뿐인가. 수 천년 동안 섬진강 물살이 빗어낸 자연의 오묘함을 자랑하는 '장구목 요강바위'와 천연 기념물인 수달이 발견되기도 하는 등 섬진강의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지역은 비단 댐건설 계획이 아니더라도 후세에까지 파괴되지 않고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환경자산이다.
적성댐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임실, 순창 군민들은 전주 도청 앞으로 뛰쳐나갔고, 임실 군민들은 또다시 임실 장날 읍에 모여 “섬진강에 이제 댐은 그만!”을 외치며 군민궐기대회를 열었다. 문화예술인 130명은 섬진강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적성댐 건설을 즉각 중단 하라는 성명서를 발표 하였다. 2001년 가을과 2002년 봄에 적성댐 수몰예정지역인 진뫼마을과 장구목 마을에서는 적성댐 건설을 반대하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이제 섬진강 살리기 운동은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전국적인 문제가 되었다.
강 마을에 태어나 자란 나는 사십 중반에 접어든 지금에도 주말이면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지으며 자식들과 함께 강가에 나가 물 수제비를 띄우고 산다. 마을 앞에 널려 있는 돌의 모양이나 물 속에 놓여 있는 바위의 형태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들여다보인다. 여름이면 은하수 별빛이 쏟아지던 벼락바위, 수영을 하면서 다이빙하던 두루바위, 비 갠 후 땡볕에 자라가 엉금엉금 기어오르던 자라바위, 멱감을 때 옷을 홀딱 벗어 놓았던 까마귀 바위 등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지키고 서있는 바위들이 고향으로 나를 되돌아가게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계절 내내 하루도 강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강 마을 사람들. 마을을 떠난 사람들도 휴가 때면 고향마을로 되돌아온다. 휴가 중에 어쩌다 비라도 내려 강물이 불어나면 “이번 휴가는 다 망쳐버렸다”고 투덜대곤 한다. 아마 눈에 익은 바위들이 물 속에 숨어버리고 강물에 몸을 적시지 못하니 안달이 났을 게다. 돌담에 매달린 호박을 쓱쓱 썰어넣고 쌉쌀하게 끊여주는 어머니의 손떼 묻은 다슬기 국을 못 먹고 불어난 물만 바라보다가 객지로 다시 돌아가게 되니 그 허전한 마음이야 오죽할까.
오늘도 내일도 섬진강은 흐르고 싶다. 인간은 하루도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땔래야 땔 수 없는 물과 인간의 관계. 물이 사람을 마시지 말고 사람이 물을 마시는 공존공생의 길은 섬진강에는 과연 없는 것일까. 서울에 올라가 돈 많이 벌어 부모님께 효도한다며 징검다리 건너던 내 누이들. 그 서러운 눈물을 다 받아 흐르던 섬진강. 말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강물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 하루의 노곤함을 씻고 살아온 남도 오 백리 길 순박한 사람들. 오늘도 섬진강은 굽이굽이 그 생명을 감싸 안고 흐른다.
<진뫼마을 주말명예이장 김도수>
*이 글은 섬진강을 주제로 한 시와 사진 '江'(눈빛 출판, '03.4월)에 실린 글입니다.
(사진은 아래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hadongpogu/26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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