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어메아부지 고향집에 단 하루만 다녀가소서

버들개지 2010. 3. 4. 20:50

“어메아부지 단 하루만 고향집에 다녀가소서”

▲ 진뫼마을 안방 문 열면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 얼굴이 나를 맞는다.

ⓒ 전라도닷컴

 

어머니 돌아가신지 벌써 25년째 접어들었다. 3년 뒤 아버지도 어머니 곁으로 따라갔는데 꼭 엊그제 일어났던 일 같아 하루도 잊지 못하고 산다.


고향집을 사기 전에는 밤새 고향마을 어슬렁거리는 꿈만 꾸며 살았다. 집을 사서 십여 년 즐겁게 들락거리자 이제는 다른 꿈이 생겼다. 내 소원은 부모님이 단 하루만이라도 고향마을 고향집에 돌아오는 것이다.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장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앞에 나타난다.

 

“시상에! 어메아부지 애썼다고 돌에다 새기놨고만.”
저기 내 부모님이 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서 계신다. 두 분이 다정스럽게 손을 맞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고 계신다. 살아생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아따! 마을 고샅까지 쎄멘으로 쫙 깔아놔 불었네, 잉! 전에는 땅이 얼었다 녹았다 헝게 신발 밑창에 덕지덕지 달라붙어갖고 걸어댕기기 옹삭시럽도만 참 잘 히 놨고만.”


“근디 고추밭 가상에 뭔 돌이 서 있다제.”


“긍게 말여.”

고추밭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랑비’가 눈에 들어오셨나 보다.


“요놈들이 곡식 하나라도 더 숭거(심어) 묵제 뭐더게 바우 같은 것을 밭가상에 세워놓고 그맀데아.”


“‘월곡양반·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자식 밟고 살았네.’ 고로케 써져 있고 뒤에는 ‘어머니 아버지 가난힜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고로케 새겨 놨고만.”


“적 아부지가 읽어준게 알제 나는 암것도 모르겄네. 시상에! 내 새끼들이 적(저희) 어메 적 아부지 애썼다고 돌에다 새기놨고만.”


▲ ‘월곡댁’으로 불렸던 어머니 택호 따서 ‘월곡산방’이라 이름지어 놓은 아래채.

ⓒ 전라도닷컴

 

“도수새끼가  ‘월곡산방’이라고 한문으로 떡 허니 써서 달아놨고만”
비를 어루만지며 앞뒤로 왔다갔다 하며 흐뭇한 미소 짓고 있던 부모님. 한참을 고추밭에 머물다 집으로 발길 옮긴다. 마당에 들어선 부모님은 먼저 낡은 기왓장 걷어내고 슬레이트 위에 파란색 페인트로 도색을 한 지붕부터 쳐다본다. 아래채로 간다. 흙벽 무너져가며 달랑거리던 문짝은 온데간데없고 땔나무 쌓여있던 나뭇간과 방이 하나의 집으로 변해 있는 것을 흐뭇해하며 들여다본다.


“음마! 내가 분명히 집을 팔고 떠났는디 야들이 새로 집을 샀는가 벼. ‘월곡산방’을 한문으로 떡 허니 써서 달아논 것 봉게.”


아래채 방문 위에 달아둔 현판이 눈에 들어오시나 보다.

 
“그 옆에 걸어 놓은 현판에는 ‘달은 높이 솟아 앞산에 뜨고 그리움은 산을 넘어…’ 어쩌고저쩌고 써놨고만. 맨 끝에다 ‘99년12월 도수’라고 새겨 놓은 것 봉게 도수새끼가 써서 달아 놨고만. 재구락시란 새끼! 그런디 나는 시방 겁나게 서운허고만. 적 어메만 떡 허니 새기놔 불었잔애. 썩을 놈의 새끼!”


“아, 월국(곡)산방이라고 써서 달아놨담선! 월국이라고 써 놓으먼 월국떡도 되고 월국양반도 되는디…”


“절대 그라녀. 요 도수 새끼가 적 어메 방이라고 새겨 놓은 것이 틀림없어. 내가 하도 잔소리 험선 키워농게 아새끼들이 나허고는 정내미가 뚝 떨어졌는가 맨 적 어메만 좋아헌당게.  고 놈이 하마 오십 줄에 접어들었응게 인자는 애비 속 다 알 나인디, 적 어메만 사랑헌다고 떡 허니 새겨 놔 붕게 비웃땡이(비위)가 탁 트러져 부네.”


“뭐이 그리 서운허다고 그리싸! 마을 사람들이 다 월국떡 월국양반 그렇게 불렀는디….”


▲ 집 마당에 묻어놓은 김장김치. 그리운 어머니 손맛을 이렇게라도 맛본다.

ⓒ 전라도닷컴

 

“짐장 때마다 내가 판 자리에다 장독을 묻어놨고만”
어머니가 장독대로 발길을 옮기자 아버지 뒷짐 지고 따라간다. 현판 때문에 마음 상한 아버지는 계속 구시렁거린다.


“고만 좀 헛쇼. 장독대 좀 보소. 깨끗허게도 히 놨네. 짐장 헐라고 땅을 파서 장독 세 개를 이쁘게도 묻어 놨고만.”


“짐장 때마다 내가 판 자리에다 장독을 묻어놨고만. 여그따 짐장을 해 놓고 쬐께씩 가져다 묵은가벼.”


부모님은 이제 장독대를 거쳐 뒤란으로 돌아가고 있다.


“뒤안도 참 깨끗허게도 히 놨네. 솔(부추)밭도 그대로 있고. 외려 솔밭을 다무락 아래쪽으로 더 늘려놔 불었네.”


“근디 쫍은 뒤안에다 뭔 나무들을 숭거(심어)놨다냐! 사과나무허고 복숭아나무고만. 도수새끼가 저랑 아들이랑 딸이랑 각시까지 이름을 판자때기에다 써서 나무 아래다 꼽아놨네.”


“깨끗허게 치워 놓고 산게 좋고만. 그 때는 소랑 돼아지를 키웅게 마당에 뒤엄자리 있제, 농사진게 살림살이 구석구석 안 백힌 데가 없제, 어치게 깨끗허게 히 놓고 살 수가 있었가디.”

 

▲ 진뫼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세운 ‘사랑비’.

ⓒ 전라도닷컴

 

“내 대신 땔나무 허로 댕기느라 고생 많았네”
뒤란에서 나온 어머니는 마루에 걸터앉는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날마다 도시락 싸서 조선낫 한 가락 망태에 넣고 땔나무 하러 다니던 어머니. 마루에 걸터앉아 처마를 올려본다. 아궁이에 땔나무 지펴 밥해 먹던 부엌, 작은방에 쇠죽 쑤던 부엌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눈물 콧물 쏟게 만들며 하늘 높이 오르던 검정 연기는 처마 끝에 시방도 그을음으로 매달려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 옆에 걸터앉아 검게 그을린 처마를 함께 쳐다본다. 아버지, 문득 어머니 얼굴을 슬며시 쳐다본다.


“용수네 어메! 내 대신 땔나무 허로 댕기느라 고생 많았네. 처마를 이제사 쳐다봉게 이녁 고생 많이 시킨 것 같혀 미안허고만.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디지게 허다 나보다 일찍 강게 가슴이 너무 아파서 날마다 소주 한 병씩 비우고 울었제. 호강 한번 못 시켜 주고 떠나서 미안허다고.”


 “통 안 허던 소리를 갑자기 왜 헌데아. 날마다 들들 볶음선 살 때는 언제고.”


“안방에다 사진 걸어 논 게 참 보기 좋고만”
어머니, 손때 묻은 시커먼 문고리를 잡으며 방문을 연다. 아버지도 고개숙여 따라 들어간다.


“음마! 사진 좀 봐. 참, 좋네. 나도 참 이쁜 얼굴이었고만. 촌에서 썩어붐선 산게 시커멓게 타고 터서 그러제 지금 봉게 이쁜 얼굴이었고만. 저 때 나이가 얼매나 됐는가 모르겄네.”


“안방에다 사진 걸어논게 보기 좋고만. 내가 집 팔아불고 큰아들 집으로 갔었는디 자식들이 이 집을 다시 안 샀으먼 우리들이 어치게 안방을 차지허고 있겄어. 죽어서도 안방을 자치허고 있응게 우리는 참말로 행복한 사람들이고만.”


“아이고메! 시방 봉게 큰방도 겁나게 쬐깐했고만. 여그 큰방서 아새끼덜이랑 딱딱 붙어서 잤는디. 귀때기가 떨어져 나가게 춥던 엄동설한에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 보먼 울묵(윗목)에 떠다 논 물이 땡땡 얼어 불었제. 참말로 그 때 어치게 살았는가 몰라. 솜이불 하나 덮고 잔게 새복이먼 애새끼들이 서로 끌어댕김서 싸우고 그랬는디, 지나고 봉게 그때가 참말로 행복했었어.”


도란도란 말씀 나누던 어머님 아버님 모습 어느 새 허공에서 지워진다.
다시는 돌아올 수없는 먼 길 떠나간 부모님. 몽상 속에서나마 부모님 웃는 얼굴을 뵈옵고 나는 또 세상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