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고향집 먹감나무의 초대

버들개지 2013. 4. 12. 13:28

 

 

고향집 강 건너 징검다리 바로 위쪽으로 밤과 감을 섞어 심은 우리집 밭이 있다. 감나무도 많이 있지만 밤나무가 더 크고 잎이 무성해 그랬는지 우리 집에서는 ‘밤나무밭’이라 부른다.
밤과 감이 우리 형제들에게 교복 입고 중학교 교문을 들어서게 했고, 육성회비를 꼬박꼬박 내게 해주었기에 차마 칡덩굴 속에서 신음하는 모습 바라볼 수 없어 힘들더라도 해를 거르지 않고 풀을 베며 가꾼다.
잡목이나 칡덩굴을 베고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다 한마디씩 한다.
“뭐드로 암것도 나올 것이 없는디 그렇게 베싼가?”
“부모님이 가꾼 밤나무 밭이라 차마 무쿠들 못허겄어라우. 저를 키워준 나무들인디 어치게 칡넝쿨 다 기어올라가 나무 죽여분 꼴을 보겄어요. 힘들 땐 올해만 베고 내년부턴 안 베야제 험선도 또 베게 되고만이요.”

고 먹감이 그렇게도 묵고잡다고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들이 강물에 제 그림자를 비벼대는 가을날.
“도수야! 먹감 언제 딸래! 너그 형수가 딴 감은 먹고 잡덜 안헌디 고 먹감이 그렇게도 묵고잡다고 노래를 불러싼다. 먹감 딸 시기 잘 잡아서 통보 좀 히라. 그 때 형제들 모여서 한 번 놀자.”
서울 사는 바로 위에 형은 그렇게 먹감 따자고 노래를 부르더니, 홍어 갓김치 고들빼기 돼지고기 술과 떡까지 여러 음식물들을 손수레로 날라야 할 정도로 장만을 해왔다. 포항 사는 누이는 새벽에 일어나 가리비와 백합 문어 키조개 등 해산물을 챙겨와 우리집 밥상은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게 차려졌다. 나도 새벽에 일어나 갈담장에 가서 다슬기를 사서 준비를 했던 참이다. 조용하던 고향집에 오랜만에 시끌벅적 웃음꽃이 피었다.
형은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 누님에게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해주던 맛 잊지 못해 시래기국, 고추무침, 다슬기 탕과 국, 무침을 요리해 달라고 미리 주문했단다. 시래기국도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대로 해달라고 해서 누님이 한마디 했다. “아이고! 동생도 나이가 들긴 들었는갑네. 나이가 들면 옛날에 어매가 해 주던 반찬들이 먹고 싶다던디….”
누님은 형제들을 위해 이마에 땀이 마를 시간이 없게 계속 요리를 해댔다.
저녁이 되자 조개탄 난로를 마당에 놓고 우리 형제들은 빙 둘러 앉아 가리비와 백합을 구워 먹으며 옛 추억을 안주 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앞산 위에 덩두렷하게 나타난 보름달도 빙그레 웃으며 마당을 훤히 비추었다.
달도 밝으니 소화도 시킬 겸 오랜만에 형제들끼리 강 따라 내인(천담마을)으로 산책을 다녀오자는 누님의 제안에 달빛걷기까지 했다. 달빛에 산 그림자 진 강물을 따라 오순도순 이야기 하며 저리소산 아랫길을 걸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너무 멋진 유산
다음날엔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회문산부터 시작해 안정리 미륵쟁이 일중리를 거쳐 섬진강을 주욱 따라가며 늦가을 여행을 했다. 동계면 용골산 아래 요강바위에까지 가서 ‘고향집 먹감나무가 초대해준 가을날의 하루’를 만끽했다. 그날 저녁에도 우산을 들고 야간 산책에 나섰다. 이번에는 책보 메고 강변 오솔길을 따라 덕치초등학교에 등하교하던 ‘용쏘 갱번길’을 선택했다.
“오늘은 우리 헤어져야 허잖어. 서울서 내롤 땐 ‘2박3일이 참 여유있다’고 생각혔는디 눈 깜짝헐새에 후딱 가분다 잉!”
내 심정도 형의 말과 똑같았다.
마지막 날 감망을 챙겨 모두 함께 강 건너 밤나무 밭으로 향했다. 둘째형님은 낮은 곳에 있는 감나무에서 따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나이순으로 높은 깔끄막에 올라 먹감을 땄다.
감망을 들고 깔끄막에 서서 하늘 우러러 홍시를 따는 건 어쩌면 비바람과 햇님에게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물려준 먹감나무로 인해 형제들이 모여서 이 가을날 웃을 수 있었으니 이건 부모님이 물려주신 너무 멋진 유산이다. 형제들은 감망 꼬챙이에 감꼭지가 걸리지 않도록 요리조리 피하는 동안 간짓대로 가을 하늘에 수없이 편지를 썼다.
우리 형제들에게 2박3일 내내 웃음을 전해준 감나무, 내년 가을에도 우리 형제들을 불러 모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