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의 장손인 두만형님은 딸 셋을 낳고 그 뒤로 내리 아들 셋을 뒀다. 그 중 맏조카인 향자는 나보다 네 살 위로, 집안의 나이 어린
삼촌들에겐 누나와 같은 존재였다. 초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서울로 이사 간 뒤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 진뫼마을을 애틋하게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산다.
1970년대 후반, 내 바로 위의 형은 경기도 문산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는 글눈도 어둡고 차멀미도
심하게 낭게 니가 대신 형한테 면회를 다녀오라”며 쌀 서너 말을 팔아 여비를 마련해 주었다. 마침 그 때 집안 형님의 결혼식도 있어 축의금을
전할 겸 서울의 조카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
형한테 면회 간다는 나의 말에 향자 조카는 선뜻 함께 가자고 했다.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문산행 직행버스에 올랐고, 문산읍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철책선이 바라다 보이는 비포장 길을
달렸다.
군복무중인 형을 면회하러 간 날, 지갑은
바닥나고
때는 겨울, 눈은 하염없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바퀴에 체인을 감은 택시는 ‘찌걱
찌걱’ 소리를 내며 탄현면 어느 산골짜기의 부대 앞에 우리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위병소에 면회를 신청해 놓고 정문 근처의 구멍가게로 들어간
조카와 나는 연탄불 위에 올려둔 찜통에 든 호빵 몇 개를 사먹으며 형이 어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칼날처럼 주름 잡힌 군복을 입고
멀리서 뛰어오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형은 “멀리서 여기까지 오니라고 애썼다”며 나를 와락 껴안았다. 형은 아침부터 부대에 비상이 발령되어
외출외박이 전면 금지되는 바람에 얼른 해제되기만을 기다렸단다. 문산행 완행버스에 올라타자 형의 얼굴엔 금세 화색이 돌았다. 어렵게 외박이
허락되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문산읍에 내린 뒤 자리를 옮겨가며 술자리는 계속되었고 우리들은 힘든 군대생활과 옛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여관에 들어가서도 형은 오랜만에 동생과 조카가 면회를 오니 너무 기분이 좋았던지 내게 술심부름을 또 시켰다. 중국집에 가서 사온 빼갈
두 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형과 나는 밤을 지샜다.
다음 날 문산 읍내를 돌아다니며 술밥을 먹을 때마다 조카와 나는 서로 먼저 돈을 내려
했다. 이윽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얇았던 내 지갑도 바닥을 내보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쌀을 팔아 간신히 마련해준 결혼 축의금과
왕복차비, 그리고 면회할 여비만 갖고 올라온 나는 내려갈 차비를 걱정하며 지갑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저녁을 먹은 뒤 귀대시간이 다가오자
조카는 형의 호주머니에 3만원을 집어넣어 주었다. 그런데 나는 형에게 용돈을 주기는커녕 서울에 갈 차비와 고향으로 내려갈 열차표를 걱정하고 있는
신세였다.
어렵사리 완행열차표를 사서 내 손에 쥐어주던
조카
완행열차의 종착점이자 시발역인 용산역에 도착했을 때, 내 수중에는 동전 몇 닙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차마 말하기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조카에게 차비가 모자란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조카도 돈이 다 떨어진 눈치였다. 조카는 내게 남은 돈을
모두 달라고 하더니 자신의 지갑 속에 든 돈을 탈탈 털어냈다. 그래도 부족해서 버스토큰까지 꺼내 세고 있었다. 조카는 집에 갈 토큰 하나만을
덜렁 남겨둔 채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창피함을 무릅쓰고 토큰을 팔기 시작했다.
나는 용산역 가로등 아래 서서 조카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미안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드디어 토큰 팔기에 성공한 조카는 남원행 완행열차 표를 사서 내 손에
쥐어줬다. 고향 진뫼마을로는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때문에 임실역에서 내려 다시 완행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그러나 돈이 없었기에 나는 누님이
살고 있는 남원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남원역까지의 요금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안도의 미소를 짓는 조카의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전라선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에 흐르는 어둠과 벗이 되어 자다깨다 하며 다음 날 새벽 남원역에 도착했다.
조카는 고향 진뫼마을 뒷산에
잠드신 부모님을 만나러 매년 어버이날이 끼어 있는 휴일이면 어김없이 달려온다. 그 때는 나도 만사 제치고 고향으로 조카를 만나러 간다.
용산역에서 버스토큰을 팔러 다니던 조카의 뒷모습을 잊지 못해서이고, 내 손에 차표를 쥐어주던 그 따뜻한 손을 언제든 맞잡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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