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그 맛난 김치, 우리가 훔쳐 먹었습니다”

버들개지 2013. 4. 12. 13:23

 

자취집 골목. 오른쪽 두 번째 창문방과 마지막 방이 우리 형제가 예전에 자취하던 방이다.

1970년대 시골에서 도시로 나가 자취했던 학생들치고 반찬이 떨어져 왜간장에 몇 끼니씩 먹어보지 않은 학생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취생활은 주인집 아줌마를 잘 만나야 고생을 좀 덜 하는데 다행히 우리는 가는 집마다 인정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전주 금암동의 한 골목길에 있던 오래된 한옥에서 자취하던 시절, 주인집 아줌마는 홀로 자식 셋을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마음씨가 정말 고운 분이셨다. 주인집 아줌마는 우리들이 아침밥을 해먹으려다 연탄불이 꺼져가고 있어 밥을 못하고 있으면 “학생들, 나는 밥을 다했응게 우리집 연탄불에 밥 앙치제 그려”라고 우리들을 늘 살펴주고 배려했다.

자취생들의 여름살이 고민중 하나는 날씨가 무더워질수록 김치가 시어지는 것이었다. 냉장고가 없어 김치가 금방 시어져 버리는 탓에 진뫼마을 고향집에서 많이 못 챙겨 오니 김치가 쉽게 떨어지곤 했다. 그러면 우린 왜간장 하나에 밥을 비벼 먹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금방 느끼해지고 질려서 반찬으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1974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여러 끼니를 왜간장 하나에 비벼먹던 나날이 이어지던 중, 우리 형제는 밤에 주인집 김치를 몰래 훔쳐다 먹기로 했다. 아줌마에게 미안했지만 김치 생각이 간절했던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자취방 바로 옆에 작두샘이 있고 그 앞에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 한 켠의 찬물을 부어둔 함지박에 열무김치 항아리가 담겨 있었다. 많이 꺼내면 아줌마가 금방 눈치를 챌 터이니 김치를 바닥에서부터 살살 끄집어 올려 부풀게 해놓고 김치를 조금 꺼낸 뒤 위쪽은 살짝 다독거려 놓았다.
훔쳐온 김치에 밥을 먹으면서 형은 “야, 한 가닥씩만 집어 묵어라. 최대한 아껴서 묵어야지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씩 집어 묵다간 두 끄니도 못 묵고 금방 떨어져 불겄다. 김치 떨어지면 또 왜간장에 비벼 묵어야 허잖여!”라고 단속했다.

김치에 밥을 먹고 나니 뒤끝은 개운했지만 오금 저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밥을 할 때마다 주인집 아줌마와 함께 쓰는 부엌에 형과 나는 서로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부엌에 아줌마가 없는 틈을 노려 얼른 나가서 밥을 지어먹곤 했다.

주인집 아줌마는 분명 김치가 줄어든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아줌마는 우리들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 또래 아들들이 있었으니 김치가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랬겠냐 싶어 아마 알고도 모른 체 했을 것이다.

김치가 떨어지면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갈 반찬이 없어 그것 역시 고민이었다.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도시락 위에 노랗게 덮어 싸오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시절이었다.

김치를 훔쳐 먹었던 금암동 허름한 자취집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번듯한 양옥집들이 들어서 있다. 항아리 속에 넣어둔 열무김치가 시어지지 않도록 작두샘에서 찬물을 퍼올려 함지박 속의 물을 갈아주던 주인집 아줌마. 언젠가 찾아뵈면 항아리 속에 담긴 그 김치, 우리가 훔쳐 먹었다고 고백할 것이다.

‘아줌마, 미안해요. 김치가 떨어져 왜간장 하나에 계속 밥을 비벼 먹다 그만 아줌마가 담아놓은 그 맛난 열무김치, 우리가 훔쳐 먹었습니다. 그때 알싸하게 안기던 그 김치 맛, 아직도 형과 나의 혀끝에 남아 있습니다. 아줌마, 꼭 한번 찾아뵐게요.’

 

김도수님은 광양에 거주하며 주말이면 고향인 진뫼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징글징글한 고향사랑’의 마음을 담은 산문집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전라도닷컴)를 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