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뭔 상을 나무에다 준당가” | |||||||||||||||||
| 진뫼마을 정자나무가 풀꽃상 받던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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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뫼마을 정자나무를 알게 해주신 김도수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진뫼마을 정자나무에 제13회 풀꽃상을 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0월 중순, 환경단체 ‘풀꽃세상을위한시민모임’(풀꽃세상)에서 연락이 왔다. 올해 제13회 풀꽃상으로 ‘정자나무’를 선정하고 부상으로 ‘임실 진뫼마을 정자나무’를 뽑았다는 것이다. “지난 7월, 13회 풀꽃상에 ‘정자나무’가 선정된 이후 어느 마을의 정자나무에게 상을 드려야 할지 두루 돌아본 끝, 마침내 가 닿은 곳은 전북 임실땅 섬진강변 진뫼마을입니다. 정자나무아래 마을의 따스한 품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김도수님은 죽어가는 마을 정자나무를 살리기 위해 많은 애를 썼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김도수님이 마을 정자나무에게 쏟은 정성과 마음은 풀꽃세상이 정자나무께 상을 드리는 마음과 꼭 같습니다.” 풀꽃상은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고,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가치를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풀꽃세상’이 매년 자연물을 대상으로 시상하고 있다. 제1회 동강의 비오리를 시작으로 보길도의 갯돌, 새만금 갯벌의 백합, 지리산의 물봉선 등이 그간 상을 받았다. 올해로 13번째 맞이하는 풀꽃상은 마을공동체를 상징한다는 의미로 ‘정자나무’를 선정했단다.
'풀꽃세상' 허정균(우) 회장이 박한수 전 이장님께 풀꽃상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탯줄 묻은 고향에서 스물 일곱 해 사는 동안 내게 항상 그늘이 되어주어 나를 키워준 정자나무.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 하면서 외로울 때마다 나는 얼마나 정자나무를 그리워하며 살았던가. 부모님 다음으로 내게는 큰 그늘이 되어주었고 고향에 갈 때마다 강 언덕에 서서 맨 먼저 나를 반겨주던 정자나무였다. 수염이 하얗게 휘날리던 할아버지, 굽은 어깨 펴던 아버지, 코흘리개 친구들 모두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놀던 정자나무. 이젠 다 떠나고 지금 마을에 남아있는 아버지 겨우 일곱 분만이 살고 있을 뿐이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십 가구를 넘보던 흥했던 마을은 이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열 다섯 가구에 총 서른 명이 살고 있어 절속 같은 마을로 변해있다. 풀꽃상 받는다는 소식 전해들은 정자나무는 시상식 날 찾아올 손님들에게 아름다운 자태 뽐내기 위해 떨어지려는 낙엽 어찌나 힘겹게 붙들고 있더니 그만 홍조 띤 얼굴 검붉어져 있는 듯 하다. 어여쁘게 몸단장하고 상 받으려 안간힘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사람이나 나무나 상 타는 게 좋긴 좋은 모양이다.
정자나무가 내게 베푼 사랑 잊을 수 없어 ‘시상식 때 도와줄 일이 뭐가 있을까’ 내 나름대로 계획 세운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넘들이 그런디 풀꽃상, 그거 아무나 타는 상이 아니라고 허도만. 또 사람한테 주는 상도 아니고 자연물에게 주는 아주 희귀한 상이라 노벨상 받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상이라고 �싸. ‘하여간 도수 자네가 정자나무 살려서 받은 상잉 게 돈 벌어 어따 쓸랑가. 요롤 때 한턱 내야제. 긍게 이번에 돼아지 한 마리 잡고, 마을에 술도 한 턱 내소!’ 허더랑게.” “아니, 당신은 뻑허먼 엉뚱헌데다 돈 쓸라고 �쌌는디, 당신이 뭐 재벌 아들이라도 되요? 아새끼들한테 한참 돈 들어 갈 때라 머리 아파 죽겄고만 맨날 헛간 데다 돈 쓸 궁리만 허고 있네. 나는 콩나물 한가지 살 때도 이리저리 계산을 험서 산디 당신 혼자 정자나무 아래서 컸가디 혼자 낼라고 이리 난리요. 내가보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주최가 되어 잔치를 벌여야 일이고만. 하여간 돼아지 잡을라먼 앞다리만 잡아도 충분헝게 그리앗쇼!” “야이 사람아! 돼아지 잡은 짐에 한 마리 잡아서 힘들게 가실 일 끝낸 마을 사람들과 뜨건 뼉따구 국에다 한잔 험선 점심 묵으먼 얼매나 좋은가! 요롤때 마을에다 한턱 내야제 언제 내것는가?”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진뫼마을 사람들. 좌측 아내를 설득하고 마을에 고기와 술을 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식을 준비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풀꽃상 시상식이 낮 열두 시에 잡혀있어 행사 끝나면 점심 시간인데 어찌 마을 사람들만 모여서 밥을 먹는단 말인가. 우리만 점심을 먹고 풀꽃세상 회원들과 마을 찾아온 외지 손님들을 그냥 무정하게 보낸다는 건 진뫼마을 공화국 전성시대를 보아온 나로써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머리 아픈 숙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내 얼굴보고 찾아온 손님들은 우리 집에서 간단히 대접하면 되는데 풀꽃상 주러 온 회원들에게는 예의상 그게 아니잖은가. 그렇잖아도 마을 공통체 무너진 쓸쓸한 마을 방문해 썰렁하기만 한데, 섬진강 강바람 등뒤에 불게 하면 얼마나 마음 아프겠는가. 마을 이장에게 고기와 술은 내가 알아서 사갈 테니 시상식에 온 손님들과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식사 할 수 있는지 마을 어머니들께 여쭤보라 했다. 늙으신 어머니 몇 분 사는 작은 마을이어서 많은 인원의 음식물을 준비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다고 내가 풀꽃상 시상하러 온 손님들 점심 대접하자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처지도 아니어서 이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해 본 것이다. 어머니들, 무릎이 아파 절룩거리고, 팔이 아파 붕대를 감고, 기운이 없어 골골거리며 몇 분 사는 쇠락한 절속 같은 마을. 아, 왕성했던 진뫼마을은 어디로 가고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시상식 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점심이나 먹자며 술과 고기를 준비하는데 음식을 장만할 사람이 없어서 오는 손님들 점심을 걱정해야 하는 막 내린 진뫼마을 공화국이 너무 쓸쓸하기만 하다. 어머니들도 마음은 대접하고 싶었겠지만 몸이 안 따라주니 난색을 표하다 힘들지만 어떻게 해보자고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정자나무 아래서 고함지르며 떠들썩하게 마을 대소사 논하던 진뫼마을 공화국 이루며 흘러가던 강물도 멈칫거리게 만들며 떵떵거렸던 진뫼마을.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진뫼마을 정자나무가 대한민국을 대표로 상을 받는다고 했으면 “우리 오랜만에 풍물 굿 한번 야물지게 뚜두릴 기회가 왔다”며 아마 마을이 떠들썩 했을 것이다. 돼지 잡고 풍악 울리자고 큰소리 쳤을 마을 사람들 산골짜기로 다 떠난, 산사처럼 조용한 마을이 되어버린 고향마을. 돼지 한 마리 때려 누일 사람 없는, 노인 몇 분 불 밝히고 사는 쇠락한 마을이 되어버려 왜 그리 슬프고 눈물이 나는지. 돼지고기와 술을 사서 짊을 꾸렸다. 또 콩나물과 두부 대파 마늘, 삶은 고기에 얹어 먹을 젓갈까지 준비했다. 가는 길에 정자나무에게 드릴 톱톱한 막걸리 두 통 개 받아 휘파람 불며 고향마을 달려가는 길. 아내는 “혼자 좋아 저리 난리당게!” 연신 입을 삐죽거린다. 정자나무에게 풀꽃상 받음을 알려주기 위해 현수막도 준비했다. ‘제13회 풀꽃상 받는 진뫼마을 정자나무’를 쓰고, 올 봄 연초록 새순 내밀며 싱그럽게 잎 피워올린 정자나무 사진도 예쁘게 붙여 만들었다. 행사 전날 정자나무 아래 현수막을 붙이려 하니 잡풀 무성해 말끔히 베고 쓰레기도 치워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씁쓸했다. ‘마을에서 떡이라도 한말 할 줄 알았는데….’ 시끌벅적했던 진뫼마을 공화국시절이었다면 마을에서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을까? 시상식 날 아침, 영애네 어머니가 무릎이 아려 절룩거린 걸음으로 내게 다가온다. “도수양반! 집이껏 배추 몇 포기 뽑아 봐” 하신다. 아무래도 묵은 김치보다는 막 담은 맛있는 새 김치를 상에 올리려 한 것이다. 무채도 하고, 깍두기도 담으라고 나는 배추와 무를 함께 뽑아 드렸다. 몸은 아프지만 그래도 마을에 손님들 오신다니 새 김치 담아드리려는 마음, 코끝이 찡하게 전해져 왔다.
선정이유와 메시지를 낭독하는 땅채송화 어린이
풀꽃세상 회원 어린이가 정자나무에게 풀꽃상 주는 선정 이유를 낭독하고 진뫼마을 정자나무에게 ‘풀꽃상’이 전달 되었다. 행사에 참여한 마을 분들 중 제일 연장자이신 박한수 전 이장님께서 정자나무에게 술도 한잔 따라 드리며 대표로 상을 받았다. 한수 형님은 정자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잠시 들려주며 마을 대소사 논하며 떠들썩했던 마을 사람들 빈 자리가 너무 컸던지 잠시 말을 잊지 못한다. 사람 발자국 소리 그리운 고향마을 지키며 사는 형님께서 오랜만에 정자나무 아래 왁자지껄 사람 소리 들리니 어찌 진뫼마을 공화국 이루며 살던 어르신들과 벗들이 그립지 않겠는가.
시상식 끝나고 손을 맞잡고 정자나무를 빙빙 돌며 '고향의 봄'을 노래하고 있다. 풀꽃 회원이 불러주는 ‘고향의 봄’ 흙피리 연주 소리 듣고 있으니 정자나무 아래 모여 진뫼마을공화국 이루며 살던 마을 사람들 얼굴 한분 한분 떠올라 마음 싸해진다. 그 소리 아직도 강물에 잔잔히 실려가는 듯 붉게 물든 정자나무 잎, 강물에 두둥실 띄워 보내고 있는 이 가을이 너무 아름답기만 하다.
눈물나게 기쁜 이가을. 정자나무가 봄날에 이어 또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 찬바람 불어와도 외롭지 않는 가을이여! 친구에게 고맙다고 어깨 두드리며 행복해 죽겠다고 고함치는 가을이여! '
“정자나무가 살아있는 마을, 마을은 아름다운 공화국입니다. 정자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신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조촐한 작은 마을 앞과 뒤, 마을 어귀를 지켜주었던 정자나무는 같이 먹고 일하면서 놀았던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었습니다. 오래 된 마을의 오래 된 정자나무는 가난한 마을을 풍요롭게 꾸며주는 찬란한 풍경이었으며, 마을 사람들의 뜻을 한마음으로 묶어주는 마을 공화국의 전당이었습니다. 임실 진뫼마을 정자나무는 섬진강 가 강 언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과 마을과 논과 밭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이 느티나무는 진뫼마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신적인 지주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 잎 피는 봄날 햇살, 사람들이 가득 차 있던 여름날의 그늘, 가을의 고운 단풍과 눈이 하얗게 쌓인 이 정자나무는 오랜 세월 변함없이 마을을 지켜주는 큰 어른이었습니다. 속도와 경쟁만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마을 공동체는 사라지고 해체되어 그 나무 아래는 텅 비게 되었으나, 마을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과 괴로움과 기쁨과 슬픔들을 달래주던 이 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의연하게 지켜왔으며 지금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풀꽃상, 마을 회관에 걸어 놓았다. ⓒ 김도수 <풀꽃세상, 정자나무 선정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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