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나무 아래 아름다운 늦가을 한 때. 이 땅 수많은 마을마다의 정자나무를 대표해 풀꽃상을 받 은 진뫼마을 정자나무를 둘러싸고 돌며 사람들이 손에 손잡고 ‘고향의 봄’을 불렀다. |
| ⓒ 김태성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꽃피는 봄은 아니었지만 마음 속에 잠시 꽃 피었다. 함께 손에 손잡고 나무를 둘러싸고 둥그렇게 돌며 ‘고향의 봄’을 부르는 동안.
쓰잘데기 없는 ‘거리’는 지워졌다. 나무와 사람도, 사람과 사람도 문득 가까워졌다. 그렇게 이 나무 아래 아이들 고물거리며 뛰놀고 마을 사람들 얼크러져 흥겨웠던 날들 있었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시절’을 기억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
 |
| ▲ 풀꽃세상 대표 허정균씨가 자연을 모시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
| ⓒ 남신희 기자 | “오매, 나무가 상을 받다니…. 세상에 뭔 그런 희귀한 상이 있디야?” 섬진강물 흐르는 임실 덕치면 진뫼마을의 정자나무 아래에서 지난 11월11일 풀꽃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바로 정자나무. 새나 돌에게 상을 드리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풀꽃세상)은 올해 제13회 풀꽃상으로 정자나무를 선정했다. 이 땅의 마을 어귀마다 서 있는 수많은 정자나무들을 대표해 진뫼마을 정자나무가 이 날 상을 받았다.
한 마을과 더불어, 마을 사람들의 생애와 더불어 거기 오래 제 자리를 지키며 고요히 많은 것들을 베풀어온 나무에게 바치는 마음 한 자락의 표현이었다.
“오매, 나무가 상을 받다니…. 세상에 뭔 그런 별시런 상이 있디야? 우리 나무는 차말로 좋겄네.” 진뫼마을 경숙이엄마 말대로 사람 아닌 것들이 상 받는 이 ‘별시런 상’은 그간 동강 비오리·보길도 갯돌·가을 억새·인사동 골목길·새만금갯벌의 백합·지리산 물봉선·지렁이· 자전거·논·간이역·비무장지대·우리씨앗 앉은뱅이밀 등에 주어졌다.
 |
 |
▲ 김도수씨는 시름시름 앓던 정자나무가 살아났을 때의 기쁨을 전 하고. |
| ⓒ 김태성 | 우리가 진정 감사와 존경을 바쳐야 할 자연물, 개발의 미친 바람 거슬러 아끼고 지켜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상.
허나 우리가 감히 자연에게 상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아낌없이 주기만 했던 나무에게 상을 주기 위해 모인 이 날도 아름다운 가을 한 때를 사람들에게 선물한 것은 결국 나무였다.
전라도닷컴을 통해 진뫼마을 정자나무를 세상에 널리 알려오고 정자나무가 시름시름 앓을 때는 임실군청에 정자나무를 살려주라는 내용의 간절한 편지를 써 보내 마침내 푸르른 새 잎 움트게 한 김도수(전라도닷컴 ‘도수네’ 필자)씨에게 정자나무의 수상은 더욱 각별했다. 빈 집 늘어가는 적막한 마을에서 혼자 힘겹게 끙끙대던 나무가 새 잎 내보였을 때 “살아줘서 고맙다”고 나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는 그이다. 시상식 열리는 날 아침엔 정자나무에 막걸리 부어주고 나무 얼싸안으며 수상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했다.
 |
 |
| ▲ 바람 속에 흙피리 소리 흐르고 |
| ⓒ 남신희 기자 | 한미FTA 맞닥뜨린 위기의 농촌 대변하는 정자나무 “정자나무는 서춘양반하고 판용이양반이 산에서 캐왔는디, ‘배를 요 나무에다 매달아 놓게 여긋따 심자’며 마을 앞 강변에다 심었데아. 심은 지가 대략 150년은 되았을 것이네. 글고 천담마을(진뫼 아랫마을) 살던 박양선이란 목수 양반이 짠 조각배를 진뫼 어르신들이 사가지고 와서 그 배를 정자나무에 매달아 놓고 물이 불먼 이용했다덩만. 그리서 정자나무 바로 앞 강물 이름이 ‘뱃마당’이 되았던 것이여.”
지난 가을 돌아가신 이 마을 임삼금 어르신이 생전에 김도수씨에게 들려줬다는 정자나무 내력이다.
마을 꼬마들 모여 온갖 놀이 펼치던 놀이터, 여름날 그 그늘 아래 고된 허리 잠시 쉬며 땀 식히던 쉼터, 마을 사람들이 대소사를 의논해 결정하던 국회의사당, 정월 대보름이면 어머니들이 음식 차려 놓고 소원을 빌던 기도처…. 거대한 자본도 위용도 자랑하지 않고 자연스레 이뤄낸 복합문화공간. 정자나무는 그렇게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마을공동체를 엮어왔다.
허나 정자나무를 둘러싼 시대적 풍경도 변해가고 있으니, 풀꽃상 선정위원들은 마을공동체의 해체에 맞닥뜨린 오늘의 농촌, 한미FTA가 몰고 올 위기를 상징하는 것이 정자나무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이날 시상식에 ‘FTA는 마을공동체를 파괴합니다’란 절박한 목소리 담긴 펼침막이 한데 내걸린 이유다.
 |
 |
| ▲ 이 땅의 작고 소박한 마을들을 지켜 나가고픈 마음도 함께 펄럭이고 |
| ⓒ 남신희 기자 | “가난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해온 나무” 시상식에서 풀꽃세상 대표 허정균씨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다. 우리 조상들은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경쟁력이 최고의 미덕이 돼버린 오늘날 자연은 오로지 이윤을 극대화하는 대상이나 도구가 돼가고 있다”고 파괴와 훼손이 날로 극심해져 가는 이 땅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어 “지난해 우리 씨앗 앉은뱅이밀이 풀꽃상을 받은 이후 풀꽃세상은 우리 씨앗 지키기 운동을 벌여 왔다”며 “이번 정자나무 수상을 계기로 이 땅에 존재하는 작고 소박한 마을들이 깨지지 않고, 농촌마을의 두레와 품앗이 정신이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애쓸 것”이라는 다짐의 말을 전했다.
풀꽃세상의 한 풀씨인 권효재 어린이는 정자나무가 풀꽃상에 선정된 이유를 들려줬다. “가난하고 조촐한 작은 마을 앞과 뒤, 마을 어귀를 지켜주었던 정자나무는 같이 먹고 일하면서 놀았던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었습니다.…속도와 경쟁만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마을공동체는 사라지고 해체되어 그 나무 아래는 텅 비게 되었으나, 마을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과 괴로움과 기쁨과 슬픔들을 달래주던 이 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의연하게 지켜왔으며 지금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어 공동체를 이루며, 지금도 곳곳에 그 풍요함과 우람함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마을의 상징인 이 땅의 모든 정자나무를 대표하여 ‘임실 진뫼마을의 정자나무’에게 열세 번째 풀꽃상을 드립니다.”
나무 아래 축하공연도 아름다웠다. 문정화씨가 흙피리(오카리나)로 ‘고향의 봄’ ‘나무야 나무야’를 들려주었고 나즉한 읊조림들이 함께 했다.
김도수씨는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내가 정자나무에게 받은 큰 사랑에 대해 오늘의 수상이 조금이라도 갚음이 됐으면 좋겠다”며 “가난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해온 나무가 적성댐 건설로 수장되지 않고 길이길이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마음을 밝혔다.
 |
| ⓒ 김태성 기자 | 같이 먹고 일하면서 놀았던 마을 공동체의 상징 진뫼마을 전 이장인 박한수 어르신이 대표로 받은 상장은 시상식 직후 마을회관에 걸렸다. 그 상장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상을 받는 세상’을 이야기했다. 나무에게 상을 주어 자연을 돌아봐야 할 만큼 자연을 잊고 살거나 함부로 해치며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정자나무 아래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북적거리던 날들을 향한 그리움도 이야기 속에 섞였다.
남편 눈이 하도나 커서 ‘눈보떡’으로 불리는 할머니는 “우리 마을이 인자 관광버스 한 대도 부르들 못허게 (사람이) 졸아들었어. 올 가실엔 놀러도 못갔당게. 마흔 및 명 타는 크댐헌 뻐스에 스물 및 명배끼 안타문 얼매나 아까운 일인가. 돈도 아깝고 지름도 아깝고. 긍께 안가 불었어”라고 말했다. 이어진 말은 “그래도 서운하든 안해”라는 씩씩한 덧붙임.
왜? “오늘 우리 정자나무에 사람들 모태서 항꾸네 노래부르고 강강술래헌께 얼매나 재미졌능가.” 올 가실 재미는 “고걸로 됐제” 하신다.
불 꺼진 집들 늘어가는 강가 마을의 겨울은 그지없이 적막하다. 긴 겨울 지나 봄 되면 정자나무엔 푸른 새 잎 다시 돋아나겠지만 비어가고 야위어 가는 마을엔 푸르른 힘 어떻게 다시 채워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