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너그 동네는 지난 설에 닭 안 죽었냐?"

버들개지 2008. 2. 12. 09:21
“너그 동네 지난 설에 닭 안 죽었냐?”
“응, 닭병이 돌아서 많이 죽었어”
꿩 대신 닭서리

▲ 섬진강물 휘돌아 굽이쳐 흐르는 싸리재 마을의 겨울 풍경.
ⓒ 김도수


설날 아침이면 으레껏 차례상 물리치자마자 식구들과 함께 마을 뒷산에 있는 선산에 올라간다. 부모님 묘소가 가까워지면 나는 소나무 가지를 식구들 숫자만큼 꺾어 든다. ‘여기 잠드신 조상님들, 새해를 맞이해 후손들이 다녀갔습니다’ 표시하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 설날 아침 형들을 따라 선산에 올라가면 각자 소나무 가지를 하나씩 꺾어 들고 묘소 앞에 섰다. 오른쪽부터 나이순으로 자동정렬하여 꺾어온 소나무 가지를 앞에 놓고 절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진뫼마을 사람들은 설날 산소에 가면 소나무 가지 꺾어 놓고 절을 하며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설날 돌아와도 썰렁한 마을…떠나간 이들 더욱 그리워
해가 갈수록 설날이 돌아와도 마을은 명절 분위기는커녕 조용하기만 하다. 한때 사십여 호에 이르던 마을에 이제는 겨우 열 네 집만 불이 켜져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 데다 “설날 니롤라먼(내려오려면) 차 밀려 힘든게 내가 차라리 서울로 올라가 불란다”며 부모님들이 역귀성을 하는 바람에 마을은 더욱 썰렁해지고, 떠나간 사람들이 더욱 그리운 설날로 변해 가는 것이다.

마을에 초등학교 남녀 동창생이 열세 명이나 된다. 그런데 지난 설에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어쩌다 빈집에 내려와 설 쇠고 가는 친구 현호와 한잔 하게 되면 ‘야물딱지게’ 설 쇤 기분이 들었는데 현호도 내려오지 않은 지난 설날은 나 홀로 고향집에서  있었다.

그런데 겨우내 서울 자식들 집에서 지내던 이웃 태현이 어머니께서 ‘설은 진뫼 니리가 쇨란다’고 해 후배 태현이가 내려왔다. 태현이도 심심했던지 “도수성! 집이서 뭐더고 있는가. 한잔 히야제. 이 추운 겨울에 어치게 물고기를 잡았는가 막둥이네 집에 매운탕을 끼리(끓여) 놨당게. 그리 한잔 허로(하러) 갑시다”며 나를 찾는다.

땅속에 묻어둔 싱싱한 무 꺼내다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인 매운탕. 목구멍에 알싸하게 들어가는 소주 한잔에 형님 몇 분과 어울린 막둥이네 방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술상 아래 빈 소주병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옛 추억은 끝없이 풀려나오는데 태현이가 ‘설날 닭서리’ 갔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 친구 정호네집 닭장.
ⓒ 김도수


“꿩은 못 잡고 닭서리나 가자고 싸리재마을까지 안 갔소”
“나 중학교 3학년 때 설날 눈이 많이 내려 아래것테 재준이, 찬선이랑 꿩 잡으로 안 갔소. 그 때는 싸이나(청산가리)로 꿩 잡던 때잖아요. 메주콩 파서 그 안에 싸이나 넣고 초로 살짝 때웠잖아요. 그것 가지고 산으로 꿩을 잡으로 갔는디 꿩 켕이는(커녕) 참새 한 마리도 못 잡고 니리(내려)가서 닭서리나 가자고 히서 싸리재마을까지 안 갔소.

여기서 싸리재까지 거리가 얼매요. 내인(천담마을) 지나 안다물(구담마을) 앞에 있는 징검다리 건너 싸리재로 서리를 갔는디, 마을 앞에 있는 논에서 동네 애들이 고무공으로 축구 시합을 벌이고 있더라고. 논두렁에서 한참 재미지게 구경을 하고 있는디 개네들이 함께 차자고 우릴 부르더라고. 논바닥은 넓제, 사람 숫자는 적제, 눈이 다져져 미끄럽기는 허제, 힘든게 우릴 부른 것이제.”

“근디 얼굴도 잘 모른 너그들을 어치게 싸리재 애들이 공을 차자고 허데?”
“우리가 안다물 쪽서 온게 설 쇠러 친척집에 놀러 온 아이들이라 생각을 혔는가벼(했는가 봐). 하여간 눈 쌓인 논바닥에서 찬게 엄청 재밌더라고. 서너 게임을 찼는디 나중에는 공이 와도 쫓아갈 힘이 없을 정도로 차 불었응게.

근디 가만 본게 공 차는 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닭들이 놀고 있더라고. 그리서 쉬는 시간에 꿩 잡을라고 갖고 간 메주콩을 찌클어 놨제. 눈이 내려 먹이 찾기가 힘들었을 것인디 닭들도 ‘이게 웬 떡이냐!’ 허고 달려들어 마구 주서 묵었겄제.

▲ 태금이네 장닭. 고놈, 참 의젓하니
생겼다.
ⓒ 김도수

우리 셋이는 축구고 뭐고 닭들이 노는 곳만 자꾸 쳐다보게 되더라고. 쫴께(조금) 있응게 닭들이 꺼꿀라지는디 참말로 겁나 불도만(버리더구먼). 싸리재 애들은 공 차는 데만 신경을 쓴 게 다행이제 들킬깸시(들킬까봐) 가슴이 콩닥콩닥 해서 혼나 불었당게.

축구 시합이 끝나고 싸리재 애들이 집으로 가고 나서 꺼꿀라진 닭 중에서 제일 큰 놈 한 마리씩을 옆구리에 숨겨 차고 오는디 마을 어른 한 분이 마주 오고 있더라고. 잠바를 입었지만 큰 닭을 옆구리에 끼었으니 당연히 툭 튀어나왔겄제. 우린 어르신께 ‘안녕하세요?’ 정중히 인사를 하며 지나쳤제. 근디 도둑놈이 제 발 저린다고, 그 어른 우리들 바라보는 눈빛이 여간 의심스런 눈초리가 아닌 것 같더라고.

‘저 놈들이 누구다제? 통 못 본 놈들이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디 아무래도 옆구리가 좀 이상헌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꾸 뒤돌아봄선 우릴 힐끗힐끗 쳐다보고 가는디 들킬까 봐 맘이 조마조마해 심장이 그대로 멈춰불 것 같더랑게.

 

“우리가 겁나게 개구락시런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혀”
날은 저물어 캄캄한 밤에 싸리재서 진뫼까지 걸어오는디 한 시간 반은 걸렸을 것이여. 근디 닭이 어찌나 무겁더니(무겁던지) 들고 오느라 혼나 불었당게. 도착히서(해서)는 우선 닭을 윗골 문종이 뜨는 지소 뽕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제.

그 다음날 밤에 삶아 묵을라고 갱본에서 닭 터럭(털)을 뽑고 있는디 어둠 속에서 누가 살살 다가오더라고. 놀래가꼬 후다닥 감추는디 ‘시방 너그덜 거그서 뭐더냐? 어디서 닭서리 해왔고만….’ 아랫것테 재진이 형님이더라고. 우린 얼떨결에 ‘형님도 한 마리 드실라요?’ 험서 얼릉 한 마리 줘붓당게.

그렇게 들키고 나서는 그날 밤에는 못 삶아 묵고 또 숨겨뒀다가 다음 날 깨복쟁이 친구 몇 명을 살째기 상급배미 논 아래로 불러냈제. 양은솥 걸어 놓고 삶아 묵는디 닭이 어찌나 쫄깃쫄깃 맛있던지 그날 일 년치 포식을 히붓당게.

그 해 봄, 순창농고에 입학을 히서 자취를 허게 됐는디 공교롭게도 옆방에 순창고에 입학한 싸리재 사는 친구가 있더랑게. 그리서 그 친구에게 ‘너그 동네 지난 설에 닭 안 죽었냐?’ 물어봉게 ‘응, 닭병이 돌아서 많이 죽었어’ 허더랑게. ‘우리 동네도 설날 닭병이 돌아서 많이 죽었는디, 너그 동네도 그렸구나….’

싸리재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얼마나 미안하고 죄스러운지. 그 친구와 한 집에서 자취하는 동안 미안히서 얼굴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지냈당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겁나게 개구락시런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혀. 경찰서에 잽히갈 일을 겁도 없이 벌인 것이제. 벌써 30년이 훌쩍 지났구만. 인자 모다덜 귀밑머리 허옇게 돋아불고. 설날이 된게 닭서리 갔던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고만.”

못된 짓하던 추억 속에서도 그립게 떠오른 친구들, 밤 늦어 집으로 돌아가던 태현이의 가슴 속에도 내 가슴 속에도 친구들의 얼굴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