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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사람들의 땀으로 영글어가는 진뫼마을 들녘. |
| ⓒ 김도수 |
벼이삭이 통통하게 배동하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논에 나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도열병이 걸리지는 않았는지, 벼멸구가 생기지 않았는지 마을 앞과 새몰마을 내지평 들녘 여섯 군데 널려있는 논들을 번갈아 나다녔다. 논에 다녀와 병충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우리 집은 한바탕 시끄러웠다.
“큰일났다. 도롱고테 논에 미루(멸구)가 겁나게 일어 불었는디 이를 어쩐다냐. 포기를 톡톡 털어봉게 흐옇게 미루가 쏟아져 나와 불어. 상급배미 논도 앞 둑으로 도열병이 확 번져 불어서 잎이 삘겋게 죽어가고 있는디 어치게 헌다냐. 오늘 갈담장에 가서 농약 사올랑게 내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농약 좀 히야겄다.”
농약을 사 오면 형들은 배낭식 분무기로 농약을 했다. 농약통을 짊어지고 왼손으로 지렛대를 상하로 움직여 공기압을 가하고, 오른손으로는 살포기를 잡고 농약을 했다. 오랫동안 농약을 하다 보면 독한 냄새 때문에 머리도 띵하고 구역질이 났다.
“그걸 하나 딱딱 못 허니 너그들을 어디다 써 묵을 꺼나” 우리집 배낭식 분무기는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초반 작두식 분무기로 바뀌었다. 혼자 어깨에 짊어지고 농약을 하는 배낭식 분무기에 비해 작두식 분무기는 긴 호스를 잡아줘야 하고 공기 압축기가 빡빡해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논두렁 중간 중간에 호스를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해 농약 하는 날이면 식구들이 총동원돼야 했다.
농약을 살포하고 있는 형이 멀리 가면 호스를 풀어주고, 가까이 다가오면 잡아당겨 주어야 하는데 농약이 들어있는 호스는 무겁고 압력이 걸려 있어 쉽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와 작두식 분무기로 농약을 하는 날이면 들판에 고함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맨 마지막에서 호스를 잡고 있던 아버지는 중간중간 호스를 잡고 있던 어린 자식들을 향해 고함을 질러대곤 했다.
“아, 뭣덜 허고 있어. 줄을 좀 빨리빨리 안 풀어주고. 호스를 제대로 안 풀어준게 통통허게 이삭 밴 벼들이 다 꺾어져 불잖여. 농사 다 져 놓고 죽이불먼 너그덜은 뭐설(무엇을) 묵고 살라고 그러냐. 아, 멀리 가먼 줄을 살살 풀어주고 가까이 오먼 잡아 댕기주먼 되는 일을 가지고 그걸 하나 제대로 딱딱 못 허니 내가 너그들을 어디다 써 묵을 꺼나.”
호스를 잡고 있다가 농약 탄 물이 떨어질 즈음이면 어머니는 물을 길러 갔는데 그 사이 논에서 아버지 고함 소리가 들리면 종종걸음 치며 달려오곤 했다 “아이, 일허기 싫으먼 어서 집으로 니리(내려) 가붓쇼. 오랜만에 농약 좀 허로 와갖꼬 ‘넘덜한테 나 농약허고 있소’허고 동네방네 알릴라고 고함 질러대고 있소. 넘덜 보기 창피헝게 얼릉 집으로 니리 가붓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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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웃마을 어머니가 수동식 분무기를 짊어지고 농약 치러 나가고 있다. |
| ⓒ 김도수 |
“그 기계 고치먼 내 손에 장을 지져 불어라”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중반에는 우리집도 작두식 분무기 대신 엔진이 달린 배낭식 자동 분무기를 쓰기 시작했다. 가속 스위치만 올리면 ‘윙∼윙∼’ 소리를 내며 살포되는 최신식 분무기였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우리 집은 단독으로 사지 못하고 농협에서 빚을 내 큰집과 공동구매를 해 사용했다.
8월 어느 날이었다. 군에서 막 제대한 내 바로 위의 형과 농약을 하려고 자동 분무기 시동을 걸어보는데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에서 기계 좀 다룰 줄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완전 분해를 했는데 아무도 고치지 못했다. 병충해가 급속도로 번져 마음이 조급해진 아버지는 농기계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순창읍에 나가 고쳐오라고 했다.
“너그덜 짊어지고 가기 싫은게 부속 다 뜯어놓고 고치는 척하고 있제. 내가 너그덜 속을 모를 줄 아냐. 그 기계 고치먼 내 손에 장을 지져 불어라. 존 말로 헐 때 얼릉 순창 가서 고쳐와. 아침에 갔으먼 지금쯤 고쳐오고도 남아 불었겄다. 지 애비가 뭔 말을 옳게 허먼 애새끼들이 들어얀단 말이제 고집만 피우고 들은 척도 안 허고 있네.”
분무기를 수리하려면 버스가 다니는 중전마을까지 짊어지고 나가야 하고 또 버스를 타고 순창읍이나 이웃 강진면으로 가야 한다. 분무기를 짊어지고 버스에 오르면 농약 냄새가 진동을 하니 승객들 인상을 찌푸리게 할 수 있고 차장에게 듣기 싫은 소리 들을까봐 형과 나는 서로 가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형이 이웃 강진면에 가서 고쳐온 다음 둘이 새몰마을 정자나무 아래에 있는 시제논으로 갔다. 농약을 두세 통 정도 했을 때였다. 갑자기 엔진이 ‘드르륵’ 꺼졌다. 시동이 꺼질 때마다 논두렁에 분무기를 받쳐 놓고 시동 거는 줄을 수십 번 잡아당겨 힘들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넉 아부지가 막걸리 소싱 한되 받아놓고 기다렸는디” 아버지께 혼날까봐 우린 포기하지 않고 이웃 삼대논으로 갔다. 농약 통에 물을 타서 시동을 거는데 몸에 땀만 흥건히 젖을 뿐 도통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형과 번갈아 가며 수십 번 시동 줄을 잡아당겨 봤지만 더 이상 시동은 걸리지 않아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긍게 내가 뭐래데. 이왕 고쳐 올라먼 강진보다 순창으로 가라고 안 허데. 가기 싫응게 억지로 갈 때부터 내가 알아봤다. 농약은 농약대로 늦어져 농사 망쳐 불고, 돈은 돈대로 들어가 손해고. 넉 아부지가 너그덜한테 뭐 빈말 허는 줄 아냐. 내 너그덜보다는 한 수 더 보고 댕깅게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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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사일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 중에서도 힘든 건 농약 하는 일. |
| ⓒ 김도스 |
다음날 아침, 형은 아침 일찍 분무기 통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분무기 수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순창읍에 나가 고쳐오기 위해서였다. 그 날 형이 수고한 덕분에 분무기는 수리가 잘 되어 농약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일년 중 아버지한테 혼나지 않는 유일한 날이 있었는데 바로 농약 하는 날이었다. 농약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회관 한켠 구멍 가게에서 막걸리를 받아놓고 나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엔진이 달려 통통거리는 기계라고는 전혀 다룰 줄 모르니, 또는 병충해에 시달리는 벼에 농약을 했으니 기뻐 그랬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그 날만큼은 내게 살갑게 대해주었다.
“도수야! 오늘은 농약 혔응게 핀허겄다. 금방까지 넉 아부지가 너 오면 막걸리 줄라고 요로케 소싱 한되(반 주전자)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디. 목 탄게 시원허게 한잔 허거라.” 마을 사람들 모두 내가 분무기 통을 짊어지고 나타나면 “오늘은 넉 아부지한테 큰소리치며 지내겄다”며 놀리곤 했다.
농사일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들은 농약 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자식들이 집에 있으면 적기에 하면 되지만 대부분 객지에 나가 살고 있으니 누구한테 부탁하기도 어려운 게 농약 하는 일이었다.
“농약 한번 히주고 간다고 허더니 그 약속 지킬라고” 대학교 3학년이던 셋째형은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이웃 구림면에서 갑자기 숨을 거뒀다. 죽은 형이 타이탄 트럭에 실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새몰마을 앞에 있는 삼대논 앞 길에서 갑자기 차가 ‘쿵’하고 멈춰 서 버렸다.
트럭 운전사가 초행길에다 어두운 밤길이라 길 한켠에 있던 감나무 끌텅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그만 차체가 걸려 버린 것이다.
“그 놈 새끼가 농약 한번 히주고 (학교)간다고 허더니 그 약속 지킬라고 차가 거그서 멈춰 서 부렀는가벼. 벌써 나락은 흐옇게 꽃 피는디, 그 놈은 영영 가불었는지 돌아올 줄 모르네.” 어머니는 삼대논에 가거나 중전마을에 나갈 때면 감나무 끌텅이 있던 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봇도랑 옆이라 가뭄에도 물걱정하지 않고 지어 먹을 수 있고 찰진 논이라 농사도 잘 돼서 삼대에 걸쳐 팔아 묵지 않는 논”이라며 자랑을 하던 아버지.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수중에 돈 한푼 쥘 수 없게 되자 막내딸 혼수자금 마련한다고 ‘삼대에 걸쳐 절대 팔아 묵지 않는 논’을 팔고 말았다. 주말에 삼대논 앞길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눈길 주던 감나무 끌텅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게 된다. 삼대논에서 분무기 호스를 허리에 감고 농약을 하던 셋째형과 통통하게 이삭이 밴 벼가 다 쓰러진다며 고함지르던 아버지, 물동이 이고 종종걸음 치던 어머니 모습 아슴아슴 다가와 가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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