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진뫼마을에, 섬진강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캄캄한 강변 풍경. 귀신 이야기가 무수히 많았을 수밖에. |
| ⓒ 김도수 |
밤이 되면 진뫼마을 들어가는 오리길은 늘 무서웠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들은 귀신 이야기 때문이다.
진뫼 오리길은 나갈 때는 환한 낮이지만 돌아갈 때는 늘 밤길이기 십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둔 밤길. 새몰마을 끄트머리 집을 벗어나면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밤송이처럼 곤두서고 귀는 쫑긋한 채 혹시 앞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는 건 아닌지, 뒤에 무언가가 따라오는 건 아닌지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청년이 될 때까지 나는 ‘진뫼 오리길’의 귀신 이야기를 쉽게 털어내지 못했다.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던 ‘진뫼 오리길’ 귀신 이야기는 많기도 했다. 동구 밖 몰무동(말 무덤)을 지나면 정수형님네 배추밭이 나온다. 밭 언덕에는 죽은 감나무 끌텅이 하나 있었는데 밤이 되면 그곳에 계란 귀신이 시퍼런 불을 밝히고 있다고 했다.
3∼4분 더 걸어가면 복두형님네 논 옆에 작은 방죽이 나오는데 그 곳에는 덕석(멍석) 귀신이 나타나 사람들을 둘둘 말아 방죽으로 끌고 간다고 했다. 방죽을 지나면 ‘새몰 아래정자나무’가 나오는데 근처 땅 기운이 음산하여 모든 귀신들이 출몰하고 가끔씩 도깨비불이 나타난다고 했다. ‘진뫼 오리길’은 귀신들이 그처럼 많이 출몰하는 멀고도 험난한 공포의 길이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돌로 맞춰보면 알 것 아니여” 아버지는 곶감장수였다. 푸르뎅뎅한 감들이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곶감 깎는 먹감밭을 통째로 사거나 따온 감을 가마니째 사들여 오일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순창과 갈담장을 번갈아 다니던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밤에 돌아왔다.
추수 끝난 들녘에 황량한 바람만이 쌩쌩 불어대던 어느 늦가을 오후였다. 장에 가신 아버지는 그 날도 저녁을 먹고 한참 지났는데도 돌아오시질 않았다. 어머니는 내 바로 위에 형과 나를 불러 버스 정류소가 있는 중전마을로 마중을 나가라 했다.
“혹시 어디 논다랭이 아래로 처백히서 못 나오고 있는가 가봐라. 장에 갔다허먼 허구헌날 해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는 법이 없어. 사람 속을 썩히도 엥간히 썩히야 살제.” 혀를 끌끌 차며 화내고 있는 어머니 모습을 보며 손전등을 찾았다. 오래된 손전등은 켜지지 않았다. 불빛 한 점 없는 밤길. 동구 밖 몰무동을 지나 정수형님네 배추밭쯤 가는데 복두형님네 논 아래 길을 돌아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
 |
▲ 진뫼 오리길은 나갈 때는 환한 낮이지만 돌아갈 때는 늘 밤길이기 십상이었다. 텅 빈 들녘 끝에 마을 가로등 불빛 보이면 얼마나 반가웠던지. |
| ⓒ 김도수 |
‘저 분도 울 아부지처럼 한잔 허시고 이제사 오시나 보다. 해 떨어지기 전에 좀 댕기시제 …’ 구시렁거리며 걸어가는데 이게 웬일일까. 분명 ‘이쯤에서 만나겠구나’ 생각하고 걷는데 그 분은 다가오기는커녕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다가오던 사람이 점점 멀어져 가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머리 끝이 날카롭게 섰다. 형도 그랬을 것이다. 너무 무서워 말도 하지 못한 채 걷기만 하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성! 저 사람 말여. 아까 분명히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잖아. 근디 왜 점점 멀어져 가분데아. 참말로 이상허제 잉.”
“나도 시방 나도 가슴이 두근거려 미치겄어야.” 복두형님네 논 아래 길에 이르자 어둠 속에서 그 사람이 저만치 가고 있는 게 보였다. 형은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그 사람을 맞춰보려 했던 것이다. 나는 형 손을 꽉 붙들었다. 만약 그 사람이 돌에 맞아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돌로 맞춰보면 알 것 아니여.” 한사코 돌을 던지려 하던 형은 붙들었던 팔을 놓자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사라져 가는 그 사람을 보고 있었다.
“후라쉬 비추먼 쫓아오던 귀신도 도망가 불어” 어린 시절 들었던 귀신 이야기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혹시 우리가 귀신에게 홀려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돌멩이만 꽉 움켜 쥔 채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 형. 형이 던지면 나도 함께 던지려고 양손에 돌을 주워들었다. 멍석귀신이 나타난다는 작은 방죽을 지나자 형은 갑자기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떻게나 빠르게 달아나는지 도무지 맞출 수가 없었다.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좁혀보려 해도 다가가면 갈수록 그 사람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거기, 누구요?”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무서워 입이 꽉 닫힌 상태.
‘새몰 아래정자나무’가 가까워졌다. “아무리 봐도 사람은 아닌 것 같애야. 사람 같으먼 핑매질(돌팔매질) 헌다고 난리를 칠 것 아니냐. 저렇게 유유히 사라지는 걸 보니 귀신이 아닌가 모르겄어야….” 형은 말끝을 흐렸다.
 |
| ⓒ 김도수 |
“성! 우리가 시방 귀신에 홀려 따라가고 있는 것이여? 무서워 죽겄네!” ‘새몰 아래정자나무’를 조금 지나면 길 양쪽에 감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던 사람이 감쪽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린 너무 무서워 손을 꽉 붙잡고 그곳을 뛰어서 지나쳤다.
이윽고 새몰마을에 도착하자 그제서야 우린 ‘이젠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까운 송씨 이장님 댁으로 가서 찬물 한 바가지씩을 벌컥벌컥 들이켜 마시고 이장님께 귀신에 홀린 이야기를 했다.
“그것 참 이상허네. 사람 같으먼 돌 떤진다고 뭐라 했을 것인디 그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우리 집에 있는 후라쉬라도 하나 들고 가소. 후라쉬 비추먼 쫓아오던 귀신도 도망가 불어.” 버스 정류소가 있는 중전마을로 곧장 가지 않고 새몰마을 이장님 댁으로 간 것은 수동식 행정 전화기가 한 대 놓여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혹시 남원에 살고 있는 큰형님 집으로 가신 건 아닌지 알아보려 했던 것이다. 교환원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나서 잠시 기다린 끝에 큰형수님과 통화가 되었다.
“이제 막 식사 허시고 텔레비 보고 계신디. 글먼 집에다 안 알리고 장에서 그대로 우리집으로 와분 것이고만. 참말로 왜 그리셨데아. 이애기나 허고 오시지. 그나저나 대린님들 도로 니리갈라먼 컴컴헌디 애쓰겄소. 조심히서 니리가쇼 잉.”
“혼자서 갔다먼 헛것을 봤다고 허겄다” 새몰마을에 친척집이라도 있다면 자고 가고 싶었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됐다. 이장님 댁을 나서 새몰마을 끄트머리 집을 벗어나자 우린 손전등을 사방 군데로 비추며 달음박질을 쳤다.사람인지 귀신인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길에 이르자 우린 ‘내 똥 빠져라’ 내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집에 도착하니 온 몸에 땀이 흥건히 배여 있었다. “오메! 우리 죽을 뻔혔어!” 우린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고함을 치며 놀란 토끼 눈으로 헐레벌떡 방으로 뛰어들었다. “너그덜 왜 그러냐, 응!” 어머니는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 앉았다.
“우리 귀신에 홀려 죽을 뻔혔당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어머니는 한숨을 지었다.“혼자서 갔다먼 헛것을 봤다고 허겄다. 넉 아부지 땜시 하마트먼 너그덜 귀신에 홀려 큰일날 뻔 혔다…” 그 컴컴하고 무섭던 ‘진뫼 오리길’에 서면 이제 그 날의 소름 돋던 기억마저 쓸쓸하고 그립게 떠오르곤 하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