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껌 대신 씹던 삘기, 새콤달콤했던 때왈…

버들개지 2009. 6. 5. 16:04

껌 대신 씹던 삘기, 새콤달콤했던 때왈…
그 아름답던 봄날의 등하교길

▲ ‘땡기벌’에 쏘였던 추억 떠오르는 때왈(산딸기).

ⓒ 전라도닷컴

 

한국전쟁 당시 남부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자리잡아 빨치산 700여 명이 주둔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 회문산을 두르고 섬진강 본류와 구림천이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덕치초등학교. 아침이면 등 뒤에 책보를 메고 산 굽이쳐 휘돌아 나가는 강을 거슬러 등교하는 진뫼 아이들은 언제나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 모여 함께 갔다.

먼저 나온 아이들은 삼삼오오 떼지어 참새처럼 지저귀며 친구들이 어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침밥이 늦는 날이면 기다리던 아이들이 출발해 버려, 어서 따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뛰어가곤 했다. 발걸음 내디딜 때마다 책보 속에 든 필통 속 연필들이 부딪치며 달까닥거리는 소리들이 가쁜 호흡을 척척 맞춰주었다.
새몰마을을 거쳐 버스 타러 나가는 황톳길과 강변 오솔길을 따라 가는 두 갈래로 길이 나눠지는 ‘몰무동’ 길. 강변 오솔길로 가면 학교까지의 거리가 훨씬 짧아 우린 ‘용쏘갱번’ 길을 택해 학교에 다녔다.

 

▲ 강변 길에 핀 찔레꽃.

ⓒ 전라도닷컴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 모여 친구들과 함께 걷던 등굣길
강을 거슬러 가는 ‘용쏘강변’ 길. ‘몰무동’ 기안이 양반네 논을 지나 잠시 걷다 보면 ‘구장네 솔밭’이 나온다. ‘구장네 솔밭’은 대부분 돌자갈 땅으로 이루어진 메마른 땅인데 토질이 좀 괜찮다 싶은 봇도랑 쪽으로는 수뱅이 양반 부부가 날마다 개간을 해서 논이 계속 생겨나고 있었다.

‘구장네 솔밭’ 길은 키 작은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잡풀들이 우거진 호젓한 길이었다. 강 건너 숲에서 꿩들이 울어대고 종달새 지지배배 우는 아침 등굣길은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로웠고 이슬방울들이 바짓가랑이를 흠뻑 적셔주는 길이었다. 또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길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학급 당번이었던 ‘아랫것테’(아랫동네) 사는 복자 친구가 아침 등굣길에 길가에 피어있는 예쁜 붓꽃을 꺾어 들고 갔다. 소풍 갈 때나 호주머니 뒤적거리며 기웃거려볼 수 있는 콜라병을 복자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붓꽃을 꽂아 교탁에 올려 두었다.

담임선생님은 교탁에 놓인 붓꽃을 보더니 “누가 이런 예쁜 꽃을 꽂아 놓았냐? 참 예쁘기도 하다. 내가 촌으로 전근 오기를 참 잘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 뒤 아랫것테 사는 정님이 친구가 또 찔레꽃을 꽂아 놓자 “진뫼마을 여학생들은 꽃처럼 마음씨도 아름답다”며 칭찬해 주었다.
개구쟁이 남학생들은 자주색 붓꽃을 꺾어 붓글씨 쓴다고 뾰쪽한 꽃 끝에 침을 발라 손바닥에 써 보곤 했을 뿐 교탁 위에 꽃을 꽂아놓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산딸기 한주먹 먹으려다 땡기벌에 쏘여 띠앗띠앗
초등학교 4학년때 쯤이었다. 매일 등교하던 ‘구장네 솔밭’으로 가는 강변 길을 제쳐두고 하루는 맨 앞장 서서 가던 형이 “우리 봇도랑 길로 한번 가보자”며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 모두 형이 가자고 한 길로 아무 말 없이 뒤따랐다.
봇도랑은 일중리 앞으로 흐르는 구림천을 막아 새몰마을을 거쳐 진뫼마을 앞까지 논에 물을 대주고 있었다. 좁은 봇도랑 둑을 따라 굽이굽이 난 길은 자칫 한눈 팔고 갔다가는 발을 헛디뎌 봇도랑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이었다. 봇도랑 타고 등교하는 길은 진뫼마을 김씨 집안 시젯논으로 들어가는 길 못 미쳐 다시 ‘구장네 솔밭’ 강변 길로 내려서야 한다.

‘구장네 솔밭’ 가는 길로 내려서는 길목에는 수뱅이 양반 부부가 새벽부터 ‘해그럼판’까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터져 소가죽이 될 정도로 매일 단내 나게 개간한 논들이 있었다. 그 논 옆으로 가시덤불과 일년생 잡목들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앞서가던 아이들이 숲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먹음직스럽게 열린 산딸기를 발견한 아이들은 서로 큰 딸기를 따먹으려 아우성이었다.

나도 뒤따라 달려가 산딸기를 한 주먹 따서 입에 막 털어 넣으려 하는데 갑자기 ‘땡기벌’이 날아와 왼쪽 눈 옆 관자놀이 쪽을 한방 탁 쏘고 달아나는 게 아닌가.
나는 “아이고메, 나 벌에 쏘여 불었어!” 홀딱홀딱 뛰며 그곳을 벗어났다. 아이들은 내 고함 소리에 놀라 “벌이다!” 외치며 줄행랑을 쳤다. 나는 머리가 띵하니 쪼개질 정도로 아파 엉엉 울며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왜 해필 나 혼자만 벌에 쏘여 불었다냐!’ 함께 산딸기를 따먹은 친구들은 아무 이상 없이 학교로 가는데 나 혼자만 결석을 한다 생각하니 더 서러웠다. 집이 가까워지자 아버지께 혼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더 띵하고 눈 앞이 캄캄해져 왔다. 아니나 다를까. 벌에 쏘여 돌아온 나를 보자 아버지는 괜찮냐고 물어보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셨다.


“학교 간다는 놈이 잘허고 온다. 아침밥 배부르게 묵고 간 새끼가 뭐시 그리 묵고자와서
때왈(산딸기)을 따 묵으러 갔다냐. 시원허니 잘히 불었다. 가기 싫은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쉰게 얼매나 좋냐.”
어머니는 된장을 헝겊 위에 얹어서 벌에 쏘인 부위에 붙여주며 “왜 해필 관자놀이를 쏴 불었다냐. 그래도 이만허니라고 다행이다. 핏줄이나 쏴 불었으면 큰일날 뻔 해불었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 진뫼마을의 봄 풍경.

ⓒ 전라도닷컴

 

‘구장네 솔밭’ 길에서 귀신 우는 소리도 듣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장네 솔밭’을 지나 ‘몰무동’까지 오는 강변 길에는 꿀풀(하고초)도 많았다. 아이들은 꿀풀 한 가지씩을 꺾어 들고 꽃잎을 뽑아 쪽쪽 빨아대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떤 날에는 하교 길에 개구리를 잡아 통통한 뒷다리를 구워 먹기도 했다. 나는 비위가 약해 처음에는 먹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들이 “쪽 팔리게 개구리도 못 먹냐?”며 놀려대는 바람에 용기를 내서 한 다리 뜯어봤다. ‘아! 이런 기가 막힌 고기를 그동안 내가 안 먹고 빼다니’라고 아쉬워 할 만큼 졸깃졸깃 착 달라붙는 맛이었다.

3, 4학년 쯤이던 어느 토요일 하교 길이었다. ‘구장네 솔밭’이 끝나가는 지점에 개간한 논 사이로 배수로가 있었는데 앞서가던 아이들이 벌벌 떨며 지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강 건너 ‘새몰 벼락바위’ 위쪽에 있는 큰 바위에서 귀신이 구슬프게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서워 덜덜 떨던 여학생들을 제치고 형들이 먼저 배수로를 건넜다. 형들은 보리밭 고랑 사이로 뛰어들더니 몸을 엄폐하듯 허리 굽혀 종종걸음을 쳤다. 그러자 아이들은 모두 우르르 뒤따라 배수로를 건너더니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도망쳤다.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귀신이 집까지 뒤쫓아와 나를 어떻게 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도장방’(큰방 안쪽에 있는 곳간 같은 작은 방)으로 숨어들었다.
“세상에 애기가 얼매나 놀랬가디 집에 옹게 도장방에 쳐박혀 밥 묵어라고 불러도 나오덜 안허더라고. 애들이 귀신에 홀려도 단단히 홀려 불었는가 벼.”
어머니들은 회관 앞에 나와 소곤닥거렸다.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 다녔다.

 

하교 길에‘용쏘갱번’에선 달리기 시합도 벌어지고
‘구장네 솔밭’을 지나면 큰 소(沼)가 나온다. 이곳을 우린 ‘용쏘’라 불렀다. ‘용쏘갱번’ 강 언덕에는 삘기도 많았다. 소풍 때나 씹을 수 있었던 껌 대신 우린 삘기를 씹으며 강변 오솔길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용쏘갱번’에는 부드러운 모래들이 많이 깔려 있었다. 모래를 밟으면 이상하게도 달리고 싶은 욕망이 발동해 아이들은 하굣길에 고무신을 벗어 들고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 나만이 아는 비밀 장소도 있었다. 새들이 알을 낳은 둥지를 발견한 나는 누가 훔쳐 가버릴까 봐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슬쩍슬쩍 훔쳐보고 가기도 했다. 친구들이 모두 훔쳐갈 때까지 말이다.

‘구장네 솔밭’으로 가는 아름다운 강변 길은 이제 봄이 왔어도 봄이 아니다. 이슬방울로  바짓가랑이 흠뻑 적시며 등교하던 길은 제방이 쌓인 뒤 그 모습을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개간을 하던 수뱅이 양반 부부의 피땀 어린 찰진 논들. 큰아들 송기 형님이 사우디에 나가 고생해서 번 돈 모두를 부모 염원을 받들어 ‘구장네 솔밭’ 전체를 개간 했었는데 어느 날 아침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아무 탈 없이 농사짓던 논들, 지난 해 정부에서 홍수 범람 위험이 있다고, 조상님들 뼈빠지게 일군 찰진 흙을 다 파헤쳐 낸 뒤  휑뎅그렁한 둑만 우뚝 서 있다.


강둑에 우두커니 서서 사라진 논들을 생각하면 ‘씨잘데기’ 없는 곳에 국민 세금이 줄줄이 새어 나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사는 50년 동안 단 한번도 물이 범람한 적이 없는 논들인데 말이다.


봄이면 개구리 알 잡던 웅덩이, 버들피리 틀어 불던 갯버들, 영롱한 이슬 머금고 막 피어나던 붓꽃 핀 강변길이 아스라히 잡힐 듯 하다. 껌 대신 씹던 삘기, 사탕보다 새콤달콤했던 산딸기, 눈깔사탕 그리워 꿀풀을 꺾어 쪽쪽 빨아먹던 그 아름답던 봄날의 등하교 강변길에 오래도록 서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