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뭔 놈의 날이가디 노랫소리가 요란하다냐

버들개지 2009. 6. 17. 13:46

 

 

 

소쩍새 찾아오고 앞뒷산에 진달래가 붉게 물든 주말 오후, 고향 진뫼마을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고향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을회관 앞을 지나야 하는데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회관 방이 왁자지껄했다. 마침 회관 방에서 나오던 마을이장인 한수형님께서 부른다.
“어이, 도수 잘 왔네. 회관에 들어가서 밥 좀 묵소.”
“무슨 밥인디요?”
“응, 서울 사는 형철이가 며칠 전 조상님들 묘를 이장허고 나서 마을 사람들한테 술이나 한 잔 허라고 돈을 쬐께 주고 갔고만. 그리서 그 돈으로 돼아지를 한 마리 잡았어.”

 

 

 

 

마을 사람들은 오전에 돼지를 잡아 내장을 삶아 드시고, 오후에는 고기를 삶아 술 한 잔씩 드시고 계셨다. 쓸쓸하고 고요하기만 했던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산골마을에 찾아든 봄 햇살은 고향 마을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환하게 열어 주어 마주치는 얼굴마다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 아, 알려드립니다. 집에 계시는 마을 주민들은 저녁밥이 준비됐응게 한분도 빠짐없이 지금 바로 마을회관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막 국이 끓었응게 식기 전에 얼릉 묵어야 헝게 모다덜 나오셔서 잡솨 주시기 바랍니다.”
이장님의 안내방송이 나간 뒤 집에 계시던 마을 사람들이 회관 방으로 모여들어 미리 술을 드시고 계시던 분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잔은 계속 돌아가고, 그러다가 밥상이 치워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밤 나들이 천렵이 회관 방에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회관 사무실에 있던 앰프를 옮겨와 스피커를 달아 설치한 음향시설이 회관 방을 쿵쿵 울렸고, 흘러간 가요 메들리송은 일상의 시름을 잊기에 충분했다. 불빛 아래 몸을 기우뚱거리며 흔들어 대는 마을 어르신들의 구릿빛 얼굴과 목청껏 불러대는 노랫가락이 정겨웠다. 그 소리가 뒷산 정자나무까지 울려 퍼졌는지 초저녁부터 구슬피 울어대던 소쩍새가 울음을 뚝 멈췄다. 고요하기만 하던 마을에 갑자기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니 소쩍새도 깜작 놀라 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던 걸까.
회관 방에서 겨우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내던 파리들도 갑자기 쾅쾅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천장에 납작 엎드려 분위기를 파악하던 파리들은 ‘평소 텔레비전 소리만 들리던 고요한 회관 방에 오늘밤은 뭔 놈의 날이가디 노랫소리가 이리도 요란스럽게 울려 퍼진다냐?’며 놀랐을 것이다. 

우리 딸과 아들도 마을 어르신네들 틈에 끼여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할머니들은 손자 같은 아들과 딸내미가 춤을 추자 흥에 겨워 “잘헌다, 잘혀!” 를 연발하며 함께 춤을 추었다. 늙으신 노인네들만 사는 마을에 어린애 두 명이 재롱을 피우며 흔들어대니 얼마나 귀엽게 보였을 것인가.
딸과 아들은 세월 흐른 뒤 어른이 되어 마을회관 앞을 지날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춤을 추던 진뫼마을의 봄밤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들기도 하리니.

 

마을에 주민들이 몇 분 살고 있지 않아 회관 방에서 열렸던 봄나들이 천렵. 그러나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80년대 중반까지는 본격적인 농사철에 앞서 보리이삭이 막 올라오기 전, 강변에서 봄나들이 잔치가 열렸다. 마을 사람들은 ‘상급배미’ 강변에 심어진 미루나무 아래서 ‘덩더쿵 덩더쿵’ 장구를 치며 천렵을 즐겼다.
어린 시절 마을 강변으로 봄나들이 갈 때마다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어머니가 술이 취해 마을 분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라도 하면 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질질 잡아끌며 절대로 마을 사람들 대열에서 춤을 추지 못하게 했다.


힘든 농사일 잠시 내려놓고 일 년에 한두 번 흥에 겨워 춤을 췄을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치맛자락 질질 잡아끌며 왜 춤을 추지 못하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불효자식이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남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게 몹시 창피해서 그랬다.

 

오늘 밤 마을 어르신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는 어깨춤을, 어머니는 뒤뚱뒤뚱 ‘뒤뚱춤’을 추셨을 모습이 떠올라 마을회관이 왠지 허전하게만 느껴진다. 한평생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산골생활의 즐거운 날들을 잊지 말자는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흘러간 옛 노래를 목청껏 불러댄 봄나들이 천렵은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굳은살 박힌 손들을 저마다 높이 찔러대며 춤을 추자 천장에 붙어있던 파리들도 흥에 겨워 날개를 흔들며 춤을 추던 고향마을의 봄나들이 천렵. “더 이상 안 줄텅게 내가 따라온 요 잔만 딱 받아라”는 고향 어머니들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한 잔 한 잔 받아 마시다 보니 결국 취해 쓰러졌다.
회관 방에 불이 꺼지자 숨을 죽이고 있던 소쩍새가 다시 뒷산 정자나무에서 울기 시작했다. ‘소쩍소쩍’ 구슬피 울어대는 소쩍새는 고향 떠난 마을 사람들을 부르며 우는 건지, 아니면 떠나간 님이 그리워 우는 건지, 고향의 봄밤은 소쩍새 소리와 함께 깊어만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