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고향편지

"이 세상 쌩짜로 활활 타는 게 어디 있느냐"

버들개지 2006. 2. 6. 22:12
"이 세상 쌩짜로 활활 타는 게 어디 있느냐"
진뫼마을에 눈이 내리고 내리면

ⓒ 김도수


사방을 둘러보아도 뻥 뚫린 하늘 빼고는 모두가 산으로 빙 둘러 쌓인 진뫼마을에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검게 이끼 낀 앞집 점순이네 집 슬레이트 지붕 위에도, 파란색 페인트칠을 한 우리 집 슬레이트 지붕 위에도 마을은 온통 백설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이런 날에는 땅 속에 파묻어 놓은 살얼음 잡힌 싱건지와 잘 익은 세갈지, 김장 김치를 꺼내다 7형제 모두 고향 집 안방에 모여들어 맛난 점심을 먹고 싶다. 거기에 톱톱한 막걸리가 한잔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팔팔 끓는 청국장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겠다. 또 전기밥통에 들어 있는 밥 보다는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학교에 갔다 오는 아들을 위해 아랫목에 이불로 둘둘 말아 덮어놓은 따뜻한 고봉 밥 꺼내 먹는다면 천하를 얻는 밥상이 되지 않겠는가.

 

눈 내린 새벽이면 형과 나는 부모님보다 먼저 일어나 눈을 쓸었다. 눈이 많이 쌓여 싸리비로 쓸어지지 않으면 '당그레'로 밀었다. 사람이 다닐 정도로만 우선 눈길을 텄는데 화장실과 나뭇간, 그리고 장독대 가는 길을 쓸었다. 그리고 집을 빠져나가 어머니가 물동이 이고 물 길러 가는 최센 양반네집 샘터 가는 마을 골목길까지 쓸었다.

 

▲ 눈 내린 진뫼마을 풍경. 강줄기도 멈추고 고요하기만 하다.
ⓒ 김도수


마당에 소복이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린시절 새벽녘 싸리비를 들고 최센 양반네집 샘터 가는 마을 길까지 쓸던 그 새벽이 꼭 엊그제 였던 것처럼 눈에 아른거린다. 눈 내린 새벽녘이면 집집마다 싸리비나 당그레를 들고 마을 골목길로 나오던 아이들 사라진 고향마을. 이제 해가 떠도 마을 골목길에는 눈 위에 찍힌 사람발자국 보다는 밤새 돌아다니던 쥐나 고양이 발자국들만 찍혀 햇살 받아 녹고 있다.

 

눈을 쓸고 나면 일어나기 싫어 새벽녘이면 이불 속에 누워'그만 일어나야지, 그만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계속 누워 있는 어머니를 위해 나는 무쇠 솥에 물을 붓고 데웠다. 겨울철이면 어머니들은 아침 밥 지을 때마다 따뜻한 물로 그릇이나 쌀을 씻어 밥을 하려고 물을 데워 썼는데 진뫼마을에서 이 물을'경물'이라 부른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나오기 전에 나는"오메! 경물 다 뎌 놨어" 하고 부르면 그날 아침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이 대단했다.
"아따, 우라들 최고다. 벌써부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허고 있네. 내 질러 논게 하도 쬐깐히서 '저 것이 과연 사람새끼가 될랑가 모르겄다'걱정을 힜었는니 저거메(저 어머니) 손 시렁게 따숩게 밥 허라고 경물이랑 데어주고. 오늘 아침 이쁜 짓 힜응게 밥에다 고구마 몇 개 얹어서 쪄줘야 쓰것다."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니 일 년 내내 집에서 쉬는 날이라곤 오늘처럼 눈이나 내려야 쉬던 어머니가 보고 싶다. 이젠 뒷산에 누워 일년 내내 쉬고 계시니 어머니는 얼마나 편할까? 아내는 가끔씩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가는 가장이 아직도 '오메! 오메!' 한다고 이젠 제발 철 좀 들 나이가 되었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나도 언제 철 들랑가 모르겄네" 배시시 웃고 만다. 

 

▲ 설날, 모처럼 노는 아이들로 진뫼마을은 생기를 찾았다. 눈 내린 새벽녘이면 집집마다 싸
리비나 당그레를 들고 나온 아이들로 고향마을은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사람발자국보다
밤새 돌아다닌 고양이 발자국이 햇살 받고 있다.
ⓒ 김도수


▲ 마당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
ⓒ 김도수


함박눈 펑펑 내리던 날, 책보 메고 집으로 달려오던 아들을 위해 김장독에 김치 내러 갔던 어머니는 이제 선산으로 떠났다. 육신은 떠났지만 안방 윗목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걸린 사진을 보면 어머니는 오늘처럼 눈이 내리면 김치 내러 가는 장독대 길을 쓸어주고, 새벽녘 '더 누웠다 나오라'며 식어버린 구들장을 데워주고, 따뜻한 물로 밥 하라며 물을 데워주던 7남매 자식들을 안방에서 날마다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소도시에 소재하고 있는 고등학교 다니던 70년대 중반, 겨울방학을 하면 진뫼마을로 돌아와 지냈다. 지금 같으면 학원에 간다, 보충수업 한다 바쁠 텐데 그 당시에는 3학년 생들이나 보충수업을 하고 1,2학년 생들은 겨울방학 내내 집에서 쉴 수 있었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되면 나는 진뫼마을에서 날마다 땔나무 두 짐씩 해 날리며 방학을 보냈다.

 

오후에 나뭇짐을 마당에 부리고 나면 해 그림자는 강을 건너 앞산에 걸쳐져 있거나 넘어가 있었다. 그러면 곧바로 쇠죽을 쑤어서 구유 통에 퍼주면 내 하루 일과는 끝났다. 만약 나무 두 짐씩 안 하고 저녁밥상 앞에 앉아있으면 부모님 눈치가 보여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꺼칠꺼칠해 후다닥 밥숟가락을 놓고 자리를 떠야만 했다.

 

겨울방학 내내 눈이 내리지 않는 한 나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다. 겨울철에 나무를 많이 해 놓아야 일년 내내 땔 수 있으니 눈 내리는 날 빼고는 날마다 해야만 했다. 하여간 강변에 풀들이 파릇파릇 돋는 봄까지는 볏짚과 초를 썰어서 매일 저녁 쇠죽을 쒀줘야 하니 겨울철에는 땔나무가 많이도 들어갔다.

 

▲ 싸재비 나무. 겨울방학 내내 눈이 내리지 않는 한 나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다. 그러나
눈이 녹기도 전에 계속 내리면 어머니는 "도저히 안 되겄다. 이러다간 식구들 다 굶어 죽게 생
겼응게 안 타더라도 쌩솔갱이라도 쳐다가 때 보자"며 가까운 뒷산으로 올라가 생솔가지를 베
어오자고 했다.
ⓒ 김도수


▲ 장작패기.
ⓒ 김도수


겨울철에 눈이 자주 오면 나뭇간에 나무들이 줄어들어 큰 걱정이었다. 눈 때문에 나무를 하러 가지 못하고 날마다 쇠죽을 쒀줘야 하니 나무는 금시 줄어들곤 했다.

 

80년 초, 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 때도 올 겨울처럼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녹아 나무하러 갈만하면 다시 내리곤 해서 나무하러 갈 틈이 없어 나뭇간에는 나무들이 떨어져 갔다. 눈이 계속 내리자 결국 나뭇간은 텅텅 비어 버리고 땅바닥에 나무 부스러기들만 남아버렸다. 진뫼마을은 토끼와 발 맞추고 사는 산골마을이라 눈이 내리면 많이도 내리고 또 추워서 잘 녹지도 않는다.

 

나뭇간에 나무가 떨어져 집안에서 땔 수 있는 나무는 모조리 끄집어 내서 때던 어느 날 아침, 어머니는 땔나무가 떨어져 부엌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식들과 이불만 서로 끌어당기며 누워 있었다. 윗목에는 전날 저녁 놓아둔 물그릇에 살얼음이 잡혀 녹을 줄 모르고 있었고 문밖에는 서서히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허허, 땔나무가 떨어져 밥을 다 못해먹다니. 시집와서 땔나무가 없어서 밥을 못해 묵기는 처음인 것 같으네. 참말로 하느님도 무심허기도 허제. 아, 띠엄띠엄 니리먼 어디 덧나가디 왜 그렇게 계속히서 몽땅 니리분데아. 아, 눈이 녹기도 전에 계속 쌓여붕게 어치게 해볼 방법이 없고만."

 

어머니는 "도저히 안 되겄다. 이러다간 식구들 다 굶어 죽게 생겼응게 안타더라도 쌩솔갱이 쳐 다가 때 보자"며 가까운 뒷산으로 올라가 생솔 가지를 베어오자고 했다.

 

▲ 진뫼마을 징검다리.
ⓒ 김도수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조선낫을 들고 나는 톱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장딴지까지 푹푹 빠지는 선산 가는 길. 내가 맨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어머니와 여동생이 눈길을 뚫고 전진을 한다. 어디가 어디인 줄 모르게 평탄해 보이는 눈길을 뚫고 산에 오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아이고! 여기가 길인데, 아니었구나." 웅덩이에 빠진 사람처럼 나는 깊게 빠진 발을 빼내며 선산 가는 길을 찾아 헤맨다. 내가 앞으로 전진을 하며 깊게 발자국을 남기면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 뒤로 발자국을 키우며 따라오고 있었다.

 

선산 입구에 다다르자 소나무들이 보였다. 나는 소나무 가지들을 베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낫으로 가지들을 잘게 잘라 한 다발씩 묶었다. 나뭇단을 새끼줄로 묶어 한 다발씩 눈 위로 끌고 내려 오는데 먼저 내려가고 있는 내가 너덜겅으로 발을 헛디뎠는지 허리까지 빠지자 어머니는 놀라 고함친다. "조심히서 니리가. 나무 좀 허로 왔다가 아들 죽이게 생겼네." 어머니 고함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와 여동생도 눈이 허리까지 빠지며 입에 하얀 김을 헉헉 내 뿜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쌀을 씻어 무쇠 솥에 안치고 나는 생솔 가지를 아궁이에 밀어 넣고 불을 지폈다. 불쏘시개용으로 왕겨를 조금씩 밀어 넣고 풍구를 돌리는데 왕겨는 벌겋게 잘도 타는데 생솔 가지에는 왜 그렇게 불이 붙지 않는지 부엌은 연기만 가득 차올라 눈이 매웠다. 불꽃이 일었다 꺼졌다 오랫동안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 보니 무쇠 솥에 안쳐 놓은 쌀들이 부풀어 올라 죽처럼 짓무른 밥이 되었다.

 

생솔 가지에 불을 지피며 아침밥 짓던 고향 집에 함박 눈이 펑펑 내린다. 하늘을 쳐다 보니 쉽게 그칠 눈발이 아니다. 토요일 이지만 내일쯤이면 혹시 눈이 많이 내려 순천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짐을 챙긴다.

 

▲ 동구 밖 강 건너 꽃밭등. 이렇게 눈 내리는 날, 초등학교 하교길에 꽃밭등 가시덤불 속에서
홀로 땔나무를 하고 계시던 어머니.자식들 오글거리는 구들장 식을까봐…
ⓒ 김도수


짐을 들고 마을회관 앞에 주차 된 승용차 앞으로 가는데 회관 방에서 놀던 어르신 한 분이 문밖으로 나오며 중얼거린다.
"하느님께서 허도 너무허고만 잉. 뭔 눈이 올해는 이리도 많이 왔싼데아. 니기미 ×벌, 니릴라먼 몽땅 니리부러라. 그전 같으먼 나무 땜시 걱정을 힜는디 인자는 기름 땐게 무슨 걱정이 있겄냐. 돈이 들어가 왠수제. 그나저나 도수 어서 니리가야 쓰겄네. 눈이 많이 쌔일랑가벼."

 

승용차를 후진하려고 하니 아랫것테 쪽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려온다. 후진을 잠시 멈추고 아랫것테 쪽을 바라보니 할머니 댁에서 잠시 생활하고 있는 형제 둘이 바람 빠진 축구공을 차며 달려온다. "야, 시게 좀 차라. 내 앞으로 공이 안 오잖여." 둘은 공을 주고 받으며 회관 쪽으로 달려오는데 공을 찰 때마다 바람 빠진 공은 '푹, 푹' 소리를 내며 몇 미터 굴러가지 않고 멈추곤 한다.

 

둘이 공을 차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든다. 유년시절부터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깨복쟁이 친구들과 눈 내린 강변에서 마을이 떠내려갈 정도로 고함을 질러대며 공을 찼는데 이젠 마을에 아이들이 없으니 둘이 공을 차며 노는 모습을 보니 왠지 허전하고 짠한 느낌이 든다.

 

눈 내리는 날이면 나무를 하러 가지 않아 좋았다. 그래서 눈 내리는 날이면 깨복쟁이 친구들과 마을 선후배들 모여 우리 집 '일곱 되지기 논' 아래 평평한 강변에서 축구시합을 벌이곤 했다. 골대는 돌멩이 두 개를 놓고 고무 공으로 찼다. 아무리 고무로 만든 공이었지만 고무신을 신고 공을 차면 발등이 아파 힘껏 차내지 못했다. 만약 발등이 아프다고 운동화를 신고 공 차는 모습을 부모님이 봤다 하면 "운동화 떨추고 자서 환장병 걸렸냐"고 야단을 치기 때문 운동화는 학교에 다닐 때만 신는 신이었으므로 선반에 고이 모셔놓아야만 했다.

운동화를 신고 공을 차는 친구들은 발등이 아프지 않고 잘 미끄러지지도 않으니 신이 나서 꼭 국가대표 공격수처럼 펄펄 날며 공을 찼다. 그러나 친구들 대부분은 고무신을 신고 공을 찼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고무신에 새끼줄을 칭칭 감고 찼다.

 

▲ 내 고향집에도 눈이 수북하다. 생솔 가지 쳐다가 아궁이에 불지피던 날, '이 세상 쌩짜로 활
활 타는 게 어디 있느냐'며 나를 눈물짓게 하던 그 아침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 김도수

고무로 된 공을 차면 발등이 아프지 않아 좋은데 어쩌다 가죽으로 된 축구공이 등장하는 날이면 발등이 무척 아팠다. 그래서 빠르게 굴러오는 공은 곧바로 차지 못하고 공을 일단 멈췄다가 차거나 발 안쪽으로 찼다.

 

"야, 이리 패스 안 하고 너 계속 똥뽈만 질러댈래? 빨리빨리 패스를 안 허고 계속 단독 드리볼만 허먼 다음부터 너 빼분다. 꼬링여. 꼬링 아니 당게. 분명히 골대 안으로 들어 갔는디 시방 뭔 소리여. 너 계속 오기(억지) 부릴래? 오기 부리먼 공 가지고 집으로 들어가분다."

 

공을 차면 서로 패스를 안 한다고 어찌나 고함을 질러대더니, 심판이 없으니 상대편끼리 어찌나 싸워 대더니 강변은 늘 떠들썩 했다. 골대가 돌멩이로 되어 있어서 공중으로 슛을 쏘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니, 안 들어갔니' 싸우는 통에 강변은 늘 시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말싸움 없이 깨끗하게 슛이 인정 되려면 땅볼로 쏘아서 골을 성공시켜야만 했다.

 

고무신에 새끼줄을 동여매지 않고 공을 차는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뻥뻥 나가떨어지던 강변에 하염없이 눈이 쌓여 간다. 눈 내리는 고향마을을 뒤로 하고 승용차가 동구 밖 산 모퉁이를 돌아가려 하는데 마음은 자꾸 고향마을을 향해, 고향 집을 향해 뒤 돌아 가려 한다.

 

눈 내리는 날, 초등학교 학교 길에 동구 밖 강 건너 꽃밭등 산 아래서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가시덤불 속에서 홀로 땔나무를 하고 계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눈 내리는 날이면 아직도 강 건너 꽃밭등 산 아래서 나무를 하고 계신 듯 하여 차를 세우고 잠시 눈 내리는 섬진강 강줄기를 바라본다.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아직도 땔나무를 하고 계신 듯 하다. 눈이 쌓이면 자식들 굶길까 봐, 구들장 식을까 봐, 아니 집에 앉아 있으면 젊어 죽은 셋째 자식 생각에 화병 돋아 남은 자식들 못 거두고 죽을까 봐, 오늘도 조선낫 들고 생나무 콱콱 찍어대며 눈 내리는 강변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아, 이 눈발만 아니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 자고 싶다. 생솔 가지 쳐 다 아궁이에 불지피던 날, '이 세상 쌩짜로 활활 타는 게 어디 있느냐'며 나를 눈물 짓게 하던 그 아침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생솔 연기 퐁퐁 피어 오르던 우리 집 뒤란 연기통 서 있던 곳에도 지금쯤 눈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겠지. 올 겨울 눈은 정말 징글징글하다.